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죽음, 이제는 한전과 정부가 답해야 합니다.

2013.12.12 | 탈핵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 고 유한숙 어르신 추모기간 선언’ 기자회견문]

고인의 죽음, 이제는 한전과 정부가 답해야 합니다.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지금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밀양송전탑전국대책회의는 고 유한숙 어르신 추모기간을 12월 22일까지 갖습니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 주민 故 유한숙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故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이후 2년, 밀양에서는 희망을 되찾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전문가 협의체를 만들어 문제해결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도 있었고, 수차례 탈핵희망버스가 밀양을 찾았으며, 한전의 공사재개에 맞선 주민들의 극렬한 저항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환경, 종교, 시민, 사회, 노동, 사회단체의 눈물어린 호소와 중재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국제 사회에서도 각종 성명과 입장발표가 계속되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호소가 이어지고, 양심 있는 시민들의 마음과 연대가 모이지만 한전과 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명분 없는 공사임이 드러난 후에도 정부와 한전은 사회적 분노를 외면한 채 공권력을 동원한 공사강행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안하무인, 오만불손한 공권력을 대동한 한전의 공사강행은 밀양 주민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밀어냈고, 12월 6일 또 다시 주민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의 가슴에 남은 지워지지 않을 이 상처가 아물지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은 고인의 음독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경찰과 한전의 태도 때문입니다. 고인이 가족과 밀양대책위에 본인의 음독이 송전탑 때문임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의미를 왜곡하고, 거짓된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경찰의 태도는 상처를 더 깊게 만듭니다. 지금도 천연덕스럽게 진행되는 송전탑 공사는 그 거대한 높이만큼이나 큰 상처로 우리들의 가슴에 파고들고 있습니다.

고인은 “나는 다 살았다, 한전 놈들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밝혔습니다. 이 죽음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이 죽음에 사과를 해야 하는지는 명확합니다. 아무리 경찰이 거짓으로 치장한 보도자료를 내고,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기 위해 애를 써도, 송전탑 공사가 죽음을 부르고 있음을, 명분 없는 공사 강행이 주민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이 만들어 낸 피해가 사람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밀어내고 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송전탑 공사가 중단되지 않는 한 고인의 넋은 편히 쉴 수 없습니다. 고인의 죽음과 송전탑 공사 강행이 낳은 아수라장에서 주민들의 상처는 오히려 더 깊어지고, 곪아갈 뿐입니다.

밀양 주민들은 고인을 애도할 최소한의 시간조차 얻지 못한 채 고인이 돌아가시던 날까지 공사현장 앞에서 국가폭력과 공사강행에 맞섰습니다. 고인의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을 추모하겠다는 밀양 주민들의 염원은 경찰의 폭력 앞에 무너집니다.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면서 분향소 설치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맞서는 밀양 경찰서장의 두 얼굴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분향소에 발걸음 한 번 내딛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의 몽니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을 추도하고, 고인이 남긴 뜻 ‘송전탑 공사 중단’을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들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 12일부터 22일 까지를 집중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국민 분향소 운영, 추모 문화제, 전국 집중 공동행동 등 다양한 행동으로 고인의 뜻을 잇겠습니다. ‘우리가 밀양이다’를 선언하며 내려갔던 희망버스의 마음을 담아 ‘밀양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기억하고, 추모하겠습니다. 몇몇 이들의 추모를 넘어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밀양의 아픔을 나누고, 밀양의 환부인 송전탑 공사를 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우리는 추모기간 동안 경찰과 한전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길 바랍니다. 공사 강행은 경계에 몰린 주민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입니다. 고인의 유지를 무시하고, 밀양 주민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입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한전과 정부는 지금 당장 송전탑 공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추모기간 동안 한전과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강력한 행동, 더 강력한 연대로 공사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불사하겠습니다. 이번 추모기간은 고인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이지만 한전과 정부에게는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인내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인의 죽음 앞에 우리가 낼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정부와 한전이 답을 낼 차례입니다.

2013년 12월 12일

밀양송전탑전국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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