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 준비할 시기
[에정칼럼] 에너지다소비산업 불황 전망이 주는 교훈
한국의 경제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요란하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에다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까지, 중화학 공업 기반의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지탱해 온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3일 내년도 국내 산업 경기의 특징으로, 조선·철강·석유화학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자동차·IT업종은 다소 후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철강·석유화학의 최대 불안요인으로는 ‘차이나 리스크’를 꼽았다.
철강산업은 과잉설비와 경쟁심화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잉설비로 인한 철강산업의 위축, 국내 건설경기 포화와 중국산 철강수입의 급증 여파로 인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국내 최대 단일 전기소비업종인 전기로제강의 경우 건설업 수주의 하락,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건설 추세하락 및 중국의 잉여물량까지 겹쳐 2020년대까지 전기로제품 공급과잉이 예상돼 관련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동부제철과 같은 주요 전기로제강업체들은 100억 원대의 전기요금을 체납할 정도로 부도직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오는 2016년부터 미국에서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분해시설(ECC)을 본격 가동하면 한국을 비롯해 이제까지 원유를 정제해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이용한 기존 석유화학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자원을 이용해 올레핀(CTO)을 제조하는 석탄화학산업에 나서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지난달 매출 기준 600대 기업 중 329개사를 대상으로 내년 경영환경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1.6%가 최근의 경제상황을 ‘한국 제조업 및 수출의 구조적 위기’라고 답변했다고 30일 밝혔다.
위험신호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제시되고 있다. 지난 18일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 자체 중간재 생산능력이 개선되면서 한국의 중국을 경유한 가공·중계무역 중심의 수출증가율이 2000년~2011년 연평균 19.8%에서 2011년~2013년 4.3%로 급락했다.
또한 한국의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인 조립금속·철강·석유화학부문의 전력수요증가율은 2000년~2011년 기간 동안 연평균 7.3%에서 2011년~2013년 3.4%로 하락했다.
향후 세계 경제 불황과 중국 요인으로 인해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들의 구조변화가 야기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세 가지 관점인 경제-사회-환경 측면에서 한국의 산업구조는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률 하락,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구축돼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의 산업구조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의 부가가치 창출률은 2000년까지 감소추세를 나타내며 2010년 기준으로도 주요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의 제조업은 산출 대비 부가가치 비중이 30% 이상이며, 프랑스, 네덜란드도 한국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한국의 산업별 취업자 수 현황을 보면, 제조업의 비중은 2000년 이후 감소 추세로 2011년 기준 23.8%에 불과한 반면, 서비스업의 비중은 전체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총부가가치 1억 원 당 취업자 수는 2011년 기준 1.5명인데, 제조업은 2000년 기준 2.1명으로 전 산업 평균을 상회하는 높은 일자리 창출률을 보였으나, 2001년 이후 급격히 감소해 최근에는 전 산업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구조는 높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적 측면, 특히 한국의 주요 산업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살펴보면, 제조업의 비중이 32.7%로 서비스업에 비해 2배 정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제조업 내에서는 금속(철강) 산업과 석유화학 산업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약 80% 이상을 차지하며,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속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경제 불황의 여파로 대규모 실업을 불러오고, 산업 생산량의 감소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핵심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국내 산업의 구조적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부다. 기업의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환경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는 방식으로의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나게 될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지금은 국제노총(ITUC)을 비롯해 세계 여러 노동조합이 채택한 정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주로 기후변화와 화석에너지 위기에 따른 산업의 녹색 전환 필요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논의와 사업으로 전개되고 있다.
때마침 <정의로운 전환>(김현우 지음)-나름북스 이라는 책이 최근 출판됐다. 함께 읽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권승문 녹색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레디앙 에너지정치칼럼에 게재됩니다.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