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추진 10년, 국가 시스템은 어떻게 붕괴했는가

2025.08.28 | 설악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5년 8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가결’한 그날 이후,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당시 정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허황된 구호를 앞세워 설악산국립공원의 심장을 파헤칠 듯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 남겨진 것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유령 사업과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비용, 그리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사회적 신뢰뿐이다.

이 ‘상실의 10년’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그 세월은 대한민국의 환경 정책이 정치 논리와 개발 만능주의 앞에 어떻게 원칙을 상실하고 과학적 합리성을 유린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총체적 실패의 연대기다. 우리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본다. 역대 정부가 키워온 이 탐욕의 괴물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현 정부에게 주어진 준엄한 역사적 과제다.

원칙의 파괴, 불법과 야합으로 얼룩진 시작
이 비극은 태생부터 정당성을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립공원 보전의 빗장을 풀었고, 박근혜 정부는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두 차례나 부결된 사업을 ‘무역투자진흥회의’라는 비정상적인 통로로 강제 부활시켰다.

2015년의 ‘조건부 가결’은 정상적인 행정이 아닌, 국가 권력 남용의 결과였다. 환경부는 ‘비밀 TF’를 운영하며 심의 과정을 왜곡했고, 양양군은 경제성 보고서를 조작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이 사실은 사법부의 판결로 명백히 확인되었다. 결국 당시의 결정은 과학적 타당성이 아닌, 불법과 절차적 하자를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담합에 불과했다. 뿌리부터 썩은 이 결정이 이후 10년간 이어질 재앙의 서막이었다.

과학의 부정, 전문가 판단을 짓밟은 행정심판
이후 과정은 국가 시스템의 자정 능력 상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16년 문화재위원회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업을 ‘부결’했다. 전문가 집단의 합리적 판단이었다. 그러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국민의 문화향유권’이라는 추상적 논리로 이를 뒤집었다.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경관 파괴라는 구체적 위협은 폄하되었고, 개발 논리가 환경 보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압도했다.

비극은 반복되었다. 2019년 환경부가 전문기관 검토를 거쳐 ‘부동의’ 결정을 내렸을 때도, 중앙행심위는 또다시 이 결정을 취소시켰다. 과학적 판단이 비전문가 중심의 행정심판에 의해 두 번이나 무력화된 것이다. 이 사태는 행정심판이 개발의 도구로 악용된 명백한 증거이며, 국가 정책 결정 시스템의 신뢰를 근본에서부터 허문 사건이었다. 특히 당시 중앙행심위원장이 훗날 헌정질서를 짓밟은 혐의로 구속된 이상민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결정의 공정성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증명한다.

시스템의 붕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환경부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는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종말을 봤다. 과학적 검토 기준이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환경부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 특히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입하여 환경영향평가 기준을 완화하는 ‘확약서’ 체결을 주도한 것은 최악의 선례가 되었다. 2023년 2월, 5개 전문기관 모두가 부정적 의견을 제출했음에도 환경부는 ‘조건부 협의’를 결정했다.

그 결정은 과학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환경부가 환경 보전의 최후 보루이기를 포기한 ‘제도적 자살’ 행위였다. 과학적 사실, 절차적 정당성, 사회적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모두 무너진 폭거였다.

파탄 난 현실, 경제성 상실과 공동체의 와해
10년의 세월은 이 사업의 허구성을 입증했다. 환경 파괴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이 사업은 경제적으로 존립 불가능하다. 사업비는 당초 460억 원에서 1,172억 원으로 폭증했다. 더욱이 케이블카 운영의 주체가 될 예정이었던 ‘양양관광개발공사’ 설립마저 ‘타당성 미흡’으로 최종 무산되었다. 결국 이 사업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이 없음이 공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최하위인 양양군이 이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사업 강행에 맞선 주민들의 ‘군수 주민소환’은 지역 공동체의 신뢰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업은 이제 지역 경제 활성화가 아닌, 지방 재정 파탄의 시한폭탄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역사적 책무, 원칙을 바로 세워라
이제 결단의 시간이다. 공은 이재명 정부에게 넘어왔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문제는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다. 붕괴된 국가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국가적 시험대이다.

새 정부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첫째, 불법적인 행정 절차와 붕괴한 경제성을 근거로 사업을 즉각 중단시켜라. 정부는 행정기본법에 따라 과거의 위법·부당한 처분들을 직권 취소하라.

둘째, 2025년 12월 31일까지 허가된 공사 기한 연장을 불허하여 사업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라. 동시에 행정안전부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폭증한 사업비와 운영 주체 부재를 반영하여 즉각 재심사 절차에 착수, 이 사업의 경제적 파산을 공식 확인하라.

셋째, 과학적 판단을 무력화하는 병든 행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 전문기관의 과학적 판단이 정치적 이유로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보전 우선 원칙’을 법률로써 확고히 하라.

지난 10년, 정치가 과학을 압도하고, 절차가 원칙을 짓밟는 동안 설악산은 신음하고 국민은 분열했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가 걸었던 실패의 길을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결단으로 잃어버린 원칙을 바로 세울 것인가. 역사는 새 정부의 선택을 준엄하게 기록할 것이다. 설악산에 드리운 탐욕의 쇠줄을 걷어내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이 상식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025년 8월 28일, 국립공원위원회 ‘조건부 가결’ 10년이 되는 오늘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문의: 자연생태팀(leeds@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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