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탄소중립, 좋은 삶을 추앙하다.

2022.06.20 | 탈석탄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3일 오후 4시, 핸드폰 날씨화면에 32도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에어컨 필터 청소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독이고 찬물에 세수를 하려 수도꼭지를 돌리니 뜨뜻한 물이 흘러나온다. 조금은 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활동을 즐기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 이렇듯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지구인의 숙명이구나. 싶다. 아니,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일까.

# 산과 바닷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병

지난 5월 31일 저녁 시작된 밀양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불과 두어 달 전 열흘 가까이 불타오르던 울진, 삼척, 동해안으로 향했던 전국의 소방인력이 이번엔 밀양으로 모여들었다. 1986년 산불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6월에 발생한 대형산불이라고 한다. 미국과 호주의 고온건조한 기상에서 발생한 산불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이다. 기후재난이다. ‘유례없는’, ‘최초의’와 같은 단어들은 기후위기로 점점 더 강력해지는 위험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됐다. 기후재난은 산 뿐 아니라 우리의 시선 밖에 있는 바닷속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통 ‘바다’라고 하면 잘 손질된 마트 진열대의 해산물, 뜨거운 여름 떠나고 싶은 휴양지를 떠올리겠지만,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추운 곳에는 따뜻한 기운을, 뜨거운 곳에는 시원한 기운을 나누며 묵묵히 지구온도조절 장치 역할을 해오던 존재가 바로 바다다. 그런 바다의 상태도 심상찮다. 찬 바다를 좋아하는 명태는 동해에서 더 이상 잡히지 않고, 크고 작은 물고기와 바다생물들의 서식지 역할을 한 바다숲이 사라져 하얀 사막처럼 변화하고 있다. 바다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자신의 능력치를 넘어 온몸으로 흡수해야만 했다. 쉬지 못하고 열일을 하느라 지구온도조절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열병을 앓고 있다.

# 평등하지 않은 재난

기후위기는 산과 바다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어업 종사자나 야외 노동자와 같이 당장 안전과 생계가 직결되어있는 경우 기후위기는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직업뿐 아니라 소득수준에 따라 기후위기는 더욱 가혹하게 몰아세운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은 기후위기로부터 건강을 지킬 만큼 튼튼하지 않다. 그런 집은 대부분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사는데, 추위와 더위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냉난방을 위한 비용을 지출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2005년, 가스·전기요금을 납부할 여력이 안 돼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로 견디다 화재가 발생해 15세 소녀가 사망했다. 이 사고는 에너지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되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냉난방을 갖추지 못하거나 갖추었더라도 비용부담으로 적절히 사용하지 못해 집안에서 질병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데 더 많이 기여하지만, 그들은 기후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정신건강까지 위협한다. 폭염, 폭우, 산불 등 자연재난이 잦아질수록 기후위기를 실감하면서도, 이러한 재난에 익숙해져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암울한 상상을 종종 한다. 거대한 기후재난 앞에 뚜렷한 대책 없는 사회에 무력감을 느끼는 기후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들은 주로 기후위기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청소년과 청년들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은 말 못하는 동물과 생태계,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 좋은 삶은 뭘까.

세계 최고 성능의 전자제품과 인터넷을 사용하며,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는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중 서른다섯 번째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GDP는 세계 10위이지만, 에너지소비는 9위, 온실가스 배출은 11위로 에너지 과소비 국가이자 온실가스다배출국가다. 코로나19로 돌봄노동, 가사노동이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임을 확인했지만, 이는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질병을 얻으면 삶의 질은 낮아지지만, 의료비 지출이 많아질수록 GDP는 상승한다. GDP로 계산되는 경제성장은 1년 동안 새로 만들어 사고판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산한 수치일 뿐,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사회·경제적 불평등,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GDP와 경제성장이 마치 모두의 ‘좋은 삶’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이고, 그 기준을 좇으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인 것처럼 말한다. 세계적인 추세인 탄소중립을 추진하면 마치 더 이상 그 삶을 누릴 수 없으며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에 다니며, 자동차를 끌고, 일주일마다 바뀌는 유행에 맞춰 옷을 사는 삶은 좋은 삶일까? 마음껏 소비하고, 버리고, 바꿀 수 있는 삶이 풍요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우리들의 욕망일까? 외부로부터 각인된 욕망일까.

#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는 각국 정부 대표단이 참석한 최초의 국제환경회의였다. 이날을 기념해 매년 6월 5일을 환경의날로 지정했는데,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올해의 주제는 50년 전 첫 회의와 같이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로 정했다. 50년째 각국이 모여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매우 의미 있지만 그 50년간 유례 없이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결정적으로 앞당겼다는 사실은 매우 씁쓸하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시대가 올 것을 훨씬 오래전부터 예측했지만 이를 대비하기보다는 지구의 마지막 남은 단물까지 빨아먹으며 경제성장만을 좇지 않았나. 지구 밖에서 살아갈 수 없는 지구인의 유일한 집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더 일찍 탄소중립을 준비하고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탄소중립은 경제성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아니라, 지금의 기후위기를 초래한 시스템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하나뿐인 지구에서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좋은 삶’은 선택의 여지없는 추앙해야만 하는 생존이다. 뒤늦게나마 한국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 목표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공동체는, 기업은,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날 기후위기를 초래한 기존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고 함께 만들고 살아갈 ‘좋은 삶’은 과연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탄소중립의 시작일 것이다.

글. 김세영 / 녹색연합 활동가.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 저자.

*이 글은 홈리스 자립에 힘쓰는 빅이슈 코리아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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