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녹색연합 압수수색, 잘 짜여진 각본같다

2023.09.05 | 4대강

“집 앞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압수했어요. 사무실에도 경찰이 가 있답니다.”

낯선 번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낯이 익었다. 경찰은 녹색연합 사무처장 자택과 사무실 두 군데로 동원되었다. 녹색연합 활동 역사 32년. 군 출신 대통령 시절부터 정부 비판과 감시 역할을 해왔지만 압수수색은 처음이다. 대체 무엇을 문제 삼고 싶었길래?
사무실에 도착하니 압수수색 당사자인 녹색연합 정규석 사무처장과 동료들. 처음 본 얼굴들이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란다. 이들을 보낸 자들이 생각하는 부패와 공공범죄는 대체 뭘까?

압수수색 영장을 보니 4대강 조사평가단 선정 과정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 한단다. 경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수사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당시 4대강 재자연화 시민사회위원회를 담당했던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노트북과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겠다는 것이다.

영장에 기재된 내용은 2018년 7월 4일부터 11월 30일까지,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위원 및 전문위원회 선정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내부 논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 이 사건 범죄 사실 관련 4대강조사평가단과 시민위원회 간 논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저항하는 시민단체 탄압

그들은 휴대폰과 노트북 ‘반출’이란 표현으로 시민단체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마치 4대강 조사 평가단 선정 과정에 ‘범죄’적 요소가 있는 양, 시민단체가 ‘불법’으로 개입하고 공모했을 것을 전제하며.

그렇게 범죄와 불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호도하며, 윤석열 정부 들어 벌어진 최초의 시민단체 압수수색을 개시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정부의 정책과 퇴행을 비판하는 시민사회 탄압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 공권력 발동이다.

그런데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조사평가단 구성에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나? 4대강을 모니터링하고 4대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의견을 개진해 온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 구성에 의견을 내는 것과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의견 수렴 절차의 일환이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이야말로 4대강 재자연화라는 흐름을 막기 위한 구시대적 공략일 뿐이며 이를 이유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 자체가 공권력과 직권의 남용일 뿐이다. 오히려 4대강 조사평가단 위원 선정 과정에 대해 파악하고 싶으면 이를 선정하고 운영한 정부 관계자들을 조사하면 될 일이지 굳이 시민단체 활동가를 압수수색할 이유는 없다.

압수수색은 잘 짜여진 각본 같다. 지금 정부는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안을 통해 ‘자연성 회복’이란 말을 삭제하고 ‘불필요한 구조물 철거, 인간과 생태계 공존을 위한 하천 관리 필요’라는 물관리 정책 방향을 계획 단계에서 완전히 없애려 하고 있다. 새로 구성된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취소’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압수수색이 있기 며칠 전 국가물관리계획 변경안 공청회는 시민단체의 강한 저항으로 무산되었고, 5일에 다시 공청회를 개최한다. 윤석열 정부는 4대강 파괴사업을 벌이던 그때로 회귀하고자 하는데, 이에 저항하는 시민단체를 탄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치 재갈을 물리려는 듯.

직권 남용하고 직무 유기하는 정부

지난 1일, 녹색연합 압수수색 소식에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분노했다.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앞다투어 연대 규탄 성명을 냈고, 4일 진행된 압수수색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 256개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압수할 것은 생태계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의한 권력이라고 외쳤고, 터무니없는 4대강 감사를 근거로 자행한 압수수색을 규탄했다. 감사원과 경찰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부당한 공격과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 압수수색이야말로 직권남용이라고,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했다.

이번 사건은 어느 한 단체나 어느 한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인 퇴행과 맞닿아 있다고, 조금씩 어렵게 진전시켜 온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공격받고 있다고,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아름답고 풍성하게 굽이치던 강이 고인 채 썩어갔던 것은 4대강 개발사업 때문이었다. 흘러야 할 강을 16개의 보로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도한 물결은 보로 막히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은, 흐르는 강은 끝내 보를 허물게 하고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시민단체의 권력 감시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회의 살아있는 정의가 시민단체의 그 도저한 역할을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다. 멈추어야 할 것은 부당한 권력의 행사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민사회 탄압, 반생태 카르텔, 민주주의 훼손, 불의한 권력을 압수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글.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 (070-6402-5758, mayday@greenkorea.org)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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