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발전소 옆에 부산 경주 울산 있다 –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준 교훈

2011.04.18 | 탈핵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째. 사고등급은 레벨 7로 조정되어 체르노빌 사고와 동급 사고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체르노빌 사고에 버금간다는 것은 점차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하는 언론 태도는 날마다 첫 소식으로 원전을 다루던 이전과 사뭇 다르다. 일본 원전 상황보다 우리나라에 어떤 피해를 미치는 가에만 집중하더니, 그마저도 이제는 어쨌든 안전하다는 식의 정부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에 그친다.

지난 11일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3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주민대피지시가 내려졌다. 이미 경계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된 20킬로미터 지역에 이어 범위가 더 확대된 것이다. 15일엔 발전소로부터 6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학교에서도 체육시간 야외수업이 금지됐다. 이런 소식만으로도 일본 상황은 수습은커녕 점차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30- 60이라는 거리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워낙 거리 감각이 없는 나는 별로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지도보기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해 봤다.

한국의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20킬로미터 안에는 부산이 있다. 울산이 23.75킬로미터로 30킬로미터 안에 속하는 지역이다. 경주가 58.14킬로미터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일단 부산이 경계구역으로 출입금지와 주민소개령이 실시된다. 이어 울산에도 주민 대피가, 나아가 경주까지 옥외활동이 자제되는 일이 벌어진다. 인구 3백60만 부산에서, 1백만이 넘는 울산에서 주민대피가 이뤄진다는 것. 상상이나 가능한 일일까?

일본 사고를 접하며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진이 그렇게 잦은 땅에 그렇게나 많은 원전을 지을 수 있을까 이야기했는데,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쩌자고 한국은 저렇게 큰 도시 옆에 원전을 지었을까 이야기하지 않을까?

고리원자력발전소 60킬로미터 반경 속 도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인해 올 초까지 불었던 ‘원자력 르네상스’ 붐은 일단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춤했던 지구촌 시민들의 반핵운동이 각 나라 정부로 하여금 가동 중인 발전소 안전문제에 대해 점검하고, 발전소 추가 건설계획에 대한 수정, 수명연장 중단 등등을 촉구하고 있다. 당장 독일은 17개 원전을 모두 폐쇄하는데 속도를 내겠다는 결정을 했다. 애초 독일은 2021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으나 지난해 기민당 정권이 들어서며 이와 같은 결정을 다시 뒤집고 원전의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원전 사고 이후 25만 명이 모인 반핵집회와 58년간 기민당이 집권해온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녹색당총리가 배출되자 메르켈 총리는 입장을 다시 바꿨다.

독일과 같은 결정을 당장 다른 나라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대하긴 어렵지만 일단 원전 추가부지로 신청서를 낸 삼척에서도 반핵운동이 불붙고 있고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원 도지사 후보들이 원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거의 확실시 되었던 고리 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도 논란에 쌓일 전망이며 그동안 간과되었던 원전의 안전이나 사고시 대책에 대한 검토가 일제히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원전은 안전한가? 정말 사고 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가?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고 원전 노동자들이 죽음을 담보로 하지 않고도 사고수습을 할 수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을 하다보면 결국 답은 ‘없다’에 이르게 된다. 스리마일, 후쿠시마, 체르노빌 같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할 지 답은 있는가? 중저준위 폐기물이야 그렇다 쳐도 고준위 폐기물은? 수명이 끝난 원자로는 안전하게 해체할 수 있는가? 과연 해체기술은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을 하다보면 마찬가지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1955년 처음 원전을 상업화한 이래 반세기가 지나 과학기술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답이 새삼 뭔가를 다시 점검하고 검토한다고 찾아질 수 있을까? 아마도 유일하며 그나마 현실적인 답은 원전 중단 정도가 되지 않을까? 원전 중단을 고려하지 않고는 아무리 답을 찾아 헤매도 결국 헛수고라는 것,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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