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 . 기름 재앙 너무 닮은 꼴

2008.03.07 | 4대강

● 글 : 윤상훈 녹색연합 정책팀장

또 다시 국민 식수원에 페놀 공포가 터졌다. 낙동강에서만 1991년 두산전자 30t 페놀 유출 이래, 2004년 다이옥신, 2006년 퍼클로레이드 검출 등 대형 독극물 사건이 이번으로 3번째다. 대구, 구미, 칠곡 주민 20만명이 고통을 겪었고, 하류의 부산은 상수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환경부는 91년 페놀 사고의 후속조치로 4대강 수질보전 대책, 낙동강수계관리법 시행 등 대비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초기 방제에서 후속 조치까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지난 10년 사이 낙동강 수계의 특정 폐기물 관련 오염원과 폐수량은 배 이상 늘었다. 유해화학물질 유출에 대비해 ‘대규모환경오염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을 만들고 예비 훈련도 실시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자 환경부는 페놀 차단막을 설치하는데 4시간이나 걸려 초기 방제의 허점을 보였고, “증발정도가 크고 자정작용도 거쳤을 것이기 때문에 농도가 극히 낮을 것”이라며 안전 홍보에 급급했다. 그 사이 페놀띠는 환경부 예측과 달리 14시간이나 빨리 대구에 도달했다.

이번 페놀 유출사고는 서해안 전역에 치명타를 입힌 기름유출사고와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대형사고 후 마련한 후속대책, 형식적인 예비 훈련, 방제 매뉴얼 사문화, 초기 방제 실패, 유출속도 예측 실패, 정부의 안이한 태도, 관계 부처 협력 혼선, 지휘 본부 부재 등 이번 페놀 유출사고는 시작부터 끝까지 시스템의 부재를 속속들이 보였다. 심지어 페놀보다 독성이 5배가 강한 포르말린 유출을 알면서도 쉬쉬하는 정부의 태도는 실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95년 여수 소리도 씨프린스 사고의 여파는 ‘해양수산부’의 창설로 이어졌다. 유조선의 대형화와 운송량의 증가에 따라 기름유출사고 가능성이 높아졌고, 해수부는 ‘해양유류오염 방제매뉴얼’을 만들고 울산 앞바다에서 예비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전은 어떠했나. 지휘본부가 역할을 못 찾는 사이, 해수부의 유출유 확산 예측은 실패했고, 방제용품은 적절히 지급되지 못했으며, 원유의 독성에 의한 주민건강은 무시되었다. 해수부는 과거 씨프린스 사고와 차이점을 설명하며, 이번은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내륙의 식수원은 페놀과 포르말린 공포가, 연안의 황금어장은 원유의 독성이 휩쓸었다. 나라 안팎이 생채기로 가득하다. 지역 주민들이 물질적, 신체․정신적 피해에 시달릴 것은 뻔한 결과다. 서해안 기름유출사고로 주민들의 61.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인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쟁 수준의 스트레스 정도다. 국민들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상수원 오염사고로 언제까지 노심초사 위협받아야 하는가. 이제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불신을 실효성 있는 정책 실현으로 뒤바꿀 때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정부 각 부처는 국가재앙사태에 대비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총체적으로 재검점해야 한다. 2005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는 32개 위기유형별로 위기관리실무매뉴얼을 작성하도록 지침을 내렸고, 해수부, 환경부 등 각 부처에서는 이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페놀과 기름유출사고를 교훈삼아 시작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원점에서 국가재앙사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각종 개발사업의 대규모 환경파괴에서 황사, 폭우, 태풍, 지진해일까지 국가재난, 환경재앙은 또 다시 우리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3월 7일자에 실린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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