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

2024.06.09 | 탈핵

밀양 여수마을의 121번 송전탑(756kV)
멀리 떨어져 찍었음에도 한 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송전탑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 가 본 밀양, 그리고 특고압 송전탑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크기에서도 위치에서도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기괴했다는 말이 적확할 것이다. 시골 마을이라 하면 으레 그려지는 이미지로 밀양의 여수 마을을 떠올렸다. 논과 밭, 초록의 이미지, 흙길 사이로 뛰노는 동네 강아지들과 멀리 수놓인 산들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안개 낀 산새로 보이는 높다란 송전탑은 조금씩 내 환상을 깼으며, 여수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논두렁 한복판의 121번 송전탑은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 수 없게 했다. 완벽한 불협화음이었다. 100명쯤 에워싸야 그 둘레를 메꿀 수 있었을까? 둘레도 둘레였지만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만큼 치솟은 송전탑의 높이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무척이나 흉물스러웠다. 사실 밀양에서 놀란 건 송전탑의 크기와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억울하게 들리는 전류 흐르는 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새들 우는소리, 바람 소리가 들릴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전류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쉴 새 없이 들리는 웅웅대는 공명은 소리가 탁 트이지 못해 공간 자체를 불편하게 했다. 떠나지 못하는 소리에는 마치 밀양 할매들의 답답함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 답답함이 밀양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번 윤정부의 핵폭주 정책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의 11차 전기본(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최소 원전 3기를 추가 설립하겠다고 한다. 원전이 들어선 만큼 제2의 밀양, 제3의 밀양과 같은 특고압 송전탑이 들어설 지역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도권으로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지역민들을 희생시키는 나라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가 높다는 빌미만으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짓밟고 재단해도 되는 것일까. 당장 내 집 앞에 특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대도 나는 이 논리에 동의할 수 있을까.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했던가. 십 년이 넘도록 눈물은 마를새가 없고, 그 십 년의 눈물이 모이고 모여 오늘 밀양에선 빗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선 발언자 할매의 첫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원망도, 분노도 아닌 “여러분 고맙습니다”였다. 작게 하려던 결의대회였는데 각 지역에서 한마음으로 와주셔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말에 코 끝은 찡해지고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왔어야 했고, 연대해야 했던 일이다. 그러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을 두고 올 수 없단 이유로 잘 살피지 못했던 사람에게 그럼에도 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는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만들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을 볼모 삼아 편하게 전기를 쓸 수 있는 혜택을 누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디서 왔는지 철저히 알 수 없기에, 누군가의 눈물에 빚진 채 불을 밝히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안하고 또 한없이 부끄럽다. 지금부터라도 그 마음을 담아 함께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연대는 무엇일까. 나는 아마 11차 전기본 계획 전면 수정을 외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연대로 희망이 살아있는 밀양, 정의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꿈꿔보기로 했다.

글.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오송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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