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맴도는 문장이 있다.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 수 있을까> 재판부에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판결을 촉구하며 2025년 8월 12일 전북 전주에서부터 한 달간 서울 양재까지 약 250km를 걸어온 ‘새사람 행진단’이 들고 있던 현수막에 쓰인 문장이다.
새만금신공항의 예정부지 전북 군산 수라갯벌은 저어새, 황새, 넓적부리도요, 검독수리, 큰뒷부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큰기러기, 검은머리물떼새 등 매년 24만 명의 철새가 머물다 가고, 멸종위기종 59종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탄소흡수원이자 생물다양성 보고인 수라갯벌에 신공항을 새로 짓는 것은 항공기 운항을 점차 규제하는 국제 추세를 역행하고 기후 생태 위기 시대를 오독한 일이다.
얼마 전 환경법 강의를 들었다. 현행 환경법의 한계는 분명하다. ‘인간이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큼 개발해도 되는지, 오염시켜도 되는 선은 어디까지인지를 이야기할 따름이었고, 이 문법 아래에서 비인간 자연은 인간을 위해 관리되어야 할 자원이고 재산일 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여 바라보는 이 관점이,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이 인간중심적 체계 자체가 생태위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 법체계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권리와 법적 인격의 정당한 보유자이다. 현행 “행정소송법” 체계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이, 즉 ‘원고적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환경파괴는 인간이 거주하지 않지만,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인간 중심의 법체계로는 자연 파괴와 착취를 막기가 어렵다.
개발 대상지 거주자가 아님에도 원고적격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있다.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 을숙도에서 오랜 시간 새를 관찰ㆍ연구해 온 A씨는 건설 공사를 하게 되면 자아실현 등 ‘인격적 이익’을 침해받을 수 있음에 원고적격을 인정받았다. 30년 넘게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해 온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 대표의 경우 또한 그러한 사례다. 드물고 귀한 사례지만, 생이 꺾이고 터전에서 뿌리 뽑히는 비인간존재의 생명권ㆍ주거권에 앞서 자아실현 등 인간의 인격적 이익이 먼저 원고적격으로 인정받는 이 상황이 참 이상했다.
이러한 기존 법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개념이 ‘자연의 권리’이다. 자연의 권리는 살아있는 생명부양 체계로서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인 자연이, 단지 인간의 이익을 위한 자원이나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법 주체로서 지위를 부여하고자 권리를 호명하는 것을 말한다.
녹색연합은 지난 11월 20일, 2023년부터 다뤘던 ‘자연의 권리’를 2025년에도 주제 삼아 그린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올해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사례와 함께 미국, 아일랜드, 에콰도르 등 세계 각국에서 전하는 자연의 권리 이야기를 모았다.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시한 에콰도르의 헌법제정회의 자문으로 참여했던 미국 환경법 전문 변호사 토마스 린제이는 자연의 권리 개념과 에콰도르, 미국, 파나마 등에서의 생태법인 사례를 설명하였다. 그는 인권이 법을 통해 가장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듯, 자연에도 이 개념을 이전하여 가장 높은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이 자연의 권리 운동이라고 말했다. 존재할 권리, 번성할 권리, 진화할 권리, 복원될 권리, 서식지를 가질 권리 등이 실제 집행 가능한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생태계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연의 권리 법을 통과시킨 지역이나 부족 보호구역은 그 행정구역 밖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의 장수진 대표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도화 과정과 생태법인 지정 이후 더 고민해 가야 할 지점에 대해 나누었다. 그는 해양보호구역(MPA)을 지정하고 선박 관광 기준을 마련하는 등 여러 위협 요소로부터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려 해왔지만 결국 실효성이 없었던 것처럼, 단지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짚었다. 선진성을 과시하는 명목상의 선언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를 정확히 실행하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촘촘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지자체가 지정하는 관리인을 통해 법적 권리를 행사하게 되기에 정치적 입장과 이권에 좌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함을 지적했다.

아일랜드의 ‘Yes to Life No to Mining’ 소속 자연의 권리 활동가 린다 설리반은 아일랜드에서 어떻게 자연의 권리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금, 아연, 보크사이트 등의 광산 채굴과 메탄, 암모니아 등을 대량 배출하는 산업화 농업에 대항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지역 의회에 자연의 권리ㆍ생물다양성법안을 발의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추출주의에 대해 자연의 권리로 대항하고 이를 국제적 연대로 확장하는 전국적 네트워크 운동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자연의 권리를 위한 세계 연맹(Global Alliance for the Rights of Nature, GARN) 대표 나탈리아 그린은 2008년 에콰도르 헌법이 제정된 이후 어떻게 자연의 권리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국제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지 소개했다. 에콰도르의 폭포에서 멸종된 줄 알았던 손톱만 한 개구리(rana nodriza confusa)가 발견되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산 회사와의 소송에서 승소하여 구리 채굴을 막아낸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황준서 함부르크대학교 연구원은 자연의 권리가 주는 사회적 상상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회적 상상력은 다양한 사람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주는 결속력을 지니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전환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의 여러 가치 중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또 지양해야 할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상상력이 제도화되고 규범이 되면 그 위에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연의 권리를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새롭고 더 바람직한 사회적 상상력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구체적인 사례들이 귀하게 여겨진 이유는, 아직 내게 자연의 권리가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보다는 선언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자연의 권리 개념이 낯설고, 사례도 드물다.

강연 끄트머리에 참가자 한 분이 질문을 남겼다. ‘자연과 우주 질서 파괴자로서의 속성’과 ‘자연과 우주 존재 속 생명의 진리를 드러내는 자’로서의 속성 중 후자의 속성을 강화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사회적 체계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가? 이야기는 수동적으로 흘러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의 여지가 있음을 상상하게 한다. 웅성웅성 이야기 나누며 관점을 세우고, 함께 동의하는 가치를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의 담론을 만드는 일이다. 미국, 아일랜드, 에콰도르, 뉴질랜드의 이야기는 우리 상상의 범위를 넓히고, 논의의 힘을 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두텁게 쌓아가기를 희망한다.

이름 : 소하연(녹색연합 이음팀)
*이 글은 빅이슈에도 기고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