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기후부 신규 핵발전 여론조사는 정책 결론을 포장하기 위한 ‘짜맞추기식 절차’일 뿐, 답을 정한 공론화는 공론화가 아니다

2026.01.21 | 탈핵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정책토론회와 오늘(21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신규 핵발전소 추진방안에 대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의 문항 구성과 정보 제공 방식을 살펴보면, 이는 다양한 사회적 선택지를 놓고 숙의한 결과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정책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계된 형식적 절차에 가깝다. 질문이 이미 답을 향해 구성된 조사 결과를 ‘국민의 뜻’으로 포장하는 것은 공론화가 아니라 왜곡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재생에너지는 날씨 등에 따라 불안정하며,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등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를 추진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제시했다. 이는 사실을 중립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는 불완전하고 전력수요 증가는 불가피하며, 그 대안은 원자력이라는 정책적 전제를 응답자에게 미리 주입하는 방식이다. 응답자는 이미 정부의 결론을 ‘배경 설명’으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후 질문에 답하도록 유도된다.

이어지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신규 핵발전소 없이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환하는 선택, 기존 원전의 단계적 축소, 전력수요 자체를 관리·감축하는 시나리오는 아예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는다. 질문은 ‘무엇을 더 확대할 것인가’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라는 정책 방향을 자연스럽게 전제하는 구조다. 

원자력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묻는 문항 또한 문제적이다. 여론조사는 “원자력 발전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얼마나 안전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지만,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 문제,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과 피해 규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장기 관리 문제, 사고 시 주민 대피와 보상 체계 등 핵심적인 안전 쟁점은 단 하나도 설명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환과 핵발전 안전성은 단순한 선호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정책 판단의 영역이다. 이를 ‘필요하다/필요하지 않다’, ‘안전하다/위험하다’는 인기투표식 질문으로 환원한 것 자체가 정책 논의를 심각하게 축소한다.

또한 이번 여론조사는 AI 데이터센터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를 기정사실처럼 전제하면서도, 그 수요 전망이 어떤 가정과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전력수요 관리 가능성, 산업용 전력 구조의 문제, 분산형 재생에너지 확대의 효과, 송전망 확충이 아닌 다른 대안에 대한 정보는 응답자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를 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에서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핵심 쟁점들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신규 핵발전소 예정 지역 주민의 의견과 수용성,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이미 심각해지고 있는 송전망 포화 문제, 대형 핵발전소와 재생에너지 간 송전망 충돌, 위험과 부담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은 단 하나도 없다. 지역의 삶과 안전을 좌우하는 결정임에도, 신규 원전은 마치 지역과 무관한 추상적 정책 선택처럼 다뤄졌다.

형식적인 토론회와 답을 정한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는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위험한 선택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과정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정의로운 전환 경로를 책임 있게 선택하는 정치적 결정이다. 핵발전 확대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여론조사 숫자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진정한 공론화라면 결론을 열어둔 채 정보 공개와 숙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26. 1. 21
탈핵시민행동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