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한 원전신화는 이미 깨졌다. 탈핵이 필요한 이유

2022.03.25 | 탈핵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29%는 해안가에 위치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핵발전소 운영과 사고 위험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상이고 생명과 삶의 터전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핵발전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거리가 있는 ‘남의 일’이기 쉬웠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원전보다 안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 문재인 정부는 탈핵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신규 핵발전소 사업과 원전 수출 시도, 소형모듈형원자로 개발과 투자가 지속되어 왔다. 마지막 발전소인 신고리 5,6호기가 설계수명 60년을 채운다면 탈핵은 2080년이 지나야 완수된다. 삼척과 영덕에서 계획된 4기의 신규 사업이 종결되었을 뿐, 허가된 신한울 3,4호기 발전사업 기간도 연장되었다. 대선 기간 내내 신한울 3,4호기 사업 재개 이야기가 나온 불씨는 문재인 정부에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 K-원전을 통해 미래 환경 산업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탈원전 폐지와 원전 최강국을 공약했다. 원자력 비중을 30%대로 유지할 것이고, 신규 원전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수명이 만료된 핵발전소도 연장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핵발전소 10기를 해외로 수출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원전 산업의 생태계와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 산업을 위기에서 구할 때 국민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면 구해야 할 것은 원전산업일까? 국민의 안전일까?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까? 안전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까?

문제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둘 다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희망이고 자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11년 전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17만 명의 삶터를 앗아갔다. 고독성 핵연료 잔해물을 수습하려면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독일 지멘스는 원자력 사업에서 철수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에 파산했고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던 도시바는 경영난을 겪으며 분할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아레바도 핵연료 기업으로 축소되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체르노빌에 이어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신화를 부수어버린, 에너지가, 산업이 변화해야 함을 보여준 참사였다. 이런 와중에 일본정부는 매일 쏟아지는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고 하여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공존할 수 없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조합으로 탄소 중립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 두 조합은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는 햇빛이 비치거나 바람이 불 때 전력을 생산하는 변동성 에너지이다. 시시 때때로 출력을 줄이고 늘리는 것이 간단치 않은 경직성 전원, 원자력과는 안정적인 계통 운용을 할 수 없다. 공존할 수 없는 두 발전원 중 선택의 영역에서 국가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해야 할 결정은 국민의 안전이어야 한다.

원자력은 기후위기의 대안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와 태풍, 폭염 등으로 핵발전이 불시 정지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2020년 9월 태풍으로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 6기가 정지했다. 2021년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해양생물(살파) 유입 증가로 한울 1,2호기가 정지했다. 2019년 프랑스 남부 골페슈 핵발전소 2기의 가동은 냉각수 과열로 중단되었는데, 이미 2003년 폭염으로 프랑스의 핵발전소 17기는 가동을 중단하거나 출력을 줄였던 선례가 있다. 2020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터키포인트 핵발전소 4호기가 호우로 불시 정지되었고, 아이오와 주의 듀안아놀드 핵발전소가 폭풍에 냉각탑이 파손되고 외부전원이 차단되며 정지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위기에 안전한 발전원이어야 한다. 후쿠시마 핵사고도 침수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핵폐기물은 어쩌려고

2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매년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페기물)의 양은 무게로 약 750톤이다. 지난 40년간 약 2만 톤이 쌓여있다. 단 1g만으로도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독성 페기물이다. 10만년 이상을 모든 생명체로부터 격리시켜 보관해야 하지만 처분장(폐기장) 부지를 확정한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뿐이며, 처분장 문제는 핵발전 국가들의 대표적인 갈등 현안이다. 우리나라 역시 수십 년 전부터 굴업도, 안면도, 위도에 처분장을 지으려다 번번이 반대에 부딪쳤다. 핵폐기물 문제는 핵발전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쓰는 전 국민의 책임이자 숙제이다. 핵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많이 쓰는 서울, 수도권 어딘가에 핵폐기장을 짓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도 계속 핵발전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이 핵발전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했다고?

2월 초 유럽연합의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에 핵발전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은 핵발전이 친환경으로 인증된 사건인 것처럼 해석되었다. 그러나 핵발전이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2050년까지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 확보와 운영 계획, 심의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핵폐기장 건설 운영 문제는 수십 년간 핵발전을 해 온 국가들이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이며, 사고가 나더라도 보다 오래 버틸 수 있게 하는‘사고저항성핵연료’를 사용하려면 기존의 핵연료 설계구조를 바꿔야만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갖고 있는 기술이지만, 프랑스도 아직 시험 중일 뿐이다.

기후위기를 피한다는 명분으로 핵발전을 유지한다면 방사능 오염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국민들은 벗어날 길이 없다. 위기와 위험은 둘 다 피해야 한다. 탈핵의 시점을 하루빨리 앞당기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선택해야 한다.

글.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070-7438-8512, mayday@greenkorea.org)

중앙일보 3월 25일자 오피니언 일리있는 논쟁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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