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우리동네에 핵발전소 건설, 찬성하십니까?”

2022.03.22 | 탈핵

글. 변인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

“우리동네에 핵발전소 건설, 찬성하십니까?”

지난 2월, 녹색연합이 함께하는 탈핵대선연대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물었던 질문입니다. 최근 들어 핵발전소가 필요하고,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이라는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필요 여부를 떠나서 정작 ‘어디에 지을 거냐’는 물음에는 누구도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다는 현실에 쓴웃음을 짓게 되는 요즘입니다. 

핵발전소는 어디에 있을까요? 총 25기의 핵발전소는 경주, 부산, 영광, 울산, 울진 5개 지역에서 한 지역 당 적게는 2기부터 많게는 7기까지 가동되고 있습니다. 모두 바닷가와 가깝게 또 수도권에서 먼 곳에 위치합니다. 경기도와 서울은 전기 사용량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선 보이지 않는 핵발전소가 ‘우리동네에 세워진다’는 가정은 그 간 놓쳤던 것들을 알게 했습니다. 전기를 거의 생산 하지 않는 대도시는 전기를 만드는 과정의 여러 일상적인 위험에서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요. 대도시에 사는 저는 책임지지 않는 소비를 하면서 내 집 앞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불안감과 사고 위험, 일상적인 방사능 피폭 그리고 전기를 보내기 위해 세워진 송전탑의 위험에서도 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안전에 100%란 없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자연재난에도 안전하다고요. 미흡한 부분은 계속 보완해나가면 된다고요. 하지만 언제 어디서 올 지 모르는 위험을 어떻게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을까요? 특히 핵사고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3번의 핵사고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특히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일상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일대 마을과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를 덮쳤습니다. 침수로 비상전력마저 끊기자 핵발전소 내부를 식혀주던 냉각수 공급이 멈추며 고온에 핵연료봉이 녹아내렸고 연이어 수소폭발과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습니다. 총 4기의 핵발전소 사고로 ‘1년 간 방출될 양의 방사능이 1시간 만에 누출되었다’고 발표할 정도의 최악의 사태에 약 16만 명의 주민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급히 피난했습니다. 책임자들의 불투명한 정보 제공과 늦장 대처로 사고 직후 1주일이 지나도록 피난가지 못한 시민들은 자신의 몸의 변화를 기록해 방사능 피해를 고백하거나, 일부 피난민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탈핵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피난민들은 말합니다. 일본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이자 안전하다고 했기에 불안했지만 핵사고를 의심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 핵재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녹아내린 핵연료는 사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울만큼의 높은 방사선과 여전히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습니다. 열을 식히는 과정에서 나오는 막대한 오염수를 포함해 사고를 수습할 방법을 찾는 건 계속되는 과제입니다. 또한 제염작업이 마무리 되었다는 지역에서는 일부의 피난민들이 귀환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이 측정되지만, 일본정부는 귀환곤란구역을 제외하고는 안전하다며 피난지시를 해제했습니다. 주택 보조금과 지원금 중단을 빌미로 생계를 꾸려야 할 사람들은 불안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지역에서 어떤 기반도 없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피난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귀환한 사람들도 예전의 일상과는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일대의 오염을 제거하는 수천명의 제염작업자들은 고준위 방사선에 피폭되었고, 소아갑상선암의 증가와 같은 피해와 더불어 후쿠시마현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해류와 공기를 타고 방사성 물질은 퍼지고 있습니다. 사고 이후 11년, 아직도 핵재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핵발전, 이제 그만

저는 녹색연합에 들어와서야 제 눈으로 처음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를 보았습니다. 마을 바로 옆에 지어진 짙은 잿빛의 매끈한 돔 모양의 핵발전소 6기가 줄지어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도 더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 곳을 떠나던 길,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운 바다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다가도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핵발전소는 마음 한 켠에 불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심각한 국제 원자력 사고 7등급으로 분류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참혹한지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눈감고 오늘도 핵발전을 가동하는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가치를 선택한 걸까요? 가동되는 핵발전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방사능에 피폭되고 삼중수소의 누출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지역 부동산과 상권은 침체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핵산업계는 핵 없이 전기가 얼마나 비싼지 그리고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재난에 대비해 우리나라의 핵발전이 얼마나 안전한지만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후쿠시마 사고 대책으로 마련된 설비들의 성능이 미달되거나 불량임이 드러났고, 매년 강도가 세지는 태풍과 집중호우에 핵발전소가 집단 정지하거나 일부 설비가 침수되며 언제든 핵발전이 핵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계속해서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그 뿐 일까요. 핵발전을 할수록 늘어나는 핵폐기물, 10만년 이상을 격리시켜 보관해야하는 쓰레기의 위험 역시 대책없이 쌓여만 갑니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우리 동네에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찬성할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단 한 번의 사고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들이 말하는 안전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지켜보았습니다. 핵발전의 위험과 사고는 일부 지역과 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이 더이상 우리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이제 그만 멈춰야 합니다.  

이 글은 빅이슈 271호 녹색빛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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