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상 5일차, 100여개 국 생산감축에 대한 의견서 제출… 한국, 어떤 노력 하는지 드러나지 않아
2024년 11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부산에 집중된다. 지난 2022년 3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UNEA/RES/5/14)하고 4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INC-5 회의 과정을 기사로 발행한다. <기자말> |
149개 시민단체가 벡스코 앞에 모이다.
결국 전 세계 149개 시민단체가 벡스코 앞에 모였다. 강력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협약을 위해 활동해 온 시민단체들은 지지부진한 협상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거리에 섰다.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킬 마지막 회의에서 일부 대표단은 시간을 지연시키며 협약 논의를 방해해 왔고, 회의 중반이 넘어섰음에도 협상단은 의미있는 협상안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플라스틱의 전주기 관리를 통해 법적구속력 있는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고 이를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이번 5차 회의에서도 생산 감축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못한 채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일부 쟁점에 대해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비판도 나왔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미 170여 개국 정부 대부분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며 플라스틱 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대표단의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상에서 각국 정부는 더 용기 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INC-5 의장의 4차 비문서 발표,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협상회의 5일 차, 협상회의가 전격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그간 협상회의에 참관해 온 많은 옵저버(observer)들은 당황했다. 저녁에 본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 또한 취소되었다. 그날 오전 정부대표단은 쟁점이 되는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는데 4일 차까지 의견을 좁히지 못한 주제를 주로 논의했다.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되는 우려 제품 및 화학 물질(제3조), 생산(제6조), 재정, 재정 메커니즘 설립 포함(제11조)에 관한 내용을 논의했다.
이날 오후,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4차 비문서를 공개했다. 4차 비문서는 3차 비문서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이 일부 추가되었고, 3차 비문서에서 다뤘던 플라스틱, 플라스틱 제품, 미세플라스틱 외에도 나노 플라스틱, 플라스틱 오염,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정의를 여러 개의 옵션으로 제안하고 있다. 협약의 범위 설정에 있어 의료나 과학 연구, 실험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 대해 예외를 두는 내용을 담았다. 무엇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적용받는 부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또한 각국이 적극적으로 개진했던 내용이다.
‘플라스틱 제품 및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되는 우려 화학물질’에 대해서 각국은 특정 플라스틱 제품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하고 있고,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검토위원회에서 검토하도록 했다. 그럴 경우 제조, 수출 또는 수입 금지 가능성이 포함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조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생산 규제 vs 생산 내용 미반영
주요 쟁점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플라스틱 원료 물질)에 대해서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공동의 목표를 세워 생산을 규제하는 내용과 생산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먼저 공동의 목표를 세워 생산을 규제하자는 내용은 3차 비문서보다 강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3차 비문서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생산과 소비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이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공급을 관리하는 조치를 하도록 권장할 것을 명시했지만 4차 비문서에서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에 대해 글로벌 목표를 부속서에 채택하도록 했다. 글로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각 국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수입·수출량을 보고하도록 했다. 첫 번째 당사국 총회에서 이 조항의 이행을 위한 보고 형식, 시기, 방법론 및 지침을 채택하도록 했고, 5년마다 이행 진행 상황을 검토해 글로벌 목표를 업데이트하도록 했다. 그러나 생산 규제를 아예 삭제하는 내용도 같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도 높다. 생산에 대한 내용이 제외되면 최종 협약문에서는 생산에 관한 모든 조항이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파나마 대표단, 가는 길 막을 거면 길을 비켜라!
모든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의장의 비문서가 공개되면서 각 대표단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 한 기자회견에 관심이 모아졌다. 회의 3일 차, 플라스틱 오염은 지구를 위협하는 공격이라며 플라스틱 생산 감축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했던 파나마와 EU, 헝가리, 피지, 미크로네시아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협상회의 후반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생산감축에 대해 더는 물러설 수 없다고 공표한 것이다.
미크로네시아의 대표단은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국가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수산업에 대한 피해가 커지고, 이는 건강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지금과 같은 생산소비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미크로네시아의 대표단은 의사가 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듯이 플라스틱 문제도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생산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피지 대표단은 이번 의장의 4차 비문서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기준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INC-4와 회기간작업에서 많은 국가들이 우려되는 화학물질 문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논의해 왔는데, 화학물질 정보 교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우려 화학물질은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우려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공개는 사용 제한과 함께 논의해야 하며 이는 생산 감축과 밀접하다고 강조했다.
파나마 대표단은 “플라스틱의 60%가 일회용이고, 불필요한 플라스틱이다. 이미 대안은 있기에 생산 감축을 이끌 리더십을 원한다. 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겠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손을 떼라”고 일갈했다.
헝가리, EU, 피지, 파나마, 미크로네시아 연방, 프랑스 대표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플라스틱 생산을 조약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INC-5 개최국인 우리나라, 플라스틱 생산에 대한 입장조차 없어
더딘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플라스틱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각 분야별 의견서를 빠르게 제출했다. 개별 국가가 제출한 의견 외에도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은 연대하여 해당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11월 28일, 파나마와 유럽연합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국가 87개국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량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글로벌 목표를 부록에 채택하고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조치를 취해야 하며,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수출입, 글로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한 통계 데이터를 보고하도록 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아프리카 국가 43개국은 아프리카 그룹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내용을 담았다. 아프리카 국가 그룹이 제안한 내용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과 소비에 대한 글로벌 목표를 부속서에 채택하라는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 수명 주기에 대한 조치로서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과 수출입•사용에 대한 통계 데이터를 보고하고, 당사국이 된 후 3년 이내에 생산 수출입 허가 시스템을 구축 시행하도록 제안한다.
이렇듯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의무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여러 국가가 발 빠르게 제출하고 있지만, 정작 개최국인 우리나라는 전혀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생산 감축에 대해서도 별도로 발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INC-5 개최국인 우리나라 정부는 이미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생산, 소비,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는 플라스틱의 전(全) 주기를 다루는 효과적이고 이행가능한 국제협약이 조속히 성안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기를 다루는 핵심사항에 대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음이 협상 회의 내내 확인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개최국으로서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듯한 입장을 내지만, 정작 알맹이 없이 협약 성안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남은 시간은 48시간.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에 대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으로서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이제라도 밝혀야 한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면.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b6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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