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르네쌍스’의 치명적 함정

2010.03.22 | 탈핵

“원자력 꽃이 피었습니다.” 원자력 르네쌍스가 왔다고 야단법석인 언론기사 중에서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은 문구이다. 원자력을 ‘꽃’에 비유할 정도이니, 한국사회에서 원자력발전이 제대로 날개를 달았다.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의 맨 앞자리에 ‘원자력’과 ‘4대강’을 내세우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원전 4기 수주를 계기로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라갔고, 원자력은 곧 ‘국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 언론은 원전수출의 경제적 효과와 성공신화만 전달할 뿐, 균형있는 심층보도를 외면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원자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애국심’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더 지을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소의 확산도 우려스럽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 더 걱정이다. 한 학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원자력 관련 사생대회, 글짓기, 견학 프로그램이 워낙 많아서 본인도 원자력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정도라는 것이다. 좋은 에너지니까 학교에서 어련히 알아서 교육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20세기 초등학교 반공교육을 21세기에는 원자력교육이 대체한 듯싶다.

도를 넘은 정부의 원자력 홍보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의 3.7%는 전력산업 기반기금으로 조성된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전력산업 기반기금에서 매년 1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아 TV광고를 포함해 원자력 홍보비로 사용한다. 나처럼 원자력발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전기를 쓰면서 원자력 홍보비를 지불하는 셈이다. 정부는 광고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자력은 값싸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다. 녹색성장에 알맞은 청정에너지이다”라고. 그러나 그렇게 좋은 이야기만 하기에는 당장 우리 앞에 닥친 숙제가 만만치 않다.

원자력발전소가 ‘고령화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1978년에 세워진 고리 원전1호기는 2008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지만, 정부가 10년을 더 연장해 운영하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의 수명이 만료된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원자력이 생산한 전기를 소비만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발전소 폐쇄와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 고령화시대, 핵폐기물은 어디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이 당장 문제이다. 정부는 올해 6월 완공을 목표로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처분장 부지에 연약지반이 나타나 공사는 30개월이나 연장되었다. 부지적합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13일, 방폐장 안전성 검증조사단은 ‘경주 방폐장 처분 지역의 암반등급 편차가 커 설계와 시공에 유의해야 하지만 대책을 수립하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어떻게 부지 자체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서, 결론은 안전하다고 내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폐장 부지 안전성을 둘러싼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는 5년 전 정부가 부지를 선정할 때, 부지의 적절성보다 주민수용성을 우선순위에 두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독일은 아쎄(Asse) 중저준위 방폐장 지반에 균열이 발생해 지하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방폐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보관된 12만 6천 드럼의 폐기물을 이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0년이고, 이전 비용은 40억유로(6조 4632억원)로 추산된다고 한다. 아쎄 방폐장의 모습에 경주 방폐장의 미래가 겹쳐져 보이는 것은 단지 기우일까? 더욱이 우리는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이라는 훨씬 어려운 숙제를 앞두고 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의 숨은 비용

정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2022년까지 32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게 된다. 발전소를 새로 지을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리 지역에는 현재 가동하고 있는 4기에다가 신고리 1~8호기까지 완성되면, 한 지역에 원자력발전소가 12기나 들어선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원자력 대단지를 이루게 된다. 안전성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 환경적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늘어나면 그만큼 폐기물도 쌓이고, 대규모 송전탑도 더 세워야 한다.

원자력발전은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경직적이어서 일단 투자를 결정하면 후세대의 선택권은 제한받는다. 지금 세대가 지은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경제적 비용과 폐기물 처리를 일방적으로 후세대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계획한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다 짓게 되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나 크다.

원자력발전소 확대로 피해를 입는 것은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이다. 에너지수급 계획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재생가능에너지는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원자력발전은 에너지 효율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둔 에너지 씨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들어가는 돈과 노력과 시간을 빼앗아간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지구의 벗’은 핀란드가 올킬루오토 3호기에 지난 8년간 쏟아부은 15억유로(2조 8000억원)를 풍력발전에 쏟았다면,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용량의 발전소가 이미 가동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겨울철 전력소비 피크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원자력이 아니면 급증하는 전력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 자체에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사회에서 원자력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원자력이 아니면 안된다는, 원자력에너지가 없는 에너지 수급계획은 꿈조차 꿀 수 없다는, 대안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암묵적인 강요 말이다.

우리보다 총에너지소비량이 많은 독일은 2002년 원전폐기법을 발표하고,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해나가면서 빈자리를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체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수명 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원전폐쇄 정책 자체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그린피스는 ‘에너지혁명'(The Energy Revolution)을 통해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도,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고 기후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씨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그 작업을 할 자원과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도 이제 원자력에너지 없는 세상에 대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하는 것 아닌가. 에너지체제를 좀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해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원자력발전 철폐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전력수요 관리를 통해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가면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해가야 한다.

원자력 없는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며, 단 한기의 원자력발전소라도 덜 짓기 위해 전력소비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이 ‘꽃’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음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2004년 참여연대가 시도한 시민합의회의에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은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더이상 지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사회에서도 원자력의 어두운 면, 예를 들면 우라늄 채굴에서 발생하는 환경피해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 문제, 핵확산, 핵폐기물, 원자력 보조금, 재무위험, 원자력업계에 팽배한 비밀주의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원자력에너지의 득과 실에 대한 깊이있는 논쟁을 통해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에 대해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의 에너지정책에도 반드시 변화가 올 것이다.

이유진 / 녹색연합 정책위원

2010.3.17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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