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회 3일차에도 지지부진한 협상에 날린 일침,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촉매가 되길
[기자말] 2024년 11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부산에 집중된다. 지난 2022년 3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UNEA/RES/5/14)하고 4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INC-5 회의 과정을 기사로 발행한다. |
“생산은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의 일부입니다.”
“Production is part of the full life cycle of plastics.”
파나마 대표단의 한마디에 부산 벡스코 회의장 내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직도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각 나라의 입장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상황에서 던지는 강력하고도 용기 있는 경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의(INC-5)가 시작된 후 지난 48시간 동안 30억 개의 플라스틱 병이 생산되었고 1분마다 100만 개의 플라스틱 병이 소비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플라스틱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지구를 향한 공격이라며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률 초안 작성 그룹에 협약문안을 제출할 시간이 이틀도 채 남지 않았지만 협약문을 만드는 협상에 진전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회 3일차인 11월 27일, 컨택그룹 1(플라스틱 제품 디자인ㆍ유해화학물질ㆍ플라스틱 생산)과 컨택그룹 3(재정ㆍ기술이전), 컨택그룹 4(국가계획ㆍ정보교환ㆍ건강ㆍ인식교육)에서 협상회의가 진행됐다. 1그룹에서는 플라스틱 생산과 공급,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조치가 협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갈렸다. 심지어 플라스틱 오염은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잘못된 관리로 발생한다거나 소각을 포함한 폐기물 관리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등 협약의 범위를 플라스틱 생산이 아닌 폐기물 관리 측면으로 좁히려는 시도도 있었다.
유해화학물질의 경우 목록화를 통한 화학물질 전반에 대한 규제가 아닌 특정 물질만 지정해 규제하자는 언급과 이미 여러 다자 간 환경 협약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서 다루지 말자는 주장들이 여러 번 등장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은 여전히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간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 만일 특정한 물질만 규제한다면 비슷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다른 유해화학물질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유해화학물질을 목록화하여 비슷한 화학물질군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3그룹에서는 전담 재정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존 재정기구를 활용하자는 주장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또한 자금 출처를 두고 선진국, 다자기구를 통해 자금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과 협약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의 기부 특히, 플라스틱 생산수준이 높은 당사국의 기부를 언급하는 의견이 맞서 결국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
4그룹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협약의 조치사항을 국가가 필수로 이행하도록 할지 국가별 자발성에 맡길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며, 회의를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조항의 문구를 하나하나 지적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분명 2년 전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을 만들자고 결의를 했음에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협상회의 기간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는 ‘플라스틱에 대한 새로운 생각 Rethinking Plastic Life’라는 주제로 한국 정부가 진행하는 부대행사가 열린다. 이날 오후 2시에는 플뿌리연대로 함께하고 있는 자원순환사회연대, GAIA, BFFP가 <아시아 재사용 현황과 과제> 세미나를 진행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 아시아 국가의 재사용 정책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는데 우리나라는 환경부에서 직접 참석해 발표했다.
환경부는 순환경제에 관한 국내 정책의 변화와 흐름을 소개한 후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K-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발표했다. 품질이 높은 재생원료 만들고 산업에서 다양한 폐기물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선진화된 폐기물 수거ㆍ선별 시스템을 구축하고, 폐기물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또한 제품 디자인과 유통, 소비 단계에서 제품 사용의 순환성을 높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 해외에서 온 발표자들이 발표한 내용과 달리 환경부 자료 어디에도 세미나의 주제인 재사용과 관련된 사례나 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재활용에 초점을 맞춰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낮은 인식 수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국제환경법센터 CIEL은 INC-5 참석자 명단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INC-5에 등록된 화석 연료 및 화학 산업 로비스트는 총 220명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지난 4차례의 협상 회의를 포함해 가장 많은 숫자였다. INC-5의 개최국인 한국 대표단 140명, EU 회원국 대표단 191명을 훨씬 능가했으며 효과적인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과학자 연합(Scientists’ Coalition for an Effective Plastics Treaty)보다 3배 많다. 문제는 이 대규모의 석유화학업계 인원들이 INC 때마다 국가 대표단의 기술 전문가를 산업계 친화적인 대표로 교체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등 협약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 내리기 위한 로비를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옵저버는 회의 시작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등 옵저버로서의 역할을 제한받고 있고, 협상 회의가 시작된 이후 단 4명의 옵저버만이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자금력이 풍부한 석유화학업계의 영향력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글로벌 공동 목표가 소수 산유국과 석유화학업계 탓에 좌절될 수는 없다. 한국 정부와 각국 대표단은 이번 협약의 출발점이 바로 플라스틱 생산을 포함한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조치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b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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