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 세계 금의 7%가 있는 곳, ‘도시광산’을 아십니까

2024.03.24 | 생활환경, 폐기물/플라스틱

[22대 국회에 바란다] 골덩어리가 된 ‘폐가전’… 쉽게 고쳐 쓸 수 있게 ‘수리’ 제도화해야

국제사회 흐름과 거꾸로 가는 환경 정책을 견인하기 위해 22대 국회에서 시급하게 제·개정해야 할 자원순환 관련 법률을 제안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의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순환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세부내용을 담은 입법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한 제안을 여덟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기자말]

▲ 적절한 수리업체를 찾지 못하고, 수리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면서 버려지는 전자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 녹색연합

서울에는 ‘금광’이 없다. 그런데 집마다 광물이 가득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고장 난 텔레비전,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에서 금, 은 등 희귀 금속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폐전자제품에서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바로 ‘도시 광산’이다. 도시에서 광물을 캐낸다는 뜻이다. 전 세계 금의 7%가 버려진 전기 전자 제품에 들어 있다고 추정한다. 내가 쓰던 전자제품에서 금을 추출할 수 있다니, 아마 다들 귀가 솔깃할 것이다.

반도체, 스마트폰, 전기차 등의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필수 재료로 쓰이는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은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대체재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러한 광물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면 기존에 사용했던 원재료를 재활용해야 한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금, 은, 구리, 알루미늄뿐 아니라 희귀 금속인 코발트, 탄탈룸 등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쓰임이 다한 제품을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환경에는 더 이롭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19년 유럽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 연구 결과,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의 수명을 1년 연장할 경우 2030년까지 매년 21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 수 있는데, 이 수치는 1년 동안 1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동일하다고 한다. 천연자원의 사용량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는데 제품의 수명 연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리 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유럽연합, 생산단계와 소비단계에서 수리권 강화


▲ 대부분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어 배터리 교체에도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 녹색연합

유럽연합은 제품의 생산단계와 소비단계에서 수리에 대한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제품 생산단계에서는 에코디자인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을 통해 내구성, 재활용성, 수리용이성 등을 고려해 제품을 설계하도록 했다.

에코디자인규정은 순환경제 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유럽연합의 핵심 조치로 제품의 순환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생산자가 준수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계획적 노후화 방지, 수리 정보의 접근성 보장, 제품 및 주요 부품의 내구성 확보, 부품 교체의 용이성, 제품의 재활용 등이다. 이와 더불어 유럽연합은 제품의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로 수집·저장해 공유하는 디지털 제품 여권 제도를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전자제품의 경우 부품 원산지와 구성, 수리 및 해체 가능 여부, 수명 정보 등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유하도록 해 제품의 재사용·재활용률은 높이고, 소비자 자가수리권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제품의 소비단계에서는 제품 수리 촉진 공동 규칙에 관한 지침(Proposal for a Directive on common rules promoting the repair of goods)을 통해 제품 보증기간ㅅㄹ 이후에도 수리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더 쉽게 수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제조사는 수리 후 제품에 대해 수리 보증기간을 추가로 적용하는 등 수리서비스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독립 수리업체가 제품 수리를 위한 부품이나 수리도구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각국은 수리활성화를 위해 수리 바우처 등으로 실질적인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 수리 플랫폼을 만들어 수리 가격과 예비 부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해 소비자가 수리 관련 정보나 도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 지침은 2024년 2월, 유럽의회, EU 이사회 및 EU 집행위가 최종 타협안에 합의함으로서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 후 법으로 성립될 예정이다.

제품 오래 사용하는 건 개인 취향 아니라 구조 문제

우리는 보통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에너지효율등급을 확인한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을 사면 에너지비용도 적게 들고,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수명은 지속가능한 재료를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제품의 구성, 수리 용이성, 재활용 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프랑스는 낭비방지순환경제법을 제정해 유럽 최초로 제품의 수리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수리가능성지수는 수리가 가능한지, 수리가 쉬운지, 부품 공급은 원활한지, 부품의 가격은 비싼지 등에 대한 점수를 매겨 측정한다.

제품의 수리 가능 범위를 계산해 1~10점까지의 점수로 표기, 점수가 올라감에 따라 붉은색에서 오렌지색, 노란색, 연두색, 녹색으로 구별한다. 2021년에 드럼 세탁기, 스마트폰, 텔레비전과 같이 이용도가 높은 5개 전기·전자제품부터 적용했고, 이후 전자제품의 견고함을 측정할 수 있는 내구성 등을 추가해 지속가능성 지수로 확대할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제품을 수리해서 오래 사용하고 싶은 것이 관심 있는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보고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수리보다 폐기 선택하는 사람들… 그걸 막을 방법

우리나라는 한국형 지속가능성지수로 자원효율성 등급 도입을 준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부문의 순환경제 촉진을 위해 친환경산업법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제품 설계 및 공정 개선을 지원하고 제품의 자원이용효율 평가 기반을 구축하도록 했다.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제품의 내구성, 수리 용이성, 재활용 용이성, 재생원료 사용성 등을 지표로 자원 효율성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으로 지난해 7월, 스마트폰과 무선청소기에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다.일부 전문가는 자원효율성등급의 지표로 검토되는 재활용 용이성, 재생원료 사용성 등은 사용 이후, 즉 폐기단계에 고려할 수 있는 요소로서 실제 소비자가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단계에서는 고려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므로 소비자의 제품 선택에 있어서는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원료 조달부터 폐기까지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는 정보 측면에서 봤을 때 재활용 용이성이나 재생원료 사용성 등은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다만 지속가능한 제품의 이용을 위한 정보로서 소비자에게 어떤 정보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보완할 필요가 있다.

수리업계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수리 산업의 활성화다. 수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제품이 설계되고, 수리에 필요한 부품과 정보가 제공된다 해도 궁극적으로 제품을 수리할 기술과 기술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수리 제도와 문화가 지속되기 어렵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파사와 수리 장인이 동네마다 있었지만, 이제는 수리 가게를 찾기 어렵고 찾는다 해도 수리에 드는 비용과 시간, 에너지를 계산해보다가 결국 ‘쉬운’ 폐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제품과 부품의 빠른 단종이 수리를 어렵게 하지만 수리 기술이 부족해서 수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전기차 사용자는 늘어나지만 수리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전기차를 다룰 수 있는 기술자가 부족하고 정비 시설이 구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동차 정비소 중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곳은 5% 미만이다.

하지만 물건을 덜 버리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프랑스의 수리·수선보조금 제도처럼 수리를 하는 소비자와 수리업자에게 수리비를 지원한다면 수리가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외도 값싼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제품을 선택하고, 수리해서 오래 사용하는 시민 의식과 문화도 필요하다.

수리 활성화 위해 22대 국회가 해야할 일

▲ 동네 곳곳에 쉽게 볼 수 있었던 전파사가 사라지면서 전자제품 수리도 어려워졌다.
ⓒ 녹색연합

즉, 제품의 생애주기에서 수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생산자는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수리가 용이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고, 수리 부품의 공급과 부품 유지 기간도 의무화해야 한다. 소비자는 제품 구매 시 수리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며 품질보증기간 내에는 무상 수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제조사는 품질보증기간 이후에도 일정기간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제공해 소비자가 더 싸고 편리한 수리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자가수리에 대한 정보와 부품도 포함돼야 한다.수리가 활성화되려면 소비자의 수리권 보장뿐 아니라 수리 산업의 기반도 마련되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 ‘수리산업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3년에는 소비자기본법이 개정되어 물품의 표시기준에 부품보유기간이 포함되었고, 순환경제사회법 제20조에는 수리에 필요한 예비부품을 확보하는 법적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기본법’ 및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 다루는 품질보증기간, 부품보유기간, 내구연수 등은 소비자와 사업자 간 사후적 분쟁해결의 권고기준으로만 사용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EU의 에코디자인지침은 사업자가 내용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품 출시에 제약을 받도록 해놓았기에, 우리도 생산자의 설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법률에서 생산자의 수리 책임과 소비자의 수리권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법률의 체계성이 떨어지고 내용은 파편화되어 있다. 순환경제촉진법, 소비자기본법, 친환경산업법,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등에서 발의된 제정안은 다른 법률과 상충되기도 해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순환경제 체제에서 수리 활성화를 방향을 정립하고,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타법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 실효성 있는 법률로 제개정 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 문의) 녹색사회팀 허승은 팀장 (070-7438-8537, plusa213@greenkorea.org)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https://omn.kr/27x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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