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회용컵 보증금제’ 이지경 만들다니…환경부 무능하다

2023.09.15 | 폐기물/플라스틱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행, 지자체가 선택 추진… 감사원 감사결과도 무시

지난 8월, 시민 271명이 전국 거리에서 수거한 컵은 2385개. 역시나 스타벅스컵이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잇는 브랜드는 메가커피. 매장 수가 많은 만큼 이용량도 많고, 버려지는 1회용컵도 많다. 카페나 음식점이 많은 길거리의 작은 턱 위나 쓰레기통 위에 쌓인 1회용컵을 쉽게 볼 수 있고, 1시간만 주워도 1회용컵으로 큰 봉투를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버려진 1회용컵을 환경미화원이 수거해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컵마다 재질이 다르고, 컵에 직접 인쇄를 한 컵은 재활용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재활용률을 높이고, 고품질의 재생원료로 만들기 위해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을 전국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지침을 전달하던 환경부는 왜 1회용컵에 대해 이렇게 관대할까.

거리에 버려진 1회용컵의 회수와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1회용컵 보증금제는 2023년 9월 현재,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행 중이다. 1회용컵이 제주와 세종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명동역 거리에 버려진 1회용컵들
쓰레기통위에 올려둔 1회용컵을 쉽게 볼 수 있다.
1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중인 제주지역에서 일회용컵이 수거된 모습

2022년 6월에 시행 예정이었던 1회용컵 보증금제는 시행일이 유예되고, 시행지역이 축소되며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 환경부는 관광지형으로 제주를, 오피스형으로 세종을 지정해 2022년 12월 2일부터 시행했다. 환경부는 그해 국정감사에서 1년간의 운영을 통해 전국 확대 시행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도 시행 9개월 만에 전국 시행 철회?

지난 9월 12일, 환경부는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에 대해 선도지역 현장 의견과 운영 성과 등을 모니터링해 플라스틱 저감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 문장만 보면 쟁점이 되는 내용도 없고,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그런데, 왜 다수의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화 철회’, ‘ 전국 시행 무산’이라는 기사를 냈을까.

그 이유는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환경부는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검토함에 있어 국회에 발의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의안번호 2124017호)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현행 법률에서 대상사업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규모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를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또는 시·군·구의 조례로 정하는 기준과 지역으로 바꾸는 법안이다. 이 개정안을 환경부가 언급한 것은 이 개정안을 토대로 1회용컵 보증금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권명호의원이 발의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

지자체가 선택하는 환경규제라니

이 개정안대로라면 제도를 시행할지 말지 지자체가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업종까지 할지도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업자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 지자체 조례로 사업자를 정하면 관리가 될까. 지자체별로 대상 업종이 다르면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A지역에서는 되고, B지역에서는 안 된다면 사업자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소비자의 컵 반환도 더 번거로울 수 있다. 1회용컵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본사의 지침없이 지자체마다 다르게 운영되기 어렵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자체는 제도를 시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선택사항이니까.

그렇다 보니 환경부가 1회용컵 보증금제의 주무 부처로서 책임지지 않으면서 지자체 자율성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플라스틱 오염과 1회용품 문제에 대한 사안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스스로 가진 규제권한을 자진해서 반납한 무능한 환경부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미 우리는 자율 시행의 한계를 20년 전에 확인했다

1회용컵 사용이 늘어나면서 2003년 환경부는 39개 브랜드, 3500여 개의  패스트푸드점 및 커피전문점과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해 1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했었다. 1회용컵 한 개당 50~100원의 보증금은 음료를 구매한 매장에 반납해야 받을 수 있었다.

컵 반환율이 40%가 채 되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불거졌고, 미반환 보증금이 기업의 판촉 비용, 홍보비 등으로 사용되면서 미반환 보증금 사용 용도의 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1회용컵 보증금제가 자발적 협약으로 진행돼 보증금 반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1회용컵 사용량은 매해 급증했고, 2017년에 들어서야 1회용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회용컵 보증금제는 1회용컵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사업자의 재활용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해당 사업자를 대통령령으로 업종과 규모를 정해 전국에 적용토록 하고, 미반환 보증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내용을 담아 2020년 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됐다. 15년 전 자발적 시행에 대한 결과를 다시 겪지 않게 보완한 제도라는 것을 환경부만 모르는 것일까. 

지난 8월 2일, 감사원은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유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환경부에 대한 조치사항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1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을 추진’하라고 적시했다. 2022년 7월 1일, 녹색연합은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유예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1회용컵 보증금제 제도 시행에 필요한 하위 법령과 고시를 조속히 마련하지 않아 제도 시행에 차질이 발생한 점,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일을 준수하지 못해 제도가 취지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현행 법률에 따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라 조속하게 전국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환경부가 이런 결정사항을 거스르고 전국 시행을 하지 않겠다면 타당한 이유와 근거 자료를 가지고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대체할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

감사원 공익감사결과대로 환경부는 전국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1회용컵 보증금제가 다시 도입된 이유는 명확

1회용컵 사용 저감 및 재활용을 위해 환경부와 커피브랜드가 맺은 자발적 협약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플라스틱 컵의 회수율은 7%, 종이컵 회수율은 13%에 불과하다.

1회용컵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회수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미 매장 내에서의 1회용컵 사용은 금지된 상황에서 포장 주문 시 발생하는 1회용 플라스틱컵의 회수는 매우 미미한 상황이고, 거리에 방치된 1회용컵은 쓰레기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이 거리에 버려진 1회용컵 중 브랜드 로고가 인쇄되지 않은 1회용 투명 페트컵의 비율이 매우 높다. 전국 컵줍깅 캠페인에서 수거된 1회용컵의 40%가 투명페트 재질이었다. 이와 같은 컵들은 고품질 재생원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최근 생수, 음료 등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통해 컵을 다시 컵으로 재활용하는 체계가 갖춰졌기 때문에 투명 페트 1회용컵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고급 재생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투명 페트라 하더라도 1회용컵은 수거, 재활용되지 못해 여전히 쓰레기로 처리되고 있다.

1회용컵 보증금제, 중단될 수 있는 것 아니다

환경부가 1회용컵 보증금제를 포기하고 싶다고 제도가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부가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하지 않으려면, 감사원 결과를 뒤집어야 하고, 다시 법을 바꿔야 한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은 쉽게 개정되기 어렵다는 것을 환경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환경부는 세종시의 컵 반환율이 낮아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과 같은 소극 행정으로 시간을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수년 전 쓰레기 대란을 겪은 시민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권익위 설문조사(2021년 8월)에서 응답자의 83%는 1회용품 사용규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으며, 두잇서베이의 설문조사(2023년 3월)에서도 응답자의 70%가 플라스틱 사용 규제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답했었다. 전 세계 170여 개국이 모여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협약을 논의 중이며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제한하는 내용이 협약 초안에 담긴 상황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윤석열 정부는 1회용컵 보증금제를 국정과제로 선정, 대표적인 자원순환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1회용컵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환경부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발표한 자원순환 정책의 세부과제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이고,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회용컵 보증금제를 전국에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5nhc
* 문의: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허승은 (070-7438-8537, plusa213@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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