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조건만 지키면 괜찮다’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그 약속부터 내팽개치고 있다. 최근 희귀식물 이식작업이 졸속 논란 끝에 중단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조건부 허가’란 사업의 온갖 문제점을 덮기 위한 형식적 요식행위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이 사업은 지난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그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얻은 적이 없다. 2015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통과 후 문화재위원회가 제동을 걸자 행정심판으로 뒤집었고, 2019년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의견이 나오자 또다시 행정심판으로 되살아났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의 ‘무조건 추진’ 공약이라는 명분 아래 전문기관들의 명백한 부정적 의견마저 묵살됐고, 환경부는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고 ‘조건부 협의’로 길을 터줬다. 오직 정치권의 비호와 행정심판이라는 줄타기로 생명을 연장해 온 기형적 사업이다. 정작 사업의 타당성이나 공익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은 실종된 채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업 주체의 행정적,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다. 사업 책임자인 양양군수는 각종 비위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양양군은 1,172억 원이 넘는 막대한 군민 혈세를 쏟아부을 태세다. 총체적 부실과 도덕적 결함이 드러난 사업을 누구를 위해 이토록 밀어붙이는 것인가. 이런 난맥상에도 사업 추진에 앞장섰던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누구 하나 책임 있게 제동을 거는 이가 보이지 않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제 새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한번 파괴되면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설악산의 자연이야말로 법에서 말하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의 명백한 증거이며, 이를 시급히 막아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의 논쟁이 ‘절차적 하자’에 매몰됐다면, 이제는 조건부에 감춰진 사업의 ‘내용적 하자’를 정면으로 들여다볼 때다. 이 사업이 일으킨 수많은 논란과 ‘조건부’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과제들을 양양군이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환경파괴에 따른 손실 비용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와 같은 근본적 물음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새 정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즉각 중단을 선언하고, 그 타당성을 원점에서부터 혹독하게 재검증해야 한다. 또한 ‘조건 이행 사후점검’이라는 형식적 절차 뒤에 숨어 직무유기를 일삼는 환경부와 국가유산청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결국 모든 혼란을 끝내는 길은 명확하다. 애초에 명분으로 내세웠던 그 ‘조건’의 타당성을 이제라도 제대로 검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부의 책무이자 진정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2025년 6월 18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