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제 길 대로 흐르던 물길은 막히고 바닥은 패인 채 폭은 좁아지고 직선화되었다. 댐과 준설, 제방이란 토목기술을 동원해 홍수 예방, 가뭄 대비란 이름을 걸고 댐을 건설하며 수변공간을 개발한 이후다. 그렇게 하천은 단절되고 변형된 채 수생태 고유의 모습을 잃어갔다.
많은 비가 오면 침수된 것은 하천을 토목기술로 잘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었다. 자연 범람원을 잃은 하천은 원래 그곳이 물길이었음을, 물의 자리였음을 알려준다. 댐과 직강화로 물길을 막고 가두며 기형적으로 왜곡시키는 물관리 정책을 그만두고 제 모습대로 돌려놓으라는 경고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댐 14곳을 더 짓겠다며 후보지를 발표했다. 그것도 기후대응댐이란 가당찮은 명칭을 붙이면서.
지난 7월 30일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빈번해진 극한 홍수와 가뭄, 물 수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적인 물그릇 확보가 필요하다며 신규 기후대응댐을 14개 짓겠다고 발표했다. 후보지는 유역별로 홍수의 위험성과 물 부족량 등을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도출했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건의해 옴에 따라 적정성을 검토하였다는 설명이다.
▲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후보지(안). ⓒ 환경부
용도별로는 다목적댐 3곳, 홍수조절댐 7곳, 용수전용댐 4곳. 권역별로 한강권역 4곳, 낙동강권역 6곳, 금강원역 1곳, 영산강·섬진강권역 3곳이다. 그러나 어떠한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댐 후보지를 도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해당 지역에 왜 댐이 필요한지, 주요 댐 후보지에 필요한 용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부족한지, 가뭄 지역과 해당 지역의 상관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현재의 물그릇으로는 장래의 물 수요를 감당하기 부족하다며 느닷없이 댐 건설을 통해 연간 2.5억 톤의 수자원을 확보해보겠단다. 지난 14년간 하천을 대상으로 대형 토목 건설 사업을 한 곳도 진척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막급으로 여기며 댐을 짓겠다는 것이다.
강을 파헤치고 둘러치고 가로막는 것이 환경부의 역할일 수 없다. 과거 국토교통부가 제멋대로 강을 개발했던 그 일을 대신하라고 물관리 권한을 온전히 환경부로 이관한 것이 아니다. 하천의 자연성을 회복하고 수질, 수생태계 보전을 위한 물관리 정책으로 전환 과제를 수행하도록, 그동안 국토부 산하 수자원공사와 이원화되어 있던 물관리 정책을 환경부로 일원화한 것이다.
그런 환경부가 하천을 대상으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 낯 뜨거웠을까?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이란 그럴듯한 말로 댐 건설 사업을 정당화하려 든다. 댐 건설로 인해 파괴될 수생태계와 수몰로 인한 주변 지역 파괴, 생물다양성 훼손은 이젠 환경부 관심 밖의 사항이 되었으니, 환경부가 국토부가 되어 버린 것과 다름없다.
평균 1km를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우리 하천
‘전국 하천(2만 9853km)에는 0.9km마다 인공 구조물(3만 3914개의 보)이 설치되어 있고 제방과 도로 등 횡적 인공구조물로 상·하류 생태계가 단절되어 있어 자연경관 훼손 등의 문제가 야기되어 왔다. 택지, 도로, 산업단지 등으로 인해 하천 수변 및 습지 등 수생태계 서식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왔다.’
위 말은 환경단체가 쓴 보고서의 구절이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세웠던 우리나라 물 관련 최상위 계획인 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 내린 진단이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지난해 9월 환경부와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이 계획을 졸속으로 수정 변경하며 우리 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한 보의 해체나 상시 개방과 같은 과제들을 삭제해 버렸다.
▲ 짙은 녹조 ⓒ 녹색연합
우리나라는 강물을 주요 식수원으로 이용하는 나라다. 식수원인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16개의 거대한 보로 가둔 4대강 개발사업 이후 우리는 해마다 짙은 녹조를 목격한다. 녹조는 수온이 높고 인산염 농도가 증가하고 체류시간이 길 때 발생한다. 특히 낙동강의 유속은 4대강 사업 이전에 비해 유속이 수배나 느려졌고 짙은 독소의 녹조를 저주처럼 경험케 한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는다는 사실을 4대강 개발사업을 벌였던 과거처럼 이 정부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막힌 강물을 흐르게 하고 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재자연화 정책을 기조로 삼았던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뒤엎었다. 4대강의 보를 존치시키겠다는 것도 모자라,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는 댐을 더 짓겠다고 한다.
가뭄과 홍수 예방이라던 16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환경부가 의뢰했던 대한토목학회의 ‘4대강 보의 홍수조절능력 실증평가’는 16개 보가 홍수 발생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오히려 홍수위 상승을 초래한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선진 정책은 댐 건설 아닌 철거
대조적이다. 유럽은 2023년만 해도 487개의 크고 작은 댐을 철거했다. 2020년 11개 국가에서 101개의 구조물을 철거한 데 이어, 2021년 239곳, 2022년 325곳의 구조물이 철거되는 등 그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 국가들이 댐을 철거하는 이유는 공공의 안전과 기후위기 극복, 지역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횡단 구조물이 어류의 이동통로를 차단하고 번식 및 서식지를 파괴하며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의 위협 요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댐으로 가둔 저수지가 오히려 증발산으로 물 부족을 증가시키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미국은 2미터 이상의 댐이 9만 개가 넘는데, 높이가 각각 33미터, 64미터에 이르는 대형 엘와댐과 글라인즈캐니언댐이 철거된 바 있다. 향후 수천에서 수만 개의 댐이 해체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댐으로 대표되는 국가였으나, 이젠 댐 철거국을 대표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도 있지만, 연어가 거슬러 올라올 수 있도록 하천 생태복원, 지역 공동체 회복을 우선시한다. 두 댐의 철거 이후 강은 빠른 속도의 복원력 보여주었고 회귀하는 연어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수질오염과 주변 갯벌의 황폐화, 생물종 급감을 경험하며 간척지를 다시 갯벌 복원으로 돌아서듯, 이미 선진국의 정책은 하천의 재자연화, 복원으로 세계는 방향을 틀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행정은 댐을 지어야 할 구조물이 아니라 철거해야 하는 낡은 유물임을 인식하지 못하며 오히려 과거를 향해 간다. 더 나은 상상과 진전된 논의에 대한 갈망은 이 정부 이후 번번이 배반당하며 해묵은 과거의 논쟁을 반복해야 한다. 회귀하는 논쟁은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가운데 기후와 생물다양성은 거대한 참사에 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참사는 우리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
기후와 생물다양성 회복은 서로 분리된 개념도, 하나가 다른 하나를 넘어서야 하는 상충된 관계가 아니다. 기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물다양성 회복이 필수적이며,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해서는 하천이 본래의 고유성과 자연성을 간직하도록 두어야 한다.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불필요한 구조물을 철거하고 물길이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도록 인간과 생태계 공존을 위한 하천관리 정책을 펼쳐야 할 마당에 기후위기의 근원적인 대응으로 댐을 주장하는 정부의 현실 인식, 무개념 정부, 몰지각 환경부에 어이없음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글.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 (070-7438-8512, mayday@greenkorea.org)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