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태양’을 수확하다
제주도 안덕면 화순리에는 ‘번내 태양광발전주식회사’가 있다. 태양광발전소에서 보면 삼방산과 제주앞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마을 청년회에서 태양광 전지판을 청소하는 날이다. 마치 동네 공동 경작지에 풀을 베는 것처럼 새참에 막걸리 한사발도 곁들여가며 전지판을 닦는데, 청년회는 한 달에 두 번 깨끗하게 닦고 발전회사에서 1년에 800만원을 받는다.
회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별로 힘들지도 않는 일에 이렇게 후한 임금을 주는 것일까? 태양광발전소 주인은 다름 아닌 화순리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동안 모은 마을자산 16억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태양광발전 사업에 투자했다. 주민회의에서 잠수함이나 유람선 사업을 할지, 아니면 대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부동산에 투자할지 의견이 분분하다가 ‘태양이 뜨는 한’ 망하지 않는 아주 안정적인 태양광발전 사업을 택했다.
사진1: 화순리 마을 청년회에서 번내 태양광발전소 전지판 청소하는 날
지난해 4월 (사)화순리마을회를 설립하고, 화순리의 옛 지명의 이름을 딴 번내태양광발전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이장이 대표이고 주민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성경관 이장은 “한전에 전기를 1㎾h당 677.38원에 판매하는데, 10년이면 투자금 회수하고, 그 이후부터 생산하는 전기는 고스란히 마을 수익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흡족해한다. 덧붙여 “기후변화에 온실가스 배출 규제하고, 석유가격이 올라가면 우리 태양광발전소의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겠냐.”고 전한다.
화순리 주민들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면, 인제군 남면 남전 1리 사람들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두메산골에서 어떤 사업을 하든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 끝에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마을발전기금 7억에 은행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담보로 20억을 대출받았다. 그렇게 27억을 투자했다. 주민들은 ‘남전1리주민협의회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마을에서 볕이 잘 드는 곳에 태양광발전기 300kW를 남향으로 설치했다.
남전리 주민들은 이렇게 전기를 판매해 월 2,400~3,000만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이제 농촌에서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전기도 생산하는 것이다. 전기를 팔아서 남긴 수익은 우선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쓴다. 또 수익금을 주민들끼리 나눠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일에 노동을 한 사람들의 인건비로 지급한다. 마을의 발전을 위한 일에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그 비용을 일당 6만원씩 전기를 판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박주열 ‘남전1리주민협의회영농조합법인’ 대표는 “태양광발전이 떼돈을 버는 사업이라기보다는 마을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사업이다”라고 전한다.
사진2: 박주열 태양광영농조합 대표와 남전1리 태양광 발전소
작은 동네에서 마을발전지원금을 한꺼번에 풀면 괜히 동네에 필요 없는 시설을 짓는데 쓰고, 마을 노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업을 할 수가 없는데, 지금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익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쓰면 좋을 지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 남전1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발전 100년 계획’ 세우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 주변 유휴지 활용해서, 주말농장과 특용작물을 재배할 예정이다. 남전마을 사람들에겐 태양광발전기가 ‘보물단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주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 직접 투자하고, 스스로 운영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는 주민 출자형 에너지 조합과 회사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다 발전차액지원제도 덕분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에너지 생산방식에도 민주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는 한국전력에서, 석유는 대기업에서 사서 소비하는 역할만 했던 보통사람들이 에너지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시장에 직접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분산형 에너지 체제로 한발 한발 나아가게 된다. 지역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량이 늘어나면, 대형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이동시키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환경적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 에너지의 생산 활동에 지역주민이 참여하고, 생산자가 되기 때문에 일자리도 창출하고 소득도 늘어난다. 세 마리 토끼가 아니라 네 마리 다섯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주민출자형 에너지 협동조합이나 주식회사가 생기는 건, 야구로 치면 동네야구가 확산되는 것과 같다. 주민들이 선수가 되어 함께 경기를 즐긴다. 그런데 정부는 2011년까지만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유지하고, 2012년부터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를 하겠다고 한다. 동네야구는 문을 닫고, 오로지 6개 발전자회사에 신재생에너지 의무 생산량을 채우도록 의무를 지우는, 그들만의 리그 ‘메이저리그’ 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지역에너지(Local Energy)’ 가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했는데, 그 싹을 자르려고 한다.
주민들이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해 판매하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시설을 관리한다. 효율을 높여야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어느 태양광발전소가 화순리처럼 한 달에 두 번 전지판을 청소 할까? 어마어마한 보조금으로 설치된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이 무관심속에 고장이 났는지 안 났는지도 모르고 방치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남면마을 박주열 대표는 “우리 지역에 어떤 에너지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하나하나 조사를 다했다. 그리고 태양이 벌어다 주는 돈을 어떻게 하면 잘 쓸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공부를 참 많이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주민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매력이 있어, 지역에너지 관점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제도이다.
에너지위기와 기후변화시대 ‘에너지 자립마을’이 뜨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전국에 600개의 저탄소녹색마을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내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에 10개의 에너지 자립마을을 시범으로 조성한다.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농촌형 에너지자립마을은 40~50가구가 사는 마을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2개 마을에 각각 예산 265억 원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그런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서 한 마을에 태양광, 풍력, 바이오가스, 소수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설치한다고 에너지 자립마을이 될까? 지금까지 정부가 주도한 그린빌리지 사업만 제대로 분석해도 답은 나온다. 정부가 보조금으로 남향마을 지붕위에 태양광발전기만 설치했을 때, 주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시설은 방치되고, ‘공짜’ 다름없는 전기요금에 전력소비는 되레 늘어나고, 행정은 ‘그린빌리지’의 겉모습만 홍보하는 최악의 결과들이 나온다.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은 특정 가구의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효과만 있을 뿐 낭비될 뿐이다. ‘그린빌리지’의 ‘그린’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사진3: 그린빌리지 사진
해외의 에너지 자립마을인 덴마크의 삼쇠섬, 독일의 윤데, 오스트리아의 무레크는 지역주민들이 에너지를 생산에 있어 투자자가 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도록 정책을 추진했다. 주민들이 마을의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도가 바로 발전차액지원제도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더 다듬어서 다양한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원(특히 바이오매스)에 대해 지원을 확대한다면 주민들이 알아서 마을에 가장 적합한 에너지원을 찾아내고 투자하고 관리할 것이다. 각 마을에 맞는 최적의 자원과 기술을 찾아가는 일을 전문가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미 제주도 화순리와 인제군 남면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양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아니던가.
사진4: 오스트리아 무레크 에너지 자립마을
관료들은 너무 편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국가 재생가능에너지 목표치 달성을 위해 6개 발전회사에게 목표수치를 달성하라고 할당하고, 고작 40~50가구가 있는 마을을 에너지 자립을 위해 수백억의 예산으로 시설만 설치한다. 이 정책의 목적이 향후 2020년까지 600개의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들어, 에너지 자립마을의 저변을 확산하겠다는 것이라면 오히려 처음부터 에너지 자립마을에 의지가 있는 모든 마을들이 자립의 토대를 닦고 준비를 해나갈 수 있도록 토대부터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설설치에 투자할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차라리 발전차액지원제도에 투자하면, 지역주민들이 지역에 맞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서 알아서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 할 텐데,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
발전차액지원제도 없이는 지역에너지 확산 어렵다. 박주열 ‘남전1리주민협의회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아니었으면, 남전1리 태양광발전소는 꿈도 못 꿨을 일이라고 한다. 지식경제부 입장으로서는 ‘없애려 던’ 제도를 ‘적극 활성화’ 하기에 멋쩍은 일이긴 하겠으나 사고방식을 전환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농촌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경제 인프라로 활용해보자. 폐지될 위기에 놓여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더욱더 확대해서 주민들이 중심이 된 ‘에너지협동조합’이나 ‘시민발전’, ‘에너지영농법인’을 활성화하자. 그것이 예산낭비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 앞당기며,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는 해법이다. 시한부 위기에 높인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