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활동과 쉼의 경계 너머에서

2026.03.02 | 환경일반

현장 깊숙히 들어가 자연에 안기는 녹색순례.

“만약에 평일 중에 하루 더 쉰다면 수요일이랑 금요일 중에 언제쉴래?” 휴일에 대한 상상을 펼치며 나는 말했다. “금요일에 쉬면 연달아 쉬니까 더 푹 쉬지.” 짝꿍은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수요일은 업무적으로도 중요한 날이니까 쉬면 안 되지. 흐름이 깨지지 않게 집중해서 일해야지.” 우리 사회에서 쉼은 노동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던 한 선배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노동이 삶을 점령했다

노동은 생산이다. 측정할 수 있고 교환 가능한 것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활동으로, 노동의 역할을 통해 내 존재를 인식하기도 한다. 반대로 이 정의 안에서 쉼은 비생산으로 구분된다. 모두가 쉼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쉼은 노동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디까지가 쉼이고 노동인지 경계도 모호해졌다. 퇴근 후 가족과 서로 돌보는 시간은 ‘사랑’에서 ‘노동’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고, 휴일 모임에서조차 누군가는 ‘일이 되게끔’ 노동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 사회가 ‘쉼도 잘 쉬어야 한다’는 논리로 쉼을 도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에 꽉 채워넣은 취미생활이 나를 덮치고 있다고 느낄 때, ‘취미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할 때를 떠올리면 우리는 이미 생산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중독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잘’ 쉬고 싶어 안달내다가 나는 오히려 휴일에 지치기 일쑤였다.

노동의 이상적인 조건

최소한의 노동 환경이 받쳐준다면, ‘좋은’ 노동조건이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높은 임금, 일치하는 비전, 물리적 환경 등. 내 경우에는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실제 우리나라 연간 노동 시간은 OECD 평균보다 훨씬 길며, 일과 생활 균형 수준은 OECD 최하위권이라는 연구 결과를 미루어 보았을 때, 많은 이들이 비슷한 욕구가 있을 듯 하다. 

일터로서 녹색연합에는 노동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적 복지 시스템이 몇가지 있다. 기본적으로 주 35시간 근무 형태이다. 월 1회 ‘셧다운’으로 업무를 일찍 마칠 수 있으며 동아리 개념의 ‘스스로 프로젝트’가 주어진다. 주 2회의 원격 근무는 신청절차가 최소화되었고, 주말 근무 시 보상 휴가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3년 근무 시 1달의 휴가가 주어지고, 6년 만근 시 1년 안식년을 신청할 기회가 주어진다. 복지국가인 북유럽 친구들까지도 부러워한 이 근무조건은 활동가의 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이다. 물론 법적인 연차 제도가 있어도 실제 사용률이 낮은 현실이 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마치 활동가의 저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덕목처럼 여긴 탓도 있다.

엄연한 업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쉼이 될 수 있다. 모든 활동이 그러할 수 있다.

성장주의에서 내려와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아무리 노동환경을 개선해도, 내가 일 속에서 무엇에 매달려 있는지 알아채지 못하면 피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작년 한 해 활동을 중단하고 인도에서 요가하며 배운 건, 쉼은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 “행동 속의 무행동(無行動)”은 ‘Inaction in Action’이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활발히 행동하면서, 마음은 집착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불합리한 법이 성사되었을 때, 난개발 사업이 승인되었을 때 그 결과값의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뒤따르기에 우리는 잘 하고 싶고, 간절해질 수 밖에 없다. 바로 거기서 집착이 발생한다. 실패를 척도로 삼고, 결과를 ‘나의 존재 가치’로 환산하며 우리는 절망한다.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저 할 때, 오직 사랑과 기쁨으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집착이 멎는 모든 순간

쉼은 노동의 반대가 아니다. 쉼은 생산의 중단도 아니다. 우리는 일을 멈춰도 지칠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쉬지 못한다. 성과와 ‘나’라는 정체성에 머무는 마음은 쉼의 시간마저 노동으로 바꾼다. 내게 쉼은 집착이 멈춘 모든 순간이다. 이때 활동과 쉼의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노동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는다.

물리적 쉼의 시간을 갈증하고 있다면, 내 태도를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쉼은 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붙들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진다. 결과가 가장 중요한 성장사회에서 이 글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대도, 나는 이제 의도와 과정에 더 집중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활동가를 Activist라 번역한다. 행동하는 사람. 우리는 행동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해야한다. 결과값이 아니라 긴 과정에, 한숨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숨쉬면서, 속도가 아닌 방향에 집중하면서. 폭주하는 파괴의 현장에 질주하듯 대응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지만, 내 속도로 호흡하며 묵묵히 계속해서 실패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이름 : 김진아(홍보팀)

문의 : 김다정(홍보팀, 070-7438-8506)

* 이 글은 빅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