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축제, ‘밀양희망버스’

2014.02.12 | 탈핵

첫 아침은 분주했다. 대한문 옆 던킨도너츠 화장실이 사용하기 좋은 탓에 등산복 차림의 여러 명이 들락거렸다. 한 쪽 마련된 테이블 주변에 임원과 차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짐을 옮기고 안내문을 공유하느라 한편으로 분주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정받은 차에 오르고 싶어 안달이었다. 들썩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하얀 종이꽃을 접는 동안 희망버스가 내쳐 4시간 달린 그 끝에는 밀양이 있었다.

그 자체로 많은 이의 염원을 의미했던 거리 행진

DSCF1967전국 각지에서 모이고 보니 인원이 꽤 되었다. 모두들 나누어 받은 상큼귤색의 손수건과 풍선을 각자 원하는대로 착용하고선 4km 가량의 행진을 시작하였다. 저마다 신이 났다. 존재감을 나타내려 탬버린을 흔들고, 준비해 온 부부젤라를 불기도 하였다. 행진의 목적은 송전탑 건설의 반대였지만, 낯선, 혹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할 밀양시를 차도를 따라 이렇게 걷는 것이 나에게만 내심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간혹 상가에서 잠시 나오셔서 송전탑 반대 스티커를 들어보이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그 쪽 행진팀은 각자의 방식으로 열렬히 환호하였다. 밀양 오는 버스 안에서 보았던 동영상 속의 밀양이나 고 유한숙 어르신과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이 행진의 무게를 실감할 법도 한데, 이 과정에 불법 행위도, 폭력도 없었기 때문일까. 더 발랄하고 더 신나고 더 당당한 걸음들이었다.

시청과 한전 앞을 지나며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던지, 아니면 처음 내가 과소평가한 것일터였다. 군집 인원은 어마어마했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는 하나된 목소리와, 탬버린 소리, 색색깔 분필들, 스티커들로 알록달록해진 행동들과, 밀양시를 에워싼 행진 전체 인파는 결코 무시못할 것이었다. 그야말로 큰 염원덩어리였다.

정리하고 넘어가자, 문화제

밀양역 광장에 마련된 깔개에 앉았을 때에는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그러나 겨울의 찬 바람에 언 몸과 마음을 따스히 녹여준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양초였다. 모두 촛불을 한 개씩 손에 쥐고 조심해가며 운영위원회에서 틀어주는 영상을 보았다.

평생 일구어온 땅을 도둑처럼 적은 보상금액에 합의하려는 정권과 우시는 어르신들, 임시농성장을 지어놓고 함께 밥을 끓여드시는 모습, 경찰에 항의하며 연약한 몸으로 달려드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주변인들과 눈물지었다. 이후에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밀양 집회동안 겪었던 증언들이 뒤이었다. 그러나 분위기의 절정은 역시 어르신들의 합창이었다.‘내 나이가 어때서~’하고 신명나게 불러주시는 노래에서 그간 이 사태를 겪고 유지해오신 어머님들의 희망과 굳건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 역시 우리들의 나이를 온몸으로 입증하듯 신나게 구르고 외치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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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밀양시의 다수가 정부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반대하시는 어르신들을 갈등을 부추기는 골칫거리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은 단 한명이 될지라도, 개인의 삶을 희생시켜서까지 이끌어내는 국가적 결정에 대해 민주주의라 칭할 수 있겠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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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공기를 피해 둘러 앉은 129번 농성장

경찰과 공사인부들로부터 물리적으로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바로 그 자리에 어르신들이 세우신 임시농성장은 온돌과 부엌 등 필수적인 것은 다 갖춰진 안온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무와 몇겹의 비닐로 만들어진 문을 나서면 밤의 산 정상 특유의 쌀쌀한 바람이 감도는 소리에 쉽게 외롭고 추워지기도 하였다. 참가자들을 한가족처럼 대해 주시는 주민분들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우리들은 술도 한 잔 기울이고, 밀양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풍부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서성일 때 올려다 본 하늘의 별도 금방 쏟아질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그곳을 항상 지킬 주민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 장소이다.

DSCF2083울퉁불퉁한 장판 바닥에서 정신을 잃고 잠자다가, 새벽 6시 반쯤 몇몇 사람들은 132번 송전탑 건설현장으로 가서 경찰들과 대치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머니 도시락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돌아올 이들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행히, 이번 희망버스에서의 무력충돌은 없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129번 농성장 앞 찬 바람속에서 참가원들이 별탈없이 돌아오길 바랐던 마음만큼이나 주민분들께 사고가 없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지금도 남아있다.

젊음과 패기의 다른 이름, 밀양 희망버스

이 기간 동안 직접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지라도 여러 사람의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반핵, 수도권의 전기사용 집중화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문제, 소통의 문제,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 정권의 의지와 원자력 발전 부대시설에 대한 개인 안전 보장의 문제 등이 그러했다. 그것들은 안전하고 잘 디자인된 사회에서 익숙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쉽게 생각해볼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몸에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구상할 수 있는가도 배울 수 있어서 즐거웠다. 밀양희망버스는 조잘조잘 대화가 멈추지 않는 축제같았다.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정신에 깃든 패기는 본디 밀양에서 송전탑으로부터 터전을 지키시던 어르신들의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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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떠나 4시간 다시 내달려 도착한 우리들은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도시, 서울로 다시 스며 흩어졌다.

 

글 : 녹색연합 고영현 회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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