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왜냐면] 오늘 ‘물고기 이동권’을 제안한다 / 윤상훈

2016.05.23 | 4대강

전날 내린 봄비에 양양 남대천이 흠뻑 불었다. 산란기 황어 떼의 기나긴 오름 행렬이 마무리된다. 일생에 딱 한 번 강을 거슬러 오르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어제와 내일이 동시에 존재하는 산란의 시간이다. 강과 바다가 열려 있기에 가능한,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만든 생명의 축복이다. 황어의 혼인 행렬은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의 모습을 상징한다. 건강한 남대천은 황어를 키우고, 세대를 잇는 황어는 사람들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는 황어를 통해 남대천과 관련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전체 시간성’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생태적이며 아름답다.

물고기가 하천을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강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모습은 물고기든 사람이든 생의 본능이다. <자산어보>에 따르면,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거슬러 오르는 해돈(海豚, 돌고래)의 기록이 있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기 이전, 군산과 서천의 어민들은 금강을 오르는 실뱀장어잡이로 한 달 만에 자식들 학비를 마련했다. 영산강 숭어는 몽탄지역까지 올랐고, 숭어알 어란은 천하 삼대진미 중 하나였다. 임진강 황복은 ‘천계(天界)의 옥찬(玉饌), 마계(魔界)의 기미(奇味)’로 소동파의 시구에도 등장한다. 연어, 송어, 웅어는 물론 참게와 도둑게도 민물과 바다를 오간다. 바다와 하천을 오가는 물고기들의 일생은 지역주민들의 삶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천이 보와 댐으로 막히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이제, 물고기의 혼인 행렬, 강을 오르는 일은 흔치 않아 뉴스에 등장할 정도이다. 2012년 4대강사업이 완공되면서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한강에 총 16개의 보가 강의 흐름을 막았다. 수심 6미터의 깊이로 강바닥을 준설하고, 수변지역은 자전거 길과 공원으로 조성했다. 하천생태계는 흐름이 정체된 호소생태계로 급격히 변화했고, 특히 이동성 물고기의 서식을 위협했다. 일례로 참갈겨니와 피라미가 우점한 낙동강의 어류상은 정체된 수역에 익숙한 강준치, 블루길, 치리, 민물검정망둑이 대신하고 있다. 4대강사업으로 조성한 생태습지의 70%는 큰입배스의 양어장처럼 변하고 있다. 댐과 하굿둑으로 막힌 4대강은 이제 더는 모천회귀하는 물고기들의 고향이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당연한 것처럼, 물고기의 이동은 생명 본연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하천 이용은 둑과 제방, 사방댐, 하천 직강화, 보와 댐, 하굿둑 등 다양한 형식으로 물고기 이동을 막고 있다. 그나마 강 하구가 막히지 않은 섬진강에는 매년 4월, 산란기 황어 떼가 광양 금천계곡, 하동 화계천, 구례 피아골과 간문천을 차례로 오른다. 서식지에서 산란지로 이동할 권리,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갈 권리가 막히고 있다. 댐과 정체된 수역이 만든 충격은 결코 생명이 어울리는 ‘생물다양성’을 지킬 수 없다. 지금이라도 곧은 하천 대신에 원래의 구불구불한 모습을 찾아야 한다. 하천의 침식, 운반, 퇴적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갈, 모래, 점토가 고루 분포하고 여울과 소가 서로 어울려야 한다.

댐을 철거하고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논의와 활동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다. 제2회 ‘세계 물고기 이동의 날’인 5월21일, 세계 1500개 단체가 350개 이상의 홍보 행사와 캠페인을 벌인다. 열린 강과 하천의 연결, 물고기 이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자리이다. 녹색연합은 오늘, ‘물고기가 이동할 권리’를 제안한다. 강의 하굿둑 중 한 곳을 열어보자. 4대강사업으로 조성된 16개의 보 중 한 곳이라도 흐름을 만들어보자. 물고기가 인간에게 길을 묻는다. 우리는 ‘물고기 이동권’을 통해 건강한 강과 물고기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삶의 공존을 희망한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한겨레 사설, 칼럼 <왜나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445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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