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민은 에너지 생산자

2008.09.01 | 재생에너지

EEG의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이루어낸 변화,
도시 계획 단계에서 재생가능에너지 고민한 결과 에너지 자립마을 17곳

“기후변화 심각하면, 에너지 절약하면 되고~, 석유 가격 올라가면, 재생가능에너지 쓰면 되고~.” 독일에너지 정책은 매우 쉬운 두 가지 원리를 압축한 것이다. ‘아끼고, 바꾼다.’ 지난해 독일 환경부는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990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줄어든 에너지 수요의 절반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무모한 계획처럼 보이지만 독일은 이미 2007년 1년 만에 재생가능에너지로 원자력발전소 1기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전기에너지를 생산해냈다. 이로써 독일 전기에너지의 14.3%를 재생가능에너지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전기에너지에서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이 1.02%(2006년 기준)에 불과하다.

재생가능에너지, 2.5배 가격에 사들인다



독일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재생가능에너지법(EEG)이 모든 문제의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2004년 개정된 EEG의 핵심은 발전차액지원제도다. 전력회사는 2024년까지 태양에너지, 풍력, 바이오매스, 소수력 등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들일 때 1kWh당 최대 56센트의 값을 쳐준다. 이는 일반 화석연료로 발전된 전기에너지에 비해 2.5배가량 높은 가격이다. 이렇게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을 발전차액제도로 보전함으로써 독일 가정과 기업에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붐을 일으켰다.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대출에 대한 낮은 은행 문턱도 한몫을 했다.

시민들은 이제 에너지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났다. 라인란트팔츠주 모바크에서는 1996년 반환받은 미군 탄약창고 부지에 태양빛, 바람, 바이오가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단지를 만들었다. ‘유비’(JUWI)라는 지역 재생에너지 기업을 통해, 마을 주민 350명이 공동으로 풍력발전에 투자했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한 돈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모바크는 에너지 자립도 100%의 ‘에너지 마을’이 됐다. 자연 풍경을 해치고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로 처음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데 반대했던 주민들도 지금은 한밤에 풍력발전기가 정지라도 하면 “고장났다”고 전화를 해, 고요한 독일 시골 마을의 밤이 시끄러워진다.

브란덴부르크주는 최근 재미있는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 단위로 지역 사정에 알맞은 에너지 자립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을별로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의 양을 계산하고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률을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프로젝트 담당자 막스 알트호프는 “최근 독일에서는 도시 계획을 세울 때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얼마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추세”라고 말했다. 이미 독일에는 모바크를 포함해 윤데 등 17개 에너지 자립마을이 있다.

독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다른 한 축은 ‘재생열법’이 담당한다. 독일 에너지 소비의 40%는 건물 부문, 특히 난방에 사용된다. 결국 독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주공략 대상은 다름 아닌 난방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독일 정부는 2009년 1월1일부터 새롭게 재생열법을 시행한다. 내년부터 독일에서 새로 건물을 짓는 건축주는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단열 등을 철저히 해 열효율을 10배가량 높인 패시브하우스처럼 완벽한 단열로 단위 면적당 사용하는 에너지 자체를 줄이거나, 난방과 온수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15%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는 것. 오래된 건물에 대해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리모델링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융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부동산 거래 때는 에너지 소비 인증서

또 올해부터는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을 표시한 인증서를 지참해야 한다. 건물의 열효율이 ‘자산가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등장한 것. 에너지소비량은 난방기구, 온수 이용 방법, 창문 형태, 지붕 구조 등을 종합해 면적당 에너지소비랑(kWh/㎡)으로 표시한다. 주택에 전자제품처럼 에너지 효율 등급을 매기고, 주택 가격에 에너지 효율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집이나 건물 관리비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건물주들도 자연스럽게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신경씀에 따라, 효율적인 건축으로 에너지 낭비를 막는 것이다.

이제 독일의 고민은 유럽 전체의 재생가능에너지 네트워크 형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스페인처럼 재생가능에너지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곳의 남아도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어떻게 나눠쓸 수 있을지, 독일 북부 지역의 해상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는 또 어떻게 나눠쓸 수 있는지가 고민인 것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유럽 공동의 송전망을 설치하면 된다. 이 때문에 독일 녹색당은 하인리히뵐재단의 후원 아래 유럽재생가능에너지공동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 문제에서 유럽은 생산량 확대를 넘어 효율적 공급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또 하나의 ‘에너지 공동체’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독일재생가능에너지연합 대표 비오른 클루스만은 “독일에서 재생가능에너지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며, 이런 독일의 현재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헤르만 셰어와 한스 요제프 펠과 같은 국회의원들은 재생에너지법을 만들었고, 정치권에서는 어떤 재생가능에너지를 지원할 것인지 논쟁이 벌어진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남부 지방 농민들이 지지 기반인 만큼 바이오에너지와 소수력을 지원하자는 정책을 내놓고 있고,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녹색당과 사민당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풍력과 태양광을 지지한다. 보수당인 자민당 역시 재생가능에너지 투자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할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실제로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은 독일의 차세대 산업이기도 하다. 독일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육성을 통해 25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2020년까지는 50만 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독일 자동차 산업 고용 인구와 맞먹는 수다.

스페인의 남는 에너지를 끌어쓰다

고유가와 기후변화 시대에 독일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국가적으로’ 매진하고 있다. 얼마 전 ‘저탄소 녹색성장’을 외친 이명박 정부는 불과 몇 달 전인 지난 4월 태양광 발전의 기준가격을 최대 30.2%까지 삭감하기로 발표했다. 아직 재생가능에너지 생산과 관련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위한 소중한 ‘유인책’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셈이다.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우리 정부의 ‘녹색 성장’ 동력은 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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