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2009.12.28 | 4대강

며칠 전 팔당에서 이틀을 꼬박 걸어온 농민들을 여의도 앞에서 맞이했다. 30여 년간 일궈온 유기농업 단지를 4대강 사업으로 모두 빼앗기게 된 팔당 지역 농민들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에 있던 이들의 농경지에 자전거 도로와 생태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이들은 70년대에도 이미 조상 때부터 일궈온 땅을 팔당댐 건설로 빼앗겼었다.

땅이 수몰되었어도 농사를 포기할 수 없던 이들은 상수원보호구역이 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유기농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양수리에 전국 최대 규모의 유기농업 단지를 만들었다. 유기농업이 어떤 농업인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땅 힘을 키우는 데에만 수년이 걸리고 병충해가 농작물을 죽여도 농약은 생각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온 정성을 다해 수확을 해도 상품가치가 떨어져 보인다고 제대로 대접도 못 받던 시절도 있었다.

상추 잎, 깻잎 한 장 한 장에 수십 번 손이 가는 정성이 깃들어야 하는 게 유기농업이다. 30년의 경험이 만들어낸 팔당 유기농업 단지는 그 자체가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2011년 세계 유기농업대회가 열릴 곳도 바로 그 곳 팔당이었다. 그런데 팔당 농민들이 그렇게 정성을 다해 일군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팔당농민들이 자주 들고 나오는 피켓엔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팔당에 와서 농민들과 같이 상추를 뜯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은 유기농업이 미래의 희망이고 팔당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단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이니 기억이 안 난다고, 그 사진속의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고 말할까?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그의 눈엔 정말 ‘자전거’와 ‘생태공원’ 만 녹색이고 농민들이 키우는 녹색채소들은 회색으로 보이는 걸까?

팔당뿐만 아니라 낙동강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도 4대강 사업으로 모두 내쫓겼다. 이들 역시 과거에도 낙동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한번 고향 땅을 잃었던 이들이다.

지금이야 원안대로 개발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세종시 역시 멀쩡한 농토를 갑자기 정부에 빼앗긴 농민들의 눈물을 깔고 시작된 일이다. 골프장은 어떤가? 강원도에선 골프장 건설로 자기 집과 땅을 모두 강제수용당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시골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시 사람들도 계속 쫓겨나고 있다. 서울에서만 지금 26군데에서 뉴타운 사업이 추진 중이다. 뉴타운 재정비 지역엔 세입자가 74%라고 하니, 이들 대부분은 모두 살던 집을 잃고 어딘가로 다시 쫓겨나야 한다.

지금 한창 터를 닦고 있는 서울의 모래내 뉴타운 지역을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돌아본 적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집과 시장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던 곳이 몽땅 사라지고 허허벌판이 되어 버렸다. 자기 집이 몇 채 있고 벌이도 괜찮은 이들은 그곳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다시 돌아오겠지만, 더 많은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정든 동네를 떠나 도시 어딘가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동네는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길이나 담장 너머 장미덩쿨이 아름답던 누구네 집이 남아있지 않는, 고향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지 않은, 그냥 말로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 댐이 많이 건설되던 시절엔 수몰민이 많이 생겼었다. 친한 선배도 자신을 수몰민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고향 사람들은 아직도 명절 때엔 배를 띄워 집이 있던 자리까지 가서 물 밑으로 아스라히 비치는 조상 때부터 살던 집의 지붕이라도 보고 오곤 한단다.

유목민으로 살지 않았던 우리에겐 정주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머물러 살아야만 이웃도 생기고 마을도 생겨날 텐데, 자꾸만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이들에겐 정을 붙이며 찬밥이라도 나눠먹을 이웃도 없고 돌아가고 싶은 고향도, 마을도 존재하기 어렵다.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이 파괴되고 논밭이 사라지고 산이 파헤쳐지면 뭇짐승들도 이 땅에서 쫓겨난다. 쫓겨난 떠돌이들이 자꾸만 많아지는 세상에 정을 붙이고 살기란, 사람이든 동물이든 쉽지 않다. 추운 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지는 까닭이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