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말했다. 답답하면 직접 나서서 뛰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그땐 웃었지만 광장에 나서보니 맞는 말이었다. 광장은 대한민국의 뿌리다. 헌법 전문에 의하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할 것을 다짐한다. 이는 일본 제국의 강제점령에 저항하고 이승만의 헌법유린, 부정선거에 항거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국민으로부터 이 나라 헌법의 토대가 세워졌다는 뜻이다. 법과 질서를 해치고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를 광장에 모인 국민이 직접 끌어내린 역사야말로 대한민국의 핵심 유산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광장으로 민주주의의 터를 옮겼다.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세워진 나라다. 이 나라 국민 누구나 광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발화되지 않는 목소리가 있다.
계엄 직후부터 광장에 꾸준히 머릿수를 더하고 있다. 한 번 다녀오면 방한용품을 하나둘 구매할 정도로 대부분의 날들이 추웠지만, 특히 2월 8일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날씨였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전기장판 켜놓은 침대에서 이불을 덮은 뒤 만화책을 보다가 잠들고 싶었다. 민주주의고 뭐고 흐르는 콧물부터 닦고 얼어버린 볼부터 녹이고 싶었다. 일 분에 한 번씩 집에 갈까 생각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덜덜 떨고 있었다. 녹색연합이 광장에서 내야 할 목소리가 아직 남아있었다. 발화되지 않은, 발화될 수 없었던 목소리를 대신하기 위해 활동가들은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냈다.
광장이 학교라는 말에 매번 고개를 끄덕인다. 출신과 배경이 다양한 이들이 단상에 올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생생히 이야기하는 순간 광장에 모인 이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여성, 장애인, 노동자, 학생, 이주민, 농민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삶에 대한 이야기가 쉼없이 이어진다. 엄연한 주권자임에도 공부에나 신경쓰라며 정치 현안에서 밀려난 학생, 열심히 일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함에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권마저 뒷전이 된 이주민 등 직접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이 평평한 광장에서 기꺼이 나눠진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뒷전으로 밀린 목소리가 있다. 바로 자연의 목소리다. 산양의, 구상나무의, 백두대간의, 기후의, 바다의, 사육곰의 목소리다. 인간의 목소리로 발화할 수 없는 비인간 존재들은 윤석열에게 함께 탄압 당하고도 뒷전으로 밀린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훼손당하고도 직접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인간 존재를 대변하며 박스에 손으로 그린 피켓을 흔들었다.

환경단체가 쓰레기나 주울 것이지 왜 탄핵을 외치나요. 실제로 들은 말이다. 하지만 녹색연합은 시민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나라에서는 운영될 수 없는 조직이다. 시민단체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을 국민이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 토대 아래에서만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반민주국가에서는 시민단체든 시민이든 국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2023년 9월 1일, 4대강재자연화시민사회위원회를 담당했던 녹색연합 정규석 사무처장에게 참고인자격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1991년 창립 이래로 환경을 해치는 정책이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비판해온 녹색연합을 이렇게 부당하게 탄압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윤석열의 반민주적인 정치관이 시민단체를 억압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잘못된 정책과 퇴행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의 정당한 활동을 탄압하는 정부 아래에서 환경정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될 리 없다. 실제로 준비단계에서부터 의혹만 가득하고 부실조사논란이 제기되었던 대왕고래 프로젝트도 결국 실패로 공표되지 않았나. 그뿐이라면 다행이다.
반대하는 사람 입을 틀어막는 정치자가 자연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랴.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했던 것처럼 환경 훼손에도 앞장섰다. 소상공인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핑계로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플라스틱 규제 정책을 무기한 유예시켰다. 대책없이 급변하는 정책 기조 때문에 신규산업에 뛰어든 많은 바이오 플라스틱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반품으로 인해 재고만 부담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를 들먹이더니 폐기물 대책도 없이 경북 울진에 핵발전소를 새롭게 짓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 지역을 위해 엉뚱한 지역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하는 방식은 계속 제기되는 전력망 포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정의로운 에너지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또한 탄소를 현재와 다름없이 배출하다가 목표일에만 급격히 감축하겠다는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은 스쿨존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횡단보도 앞에서만 잠시 멈추겠다는 생각만큼 위험하다.
역행하는 기후 정책, 오염된 반환미군기지 개방, 설악산 국립공원을 짓밟는 ‘친환경’ 케이블카, 무안공항 사고에도 멈추지 않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 전세계가 탄소감축을 위해 협약을 준비하는 와중에 새로 건설한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환경파괴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목소리 없는 비인간 존재들은 광장에서 자신을 지킬 방법을 요구하지 못한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광장에 나선다. 민주주의 사회와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연을 지킬 실효성 있는 방법을 촉구하기 위해 탄핵과 환경 의제를 외친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자는 자연도 짓밟는다. 비인간 존재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곳에서는 인간의 목소리에도 순위가 매겨진다. 이 빌런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환경도 파괴하려 했다. 모두의 광장에서 녹색의 깃발이 휘날리는 한, 당신 뜻대로 될 일은 없다.

글: 김다정 (녹색연합 홍보팀)
*이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