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해법 요구했더니 “사업자에게 물어라”…국민을 ‘민원 뺑뺑이’ 돌리는 오만한 대통령실

2025.10.02 | 설악산

강원 타운홀 미팅은 대한민국이 ‘토건 국가’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태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였다. 현장에서 시민들은 40년간 지속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갈등을 종식하고, 국가 차원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보내온 답변 문자는 그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는 냉혹한 거부 선언이었다. 이는 단순한 실망을 넘어, 현 정부의 소통 방식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국가적 갈등 해결을 위한 지도력이 얼마나 부재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시민이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었다. 사업의 찬반을 묻거나 행정 절차의 세부 사항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질문의 핵심은 명확했다. 지역 사회를 분열시키고 막대한 재정 부담까지 안기는 소모적인 논쟁을 국가 최고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중단시키고, 국립공원 훼손이라는 낡은 틀을 넘어 설악권 4개 지자체가 상생하는 ‘세계적인 생태 휴양 관광 모델’로 전환하자는 미래지향적이고 고도의 정책적 제안이었다. 이 문제는 오직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중재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답변은 참담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관료주의적이다. 답변 문자는 사업 주체인 양양군의 입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수준에 불과하다. 사업의 합법성이 확보되었고 재정 부담이 없다는 주장은 양양군이 수년간 반복해 온 일방적인 해명일 뿐이다. 대통령실의 고유한 분석이나 갈등 조정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지방소멸을 막겠다며 조성한 기금까지 끌어와 국립공원 파괴 사업의 재원으로 삼겠다고 강변하는 대목에서는, 국민 혈세 사용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적 성찰조차 완전히 실종되었다.

가장 충격적이고 모욕적인 것은 답변의 결론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양양군청 삭도추진단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에게 국가적 해법을 호소했는데, 돌아온 답이 갈등의 당사자인 사업자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답변은 명백한 책임 전가이자 소통의 외주화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지역의 이해관계나 관료적 타성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지도력이다. 대통령실은 스스로 갈등의 중재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일개 민원 이첩 기관으로 전락했다.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하찮은 민원으로 격하시키는 이러한 태도는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처사다.

이토록 기계적이고 영혼 없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는 타운홀 미팅을 개최할 이유가 무엇인가? 타운홀 미팅의 본질은 관료주의의 벽을 넘어 최고 정책 결정권자와 국민이 직접 소통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스스로 그 벽을 다시 높이 쌓아 올리며 국민을 좌절시켰다. 시민들은 인공지능 챗봇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답변을 받으려고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처사는 국민에게 깊은 자괴감과 배신감을 안겨주며, 정부가 그토록 외치던 ‘소통’이 한낱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이번 답변은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대통령실의 심각한 정무적 판단 능력 부재와 민심 인식 실패를 드러낸다. 대통령실은 강원도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생태 감수성과 미래지향적 열망이라는 ‘진짜 여론’을 외면하고, 낡은 개발주의에 편승한 토건 세력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민심을 외면하고 관료주의의 장막 뒤에 숨는 오만한 태도가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 역사는 수없이 증명해 왔다.
대통령실은 지금의 이 오만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맞이해 보라. 강원도의 진짜 민심을 저버린 대가가 어떤 매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우리는 끝까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25년 10월 2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문의: 자연생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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