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에서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핵발전소와 난 제법 깊은 인연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원자력 발전소의 필요성’을 주제로 쓴 글이 교지에 실렸고, 상도 여럿 받았다. 원자력은 무한하고 깨끗하며 안전하다고 책에서 읽은 걸 글쓰기 대회에 나가 논설문 구색에 맞춰 적었더니 당시 초등학생 치고는 어려운 주제로 잘 적었다며 칭찬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10년 뒤, 공교롭게도 군 복무를 했던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발전소 근처였다. 훈련지에서 고리핵발전소의 둥근 돔이 쉽게 보였고, 1년에 몇 번은 고리핵발전소 경내로 출동하는 훈련도 많이 했다. 물론 핵발전소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고, 그저 최첨단 발전소를 지키는 사병의 무용담 수준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로부터 20년여 년이 지난 지금, 소위 말해 탈핵 활동가로 살고 있는데, 어쩌다 나는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을까. 내무반에서 한비야 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당시 유행하던 책을 보며 NGO란 참 멋지다며 혼자 심취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길에서 한참 더 나아가 내가 탈핵 활동가로 살게 될 줄은 내가 어찌 알았으랴. 어떤 경험과 어떤 언어들이 나를 바꿔왔을까.
사실 이야기한 핵발전소와 관련된 기억은 한참 동안 잊혀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다. 먼지 수북하게 쌓여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최근에서야 하나둘씩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나 할까. 운 좋게도 녹색연합에서 탈핵 연대활동을 맡은 첫 해인 올해 5월, 대만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지난 5월 15일부터 21일까지, 대만에서 열린 2025 반핵아시아포럼(No Nukes Asia Forum, NNAF)에 참가했다. 1993년 일본 도쿄에서 시작된 이 포럼은 올해로 32년째를 맞았고, 핵산업과 각국 정부의 핵 진흥 정책에 맞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무엇보다 이번 포럼은 대만의 마지막 핵발전소인 마안산 2호기의 공식 폐쇄 시점과 맞물려 열려,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대만의 반핵운동은 40여 년에 걸쳐 독재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실현해 온 시민운동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는 ‘비핵가원(非核家園, 핵발전소 없는 국가)’을 선언하며 2025년까지의 탈핵을 목표로 내걸었고, 이 야심 찬 계획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 5월 17일, 마안산 핵발전소 2호기의 공식 폐쇄와 함께 핵발전 비중 0%를 달성하며, 대만 시민들의 오랜 탈핵 요구가 실현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마안산 2호기 폐쇄 다음 날, 대만 남부 핑둥현에 위치한 마안산 발전소를 방문했다. 한국으로 치면 광역지자체장 격인 현장과, 한전에 해당하는 타이파워(Tai Power) 사장이 직접 나와 아시아 각국의 탈핵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참석했다. 고위급 행정 책임자가 에너지공기업 수장이 탈핵을 지지하며 시민사회와 교류하는 모습은 꽤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안산 발전소가 내려다보이는 해변에서 본 장면이다. 핵발전소 돔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핵발전소를 등진 채 파도에 몸을 맡기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그 모습들이 함께 한 활동가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런 곳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다니” 핵발전소는 40년 동안 운영되어 왔고, 사람들의 삶은 똑같이 흘러왔고, 그 사람들이 핵발전소를 멈춰 세웠다. 많은 질문들이 활동가들에게 남았다.

함께 했던 동료 활동가들과 한국에 돌아와서 생경했던 대만에서의 여러 장면들을 회고하며 여러 질문들을 떠올렸다. 누가 그 발전소를 만들었고, 누가 그 곁에서 살아가며, 누가 그것을 멈추게 했는가. 핵발전소 문제는 정책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역시 사람들과 삶과 얽힌 문제라는 질문들. 대만의 경험을 따라가며 몇 가지 단순한 질문들을 더 세워보았다. “왜 대만 전력회사 사장은 탈핵을 지지하는가? 왜 핑둥현장은 이를 치적으로 내세우는가? 왜 사람들은 마안산 발전소 앞에서 여가를 즐기는가? 그리고 어떻게, 왜, 그 발전소를 멈춰 세울 수 있었는가?”
이번 포럼 현장에서 만난 녹색공민행동연맹(GCAA)의 활동가 린 정위엔은 “대만 탈핵운동의 저력은 특정 시기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어진 풀뿌리 실천에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의 일상에 축적된 힘이 2016년 탈핵국가 선언으로 이어졌고, 결국 정책 변화(전기사업법 개정)를 이끌어냈다. 또 다른 청년 연구자 리 조쯔는 “대만이 탈핵을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사회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돌아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핵발전소는 멈췄지만, 폐로와 핵폐기물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여기서 이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관건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탈핵은 단지 정책 변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만 시민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감정과 인식, 그리고 삶의 언어들이 모여 만들어낸 변화였다. 물론 정책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시민들의 사회적 대화와 경험이 제도에 반영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마안산 핵발전소 앞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대만인들의 경험과 인식, 이걸 정치적 대화로 이끌어가는 타이 파워 사장과 핑둥현장의 언어가 사회적 역동을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적절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출발은 맞다는 확신은 든다. 한국 환경단체 활동가인 나로서는 대만의 상황에서 배워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한국은 지금 대만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최강국’ 국정 기조를 부정하지 않는 새 정부는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을 시작으로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신규 원전 부지 공모 절차 진행 등 사실상 핵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첨단산업 전력 수요를 이유로 핵발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정책과 기술의 언어는 넘쳐나지만, 진정한 에너지전환을 위한 삶과 존엄의 언어는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탈핵운동을 해온 시민사회 또한 정책과 기술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기계적인 활동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활동가로서 반성의 마음으로, 일단 나의 언어, 그리고 그것을 만든 나의 경험들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시절, 원자력 발전이 ‘필요한 것’이라 믿었던 나. 그로부터 지금까지, 어떤 경험과 어떤 언어, 어떤 만남이 나를 바꾸어왔을까. 그 실마리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왜 핵발전소를 멈춰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를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말에 더 큰 힘과 더 깊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박수홍
지난 6년 동안 기후정의와 탈석탄을 위한 활동을 주로 해왔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빅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