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캠퍼스, 지구를 지켜줘

2009.05.06 | 재생에너지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았다면, 미국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엘 고어’를 잘 알 것이다. 그는 인류의 산업구조와 소비형태로 야기된 지구온난화가 지금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뉴욕, 인도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며 수십 억명의 기후난민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엘 고어의 노력은 정말 대단해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기후변화를 알리기 위한 전도사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60년대 대학생이었던 엘 고어가 기후측정에 관한 당대 최고의 권위자인 로저 로벨 교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로벨 교수는 50년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가설이라고 여겨왔던 지구온난화를 과학적 측정을 통해 사실로 이끌어낸 공로를 한 사람이다. 로벨 교수 밑에서 엘 고어는 수많은 산의 정상 고지를 밟았고, 극 지대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샘플을 채취했다. 대학에서의 경험이 일생동안 환경운동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해서 대학은 정 반대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학은 엘 고어와 같은 헌신적인 환경운동가를 배출시킬 수 있는 교육의 공간이기도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최신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연구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학은 마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기후변화 원인의 ‘주범’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게 조금 더 많은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매년 대학 자체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그 양이 매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녹색연합이 에너지관리공단이 작성한 ‘2007 에너지 사용량 통계’를 토대로 대학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한 결과, 2007년 한 해동안 국내 76개 대학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무려 91만 3천 ton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하기 위해서는 30년생 잣나무 8억 8천 그루가 필요하다. 이는 대학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매년마다 충청북도내의 침엽수림 면적과 비슷한 29만 ha의 산림지대가 새롭게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위 76개 대학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만을 계산한 것인데도 실로 엄청난 양을 배출하고 있다. 또한 이들 대학이 소비하는 에너지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대학이 소비한 에너지량은 7년 만에 무려 84.9%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총에너지 소비량은 22.5% 늘어나는데 그쳤다.

해외의 대학들은 이미 이러한 ‘대학 자체의 온실가스 배출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를 위한 대응과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의 152개 대학 총장들은 ‘미국 대학총장 기후변화 위원회’를 구성했는데, 미국 대학 총장들은 대학 자체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거대한 ‘온실가스 배출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모임에서는 대학 캠퍼스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줄이기 위해 감축 목표를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행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마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 세계적인 약속인 ‘교토 의정서’와 비슷한 효력을 발휘한다. 미국 대학들 간의 ‘온실가스 감축 의정서’를 마련한 것이다. 이 위원회에는 미국의 465개 대학 3500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하버드 대학에서는 자체적으로 녹색캠퍼스 대출펀드 프로그램을 통해 2년간 6,726톤의 이산화탄소, 17만 3,000배럴의 물, 90톤의 폐기물을 줄여 89만 9천 달러에 달하는 운영비를 줄였으며, 미들베리 대학에서는 탄소 중립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캠퍼스 내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중에 있다. 이를 위해 대학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작성하고 구체적 실현계획과 저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2000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오벌린대, 버몬트대, 예일대 등에서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작성하여 배출량을 계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세계 최초의 CO2 프리 대학인 독일 트리어 대학의 브리켄틀 캠퍼스가 앞장서고 있다. 1996년 미군이 철수한 지역에 캠퍼스를 만들어 대학이 사용하는 에너지원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캠퍼스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학본관 건물 지붕에는 태양광발전 시설이 반짝이고 있다. 창문에도 태양전지가 달려있고, 인근 농가의 축산 폐기물을 이용해서 바이오가스로 열병합 발전도 하고 있다. 지열시스템을 이용해 냉난방을 보충하고 건물마다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 대학 교정 자체가 거대한 재생가능에너지 시설로 완전하게 화석연료와 원자력에너지로부터 100% 독립한 에너지 자립 캠퍼스이자 탄소 중립 대학인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치바상과 대학에서 일본대학으로는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발표하고 에너지 사용량 10% 감축 목표를 발표한바 있다. 이 대학의 노력은 처음 20명의 재학생이 벌인 작은 캠페인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부터 이들이 벌인 캠페인이 점차 퍼져나가 대학 전체에서 전력 절약 캠페인, 물 절약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여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전력 20%, 가스 26%, 수도 5%를 줄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국내대학의 수준은 이제 막 저탄소 그린캠퍼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 나마 몇몇 국내 대학들의 노력은 돋보인다. 작년 12월, 연세대를 비롯한 8개 대학이 ‘한국 그린캠퍼스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협의회에서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녹색사회로 가기위해 대학이 해야 할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 논의했다. 한국 최초의 ‘그린캠퍼스’를 위한 협의체인 것이다. 개별 대학의 상황으로는 상지대가 가장 앞서있다. 상지대에는 현재 5개동에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4개동에 50kw 용량의 태양광 시설도 설치했다. 또한 놀랍게도 전 학과 수업에 환경수업을 개설했으며, 학생식당의 재료를 모두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다. 대학이 앞장서서 ‘로컬푸드(Local Food)’를 선언하고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원주시 호저면의 6개 유기농 생산 마을과 상지대의 6단대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숙명여대에서는 학생들이 나섰다. “컴퍼스 와치(Campus Watch) 캠페인” 을 통해서 수업이 모두 끝난 이후 강의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불이 켜져 있으면 마지막 수업을 했던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고 대형 강의실에서 소수의 인원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 정중히 이동을 권유하고 있다. 냉·난방 시설이나 기자재 사용, 전력 사용(형광등) 등 낭비하기 쉬운 에너지 사용에 대해서 학생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절약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대에서는 주차장을 포크레인으로 허물고 그 공간에 배추밭을 가꾸고 있다. 또한 몇 몇 교수들을 중심으로 ‘녹색컴퍼스 함께하기’ 라는 수업을 개설했는데, 이 수업에서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이산화탄소를 얼마만큼 줄여나갔는지를 계산해서 학점을 받는다. 공주대에서는 강의실에 무인 자동 센서를 달아서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한양대에서는 학보사를 중심으로 Saving HYU 캠페인을 벌여 학교로부터 이산화탄소 감축 선언을 하도록 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산대에서는 새로 짓는 양산캠퍼스에 지열, 태양광,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캠퍼스를 건설 하고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모두 저탄소 그린캠퍼스를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저탄소 그린캠퍼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대학은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그간 대학을 에코캠퍼스로 만들겠다는 노력들이 대부분 단순히 ‘캠퍼스 녹지화’에만 치중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겉으로는 아름다운 에코캠퍼스를 외치지만 오히려 캠퍼스 주변의 산지나 구릉지를 허물고 대학 건물을 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저탄소 그린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단순히 캠퍼스 녹지화나 아름다운 교정꾸미기에만 치중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 시대를 대비하여 대학은 에너지 사용에 대한 점검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한 구체적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직접적인 감축 행동에 나서야 한다.  

위에서 소개한 국내 대학들은 노력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소중한 기후변화 대응 활동들이다. 이들 대학의 노력이 모두 성공하기를 바란다. 또한 이러한 노력과 성공사례가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어서 사회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독일의 유명한 생태 도시인 프라이브르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시민들이 한푼 두푼 직접 돈을 모아 태양광을 지붕에 달았던 이야기, 축구장의 한 면을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로 만들기 위해 경험했던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은 도시의 축소판이다. 도시를 생태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것처럼, 대학에서도 교수와 학생, 교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실험들이 시도되기를 바란다. 이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설치가 될 수도 있고, 운영비 절감을 통한 탄소 장학금 형식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학 전 구성원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현이다. 대학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저탄소 녹색사회를 이끌어가는 기후변화의 ‘영웅’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 : 손형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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