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적게 쓰는 집

2019.03.14 | 재생에너지

 

나는 노원구 하계동 에너지 제로 주택에 살고 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외관이 예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뒤 무주택의 행운으로 행복주택에 당첨이 되었고 운 좋게 해설사 과정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쾌적함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에너지 제로 주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집이 마음 속에 공고히 자리 잡는 것은 생각보다 더 나의 삶의 질을 올려주는 일이었다.

보통 제로 에너지 하우스라 하면 많이 쓰고 많이 생산하는 것을 상상한다. 나도 ‘전기세가 정말 공짜일까’라는 생각부터 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에너지 제로 주택은 적게 쓰고 적게 생산하는 집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생산설비에 엄청 투자해서 많이 쓰고 많이 생산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지구는 우리 세대가 흥청망청 쓸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아끼고 그럼에도 부족한 에너지는 안전하고 깨끗한 방식으로 생산해야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길이라 생각한다.

에너지 제로 주택은 먼저 단열과 기밀을 강화하고 고성능 창호를 달아 건물에 드는 에너지를 최대한 절감한다. 외부단열재는 최대 30cm에 이르고, 틈새 바람으로 인한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선줄 주변, 하수구 배관 바깥 틈까지 꼼꼼히 막았다. 발코니 확장한 집이지만 단열성능이 높은 3중창이라 거실이 춥지 않다. 현관에 달린 단열 문은 이중 가스켓이라 부르는 고무 패킹이 둘러져 있어서 압력밥솥처럼 꽉 닫힌다. 덕분에 햇빛을 통해 한번 집에 들어온 열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 집의 경우 햇빛 난방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서 올겨울에 거실은 두 번 밖에 난방을 켜지 않았다.


→ 3중 유리라고 표기된 창호 사진이다. Ar마크는 각 유리 사이에 아르곤가스가 충진되었다는 뜻이다. 아르곤가스는 불활성기체로 유리를 통해 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막는다.

에너지 제로 주택에서 한번 데워진 열은 재이용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열회수 환기장치가 있다. 난방으로 따뜻해진 실내 공기가 밖으로 나갈 때, 마치 바통을 넘겨주듯이 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깥공기에 열을 전달해주고 나간다. 그러면 공기를 새로 데우지 않아도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가 계속 유입될 수 있다. 부엌에서 요리할 때에도 후드로 빠져나가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열은 집으로 되돌리는 순환형 후드가 설치되었다.

입주자는 외부 블라인드를 활용하여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다. 여름에는 외부 블라인드를 내려서 뜨거운 태양복사를 막아 냉방에너지를 덜 쓰도록 한다. 겨울에는 외부 블라인드를 올려서 따뜻한 햇볕을 최대한 집으로 받아들인다. 밤이 되면 다시 외부 블라인드를 내려서 좀 더 집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집에 설치된 월패드로 얼마나 에너지를 쓰는지 시시각각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심지어 샤워기도 절수형으로 달려있다. 건물이 통째로 에너지 절약형인 셈이다.

→ 여름철 외부블라인드를 내린 모습이다. 알루미늄 소재의 외부블라인드를 내리면 태양열을 막을 수 있어 집안이 훨씬 시원하다.

→ 에너지사용량과 실내온도가 표시되는 월패드가 각 방마다 있다. 타이머기능,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는 기능 등이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이렇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일반 주택에 비해 70% 가까이 절감한 다음 나머지 30%는 태양광과 지열로 충당한다. 태양광패널은 햇빛이 지나가는 동선에 따라 동쪽, 남쪽, 서쪽에 건물 일체형으로 설치되었다. 지열 냉난방은 히트펌프라는 설비를 이용한다. 물을 끌어 올리는 물 펌프처럼 열을 끌어 올리는 펌프가 히트펌프다. 땅속의 15도라는 연중 일정한 온도를 끌어올려 여름에는 냉방에 활용하고, 겨울에는 난방에 쓰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신재생에너지로 난방, 냉방, 급탕, 조명, 환기의 5대 에너지를 1차 에너지로 환산하여 제로로 맞춘다. 이때, 콘센트 전기와 취사 전기는 제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우리 집은 매달 총 유지 관리비가 약 10만 원 안쪽으로 나온다. 전기료 뿐만 아니라 일반관리비도 내야 하기 때문에 입주자 입장에서는 정말 ‘공짜’인 집은 아니다. ‘제로’라는 말은 어떤 선언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내가 쓰는 에너지 일부라도 건물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자립하겠다는 선언 말이다.
얼마 전 <집의 시간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둔촌 주공아파트 사람들이 재건축을 앞두고 자신의 집 풍경을 녹화한 다큐멘터리다. 4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라면 불만투성이일 것 같지만 사람들은 90분 내내 이 집이 왜 좋았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살았던 시간만큼 추억이 서리고 정이 든 것이다. 결국 ‘집’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과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원 에너지 제로 주택은 이제 2년 차의 파릇파릇한 새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의 새 아파트들처럼 기대에 못 미치는 점들이나 하자 문제들로 인해 단지 분위기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이 집에 애착을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을 들여 이 집이 지어진 목적을 이해하고 사용방법을 철저히 익히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시간을 들여 공부할 필요가 있다. 종전의 생활방식을 접고 적게 쓰고 적게 생산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일말이다.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플러스에너지 하우스라는 꿈으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김기정 (노원 에너지제로주택에 살고 있으며 서울에너지드림센터로 출근하는 에너자이저. 적게 쓰고 적게 생산하고 최종적으로는 적게 먹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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