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원주에서 “에너지자립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아래 발제문의 일부를 발췌해서 올립니다.>
5. 에너지 자립 마을 만들기의 발전방향
1) 에너지자립 마을 계획 수립
에너지자립 마을은 한 마을의 다양한 자연적, 사회적, 인적, 경제적 요소가 결합되어야만 달성 할 수 있다. 적합한 자연자원을 갖춰야 하고, 마을 주민들의 의식과 참여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에너지 생산문제를 해결하면서, 정책적인 지원이 결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을 지도자의 인식과 주민 조직화가 중요하다. 우리 마을에 어떤 요소는 이미 구축되어 있고, 어떤 요소는 앞으로 갖춰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여건을 살펴봐야 한다.
에너지 자립 마을 만들기를 위한 계획적 접근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을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우선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에너지는 냉난방, 조명, 전기, 수송연료로 소비 형태를 알아야 그에 적합한 생산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또 에너지 생산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지역의 가용 자연자원 현황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한다. 질 좋은 바람이 분다면 풍력 자원을, 태양광 에너지는 우리나라 전역에 풍부하고, 농촌이라면 다양한 바이오매스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최대한 지역자원의 특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현재 바람이 풍부한 제주도와 강원도가 풍력발전을, 햇볕이 풍부한 광주와 전남지역이 태양광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농촌지역발전 계획에 마을단위 에너지 수급에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마을 단위의 ‘마을 에너지 자립계획’을 작성하는데 있어, 마을 주민들의 참여, 지자체의 정보제공, 연구소의 참여 등이 필요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만 아니라 지역단위, 마을단위에서 에너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2) 마을 공동출자를 통한 태양광 사업 모색
홍성의 고요마을, 신효천마을 마을회관, 제주도 자구내마을 동사무소는 지역주민 출자 또는 지역의 지원금을 활용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고, 법인 등록을 통해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에 있다. 주민들이 마을 공동의 공간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발전차액지원제도로 일반 전기값보다 높은 비용에 전기를 판매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안군 주산사랑 영농법인처럼 이미 지역에서 형성된 영농법인을 통해 에너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촌 마을 단위로 있는 마을회관이나 마을의 지붕을 이용해 태양광발전을 하고 판매하는 것은 마을의 경제적 이득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이해하과 실생활에서 받아들이는 데 있어 여러 가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3) 에너지 믹스와 바이오매스 에너지의 이용
마을 단위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믹스가 중요하다. 다양한 자연자원을 활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농촌지역에 가장 심각한 에너지문제가 난방이다. 도시에서는 도시가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등유를 사용하는 집이 많은데, 급격하게 오른 원유 값으로 인해 농촌지역의 난방비 부담이 상승하고 있다. 이 부담을 바이오매스를 활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폐식용유 및 바이오연료를 활용한 난방시스템을 모색할 수도 있고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열병합 발전도 가능하다. 폐목재, 간벌목으로 펠렛을 만들어 난방에 사용 할수도 있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에 비해 잠재력은 많으나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은 바이오매스 에너지에 대한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4) 에너지원 전환에서 생활전환으로
마라도나 정부 주도의 그린빌리지는 일방적인 지원을 통해 단순히 에너지원을 환경적으로 바꿨다는 것의 한계를 보여준다. 에너지를 바꾸고 삶을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덴마크의 삼쇠섬, 독일의 윤데 마을의 특징은 지역주민들이 에너지를 생산해내는데 있어 투자자가 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도록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과 에너지 생산 활동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린빌리지는 실질적인 에너지 자립마을이지만 마을에너지 자립으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이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마을 주민들의 에너지 사용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보여줬지만 비전과 희망을 말하기엔 부족하다. 단순히 에너지원을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5) 효과적인 정부지원 – 에너지 협동조합
영국의 에너지세이빙트러스트는 2050년까지 영국의 모든 가구가 소형 열병합발전과 소형 풍력발전, 태양광 발전을 활용한 지역에너지로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난방에너지의 절반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저지, 위스콘신을 중심으로 자가발전 마을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무려 18만 가구가 마을과 가정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한다.
오스트리아 무레크는 인구 1,700명이 사는 시골 마을인데, 에너지 자립도가 170%이다. 마을에 자리 잡은 바이오에너지거리에는 발전소(외코스트롬), 지역난방회사(나베르메), 바이오디젤 회사(SEEG)가 모여 있다. 1985년 12월 마을 농부 세 명이 의기투합해 지역에너지 자립 준비를 시작했다. 정부 보조금과 마을 농부들이 모은 자금으로 1989년 바이오디젤 회사 SEEG를 설립했다. 폐식용유를 정제해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면서 수익률은 높아졌다. SEEG가 자리를 잡자 1998년 잡목 등으로 지역난방을 하는 나베르메에 투자했고, 나베르메가 자리를 잡자 2005년엔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외코스트롬이 세워졌다. 마을에 에너지 기업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이전에 만든 회사가 적극 투자를 하면서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는 높아졌다.
바이오에너지 거리에 있는 세 개의 에너지 공장에서 사용되는 원료들은 폐식용유, 잡목, 축산 분뇨, 옥수숫대 등이다. 폐기물이 무레크에서는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바이오매스 자원으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순환의 법칙이 있다. 유채씨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남은 유채씨 찌꺼기는 돼지 사료로 쓰고, 돼지 똥으로 메탄을 만들어 발전을 하고, 여기서 나오는 액비는 고스란히 밭에 뿌려 유채를 키우는 완전한 물질순환이 이뤄진다. 무레크 주민들은 석유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아니 석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지금과 다름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1년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들이는 돈은 1500유로(약 230만원). 예전에는 이 돈을 고스란히 석유와 천연가스 구입에 썼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해결한다. 자신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에너지를 구입하고, 일자리도 얻는다.
1998년 덴마크는 재생가능에너지 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삼쇠섬은 울릉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넓고 인구는 절반 정도이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전력 회사, 시민들이 풍력터빈 11기로 전기를 자급하게 됐다. 주민 450명이 공동 출자한 풍력터빈 회사가 2기를 소유하고 나머지 9기는 개인 농장주가 운영하고 있다. 독일 니더작센주 괴팅겐에 있는 윤데마을 주민은 조합을 결성해 직접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 전기 생산량은 마을이 사용하는 전기의 2배나 된다. 농사가 끝나고 들판에 버려진 각종 부산물과 가축 분뇨를 모아 혐기성소화를 통해 메탄가스를 만들고 메탄가스를 이용해 열병합 발전을 하는 것이다. 전기는 생산해서 판매하고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데워 난방용으로 사용한다. 정부가 높은 가격으로 잉여 전기를 구매하기 때문에 조합원은 출자한 만큼 돈을 벌고 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의 성공적인 에너지 자립 마을들은 특징이 있다. 바로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든 주체가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은 에너지를 국가에도 기업에도 온전히 맡기지 않았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시민발전소를 통해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필요한 에너지량을 정하고,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서 에너지 생산에 나섰다. 지역에너지는 말 그대로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역에너지는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도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구매해주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초기 보조금과 투자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정부가 주민들의 에너지 생산을 제도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부안의 주산면이나 홍성군의 홍동면과 같이 주민들이 마을에너지 자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지역은 상당히 드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에너지 자립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세울 필요가 있고, 그에 대한 필요성을 NGO나 학계에서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 금융기관을 통한 투자 저리대출, 발전차액지원제도 확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부안사례와 같이 주민들이 창의적이 제안과 활동으로 시작된 “폐식용유로 가는 학교버스” “친환경연료로 농기계 연료 공급”과 같은 시도가 산업자원부의 법으로 인해 날개가 꺾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법을 바꿔낼 수 있는 정책대응이 절실하다.
정부도 미래 에너지에 대한 대안을 수소전지나 연료전지, 핵융합과 같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거나 현실에서 활용하기에 긴 시간일 걸리는 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현재 지역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과 제도를 즉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에너지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또한 기술적인 접근만 하지 말고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의 필요성을 자원순환형사회와 지속가능한 도시와 농촌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6. 결론
한국에서 마을 단위의 에너지 자립 개념은 이제야 싹트고 있다.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부와 사회의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지원제도가 탄탄한 독일에서도 윤데마을이 탄생하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에서 꾸준히 열정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에너지 자립 마을의 조성은 요원할 것이다. 우리가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장애물을 하나둘씩 치워나가고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이런 활동을 시도해서 모범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말 그대로 재생가능에너지의 다양한 장점을 살린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작업도 단지 몇 사람만의 의욕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는 ‘시장’도 ‘국가’도 우리 사는 세상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애와 환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 경제, 협동조합 체제가 어쩌면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도 해답이 될 수 있다. 자기 집 지붕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일에 관심 있는 시민이 직접 ‘에너지 농부 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나누고, ‘농촌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어 에너지 문제 해결에 함께 할 수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재생가능에너지 기업이 생기고, 기존의 거대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숙련된 경험과 기술을 지역에너지 체제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 지역에너지의 잠재력은 무궁하지만 그 지역에 적합한 기술, 방법,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지역 주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서 무한히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꿈의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바탕이 될 때만이 인간을 좀 더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만든다. 아껴 쓰고 잘 써야 한다. 또 지역에서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바꾸고, 에너지체제도 바꾸자. 지역에 기반을 둔 에너지협동조합 체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자. 우리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인 ‘마을’에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자. 답은 지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