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국제플라스틱 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이틀째, 쟁점별 이견 여전히 커
[기자말] 2024년 11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부산에 집중된다. 지난 2022년 3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UNEA/RES/5/14)하고 4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INC-5 회의 과정을 기사로 발행한다. |
본격적인 컨택그룹 회의가 시작된 둘째 날, 회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옵저버 (observer)의 상당수는 복도를 서성였다. 회의장이 비좁다는 이유로 옵저버 참여를 제한하면서 전 세계에서 모인 옵저버들은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을 하게 된 것이다.
컨택 2그룹의 회의실에 참관인을 수용했는데 60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 입장을 제한하는 것 외에 다른 참여 방식에 대한 안내가 없다 보니 전 세계에서 모인 옵저버들은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채 하루종일 회의장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국제시민사회(Civil Society and Rights Holders Coalition)는 UNEP와 한국 정부를 향해 중요한 회의에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했다며 관련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국제환경단체 네트워크인 플라스틱추방연대(BFFP)는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선주민과 웨이스트피커 등이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과 관련, 한국 정부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투명성과 포용성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국제 협상 회의에서 옵저버는 시민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감시자 역할을 한다. 옵저버의 경험과 전문성은 협약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할 수 있기에, 그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옵저버들이 원활하게 협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속히 회의 운영을 개선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다.
플라스틱 협약, 무엇을 논의하고 있을까
회의 2일 차, 옵저버 대다수가 회의 참관을 차단 당한 가운데 2개 컨택 그룹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번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의는 협약의 주요 쟁점에 대해 4개 컨택그룹별 협상을 진행하고, 그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12월 1일에 개최되는 본회의에서 최종 결과를 승인할 예정이다.
컨택 그룹별 논의주제를 보면 1그룹은 플라스틱제품 디자인ㆍ유해화학물질ㆍ플라스틱 생산 분야를, 2그룹은 폐기물 배출과 방출ㆍ플라스틱 폐기물 관리ㆍ기존 플라스틱 오염ㆍ정의로운 전환을, 3그룹은 재정ㆍ기술이전을, 4그룹은 국가계획ㆍ정보교환ㆍ건강ㆍ인식교육에 대해 논의한다.
각국은 해당 주제에 대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회의에서는 직접 발언하여 의견을 제시한다. 회의 첫날 의장은 다수의 국가가 의장의 비문서에 동의했음을 언급했고, 이 문서를 토대로 회의를 진행했다.
플라스틱 오염,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회의 2일 차 오전과 오후에는 2그룹과 4그룹의 논의가 진행되었고, 저녁에는 1그룹과 3그룹 논의가 진행되었다. 녹색연합은 1일 차 저녁과 2일 차 오전⋅오후에 2그룹 논의를 참관했다.
2그룹 논의에서 각국은 기존 플라스틱 오염과 공정한 전환에 관해 의견을 제시했다. 많은 국가가 기존 플라스틱 오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 또는 구역을 식별⋅평가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할지 자발적 조치로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의견이 갈렸다.
일부 대표단은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공통적이고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책임감뿐 아니라 신뢰와 형평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평성을 강조하다보면 더 낮은 책임에 치우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다수의 대표단은 정의로운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의 대상은 폐기물 수거자, 원주민, 플라스틱 오염의 부정적 영향을 받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여성과 어린이, 청소년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반면 대상자를 관련 산업 노동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국가도 있었다. 일부는 일자리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직업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추방연대(BFFP)는 이날 회의 중 1그룹의 플라스틱 공급 및 제품에 대한 내용에 대해, 여러 국가가 재사용을 긍정적으로 언급했으며 몇몇 국가는 재사용 및 수리 정책을 강화하고 제도적 조치를 수용하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3그룹의 재정 및 이행 수단 논의에 대해서는 일부 국가가 새로운 전용 기금을 지지하면서 재정 흐름을 조정하고 1차 폴리머와 플라스틱 생산업체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재정 메커니즘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고 분석했다. 4그룹이 다룬 협약의 목적, 범위, 원칙 및 전문에 대해서는 여러 회원국이 인권, 원주민 및 지역 지식 체계,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에 대한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재사용을 통해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
국제협약이 논의되는 회의장 옆 벡스코2전시장에서는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주제로 한 다양한 포럼, 세미나 등이 열린다. 협상회의 2일 차 오후에 열린 <아시아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위한 부문별 전략에 관한 포럼>에서는 일회용 소비재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이번 협약에서 반영되어야 할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일회용 포장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린피스 필리핀은 지역 공동체에서 재사용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한 결과 공용 리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도출했는데, 이를 확대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버블티 산업이 크게 성장해 왔는데, 2023년에만 1초마다 버블티 676잔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비영리단체 퍼시픽 인바이론먼트(Pacific Environment)는 중국 내 버블티 브랜드를 랭킹화해 기업이 어떤 방법으로 플라스틱을 줄이고 있는지 조사하고 발표하면서 이행과정을 추적하는 캠페인을 소개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없애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재사용⋅리필 캠페인도 공유했다. 필리핀은 리필스테이션 운영을 통해 13억 개의 병 사용을 줄이고, 인도네시아는 재사용 이니셔티브를 통해 일회용 플라스틱 2500만 개를 없앤 사례를 소개했다. 재사용 시스템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례 발표자는 여전히 일회용 플라스틱은 다른 포장재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재사용 리필이 항상 쉽지는 않지만, 구속력 있는 목표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전체 가치 사슬(value chain)에서 각 단위 별로 해야 할 역할과 내용을 고민할 수 있도록 이번 협약에 반영하거나, 이후 당사국총회(COP)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내용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국제 협약, 생산감축은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부터 시작되어야
이번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서 가장 큰 쟁점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라는 포괄적 목표에 접근하려면 사용량 감축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단계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엄격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규제는 재사용⋅리필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 단계에 이르는 전 주기적 관리를 통한 국제 협약이 성안 되어야, 생산 감축과 더불어 사용량도 줄이는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마련할 수 있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b5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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