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쓰레기 정책이 필요하다! 시민인터뷰 ①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배민지

2019.03.26 | 폐기물/플라스틱

작년 쓰레기 대란 이후, 정부도 자원재활용법 개정 등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여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법과 제도의 한계가 아쉽기만 해, 개인의 강한 의지도 무색해질 때가 많은 듯 합니다. 제로웨이스트 (Zero-Waste: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 생활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하려면 법률과 제도를 어떤 식으로 보완해야 할지 녹색연합에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함께 고민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SSSSL [:쓸]>의 편집장이기도 한 실천가 배민지씨 모셨습니다.

ⓒ매거진쓸

배선영: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생활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꾸준히 실천해오고 계신 분을 만나뵙게 되어 참 반갑네요. 실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요?

 

배민지: 저는 일단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어떻게든 안 버리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는 게 너무 많아서 참 힘들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일상에서 줄일 수 있는 양이 반도 안 되거든요. 포장재, 그 중에서도 먹는 게 제일 많죠. 가공식품이나 과자, 음료수 등등 모든 게 이미 포장되어 나오잖아요.

 

배선영: 그런 식으로 한계에 부딪혀 제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배민지: 우선 지금 대형마트에서는 비닐봉지 무상제공이 금지되어 있지만, 작은 가게에는 그런 제도가 적용되지 않다보니 비닐봉지를 제공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죠. (주: 인터뷰는 2018년 11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현재는 2019년 1월 1일부로 대형마트와 165m²(약 50평) 이상 슈퍼마켓에서의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 금지된 상황이다) 카페나 편의점도 빨대나 티슈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자율배치 하는 곳이 많은데요, 그럴 경우 사람들이 집어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거죠. 자율배치만 막아도 그렇게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하진 않을텐데 말이에요. 매장 입장에서도 무상제공을 갑자기 중단하면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는 인식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고요. 그래서 규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좀 다른 얘기로, 무조건 개별포장되어 나오는 제품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에요. 난 굳이 개별포장 필요 없고 통째로 사서 먹고 싶은데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이런 건 정부에서 규제를 해야 돼요.

 

배선영: 기업 자체에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보다 정부에 규제 개선을 촉구해서 바꾸는 게 더 빠를까요?

 

배민지: 소비자들이 많이 원한다면 기업이 바로 나서도 괜찮을 텐데, 그게 아니라 소수의 목소리라면 정부가 나서줘야죠. 아직까지는 그런 걸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솔직히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 편하게끔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잖아요.

 

배선영: ‘그럼 결국엔 다같이 불편하자고 얘기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도 들죠.

 

배민지: 제로웨이스트 하려면 들고 다녀야 하는 게 한 두개가 아니에요. 텀블러, 손수건, 통… 스스로 원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들고 다니는 거지만 사실 누가 짐 들고 다니는 거 좋아해요. 텀블러 쓰는 사람에게 에코마일리지를 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매거진쓸

 

배선영: ‘불편함만 가득하고 돌아오는 건 없다, 그러니 인센티브라도 줘야 된다’는 말씀이시죠. 또 최근에 자원재활용법 개정되면서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금지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배민지: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거면 진작에 했어야지 이게 뭐야. 일을 왜 안하고 있어!’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실 종이컵도 문젠데 정부는 대안이 없다고 하고요. 가장 큰 걸림돌이 단가 차이인데, 정부에서 친환경 소재를 만들어서 규제하면 단가를 낮출 수 있어요. 종이컵 사용을 아예 막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정도의 규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선영: 변화가 곳곳에 있긴 있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너무 뜨뜻미지근한 분위기죠. 제도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배민지: 제도 개선 이전에, 지역 공동체 내에서 시도할 만한 것들도 있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개인이 관리하기에는 할일이 너무 많은데, 마을 단위로 모아서 퇴비화 할 수 있거든요.

 

배선영: 음식물은 집에서 처리하기 참 힘들죠. 그리고 쓰레기 문제 얘기하면 항상 따라오는 게 노동/주거 문제에요. 예를 들어 반지하 사는 사람더러 쓰레기 나온다고 곰팡이 제거제 쓰지 말라고 할 수 없고, 편의점 도시락 사먹는 1인 가구더러 밥 지어 먹으라고 할 수 없잖아요. 결국 주거 문제/생활 방식이 다 쓰레기랑 연결된 것 같아요. 1인 가구가 제로웨이스트 실천하면서 부닥치는 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들이 생겨나면 좋겠네요. 요즘 늘고 있는 소셜 다이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고요.

 

배민지: 공간 얘기를 하자면, 내 집 한 칸도 없는데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건 더 어려워요.

 

배선영: 어쨌든 결국엔 정책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쓰레기 문제 관련해서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혹시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배민지: 소비자가 소분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너무 한정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지역마다 대형매장 몇 군데를 지정해서 마트 내에 화장품이나 가공식품 등을 소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소비자가 미리 가져간 용기에 덜어서 살 수 있죠. 물론 까다롭겠지만 관련 규제를 미리 잘 만들어 놓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걸 정부 차원에서 규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업들이 알아서 해야하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요. 기업 입장에서는 개인이 챙겨오는 통의 위생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도 거슬리겠죠.

 

배선영: 어떤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하니까요. 근데 그런 것들은 유통기한/성분표시 라벨을 현장에서 직접 붙여준다던지, 의지만 있다면 시스템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배민지: 쓰레기 또한 자원인데 충분히 다 쓰지 못하고 그냥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살 때 과연 이걸 얼마나 쓸 건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안 하는 것 같아서 아쉽고요. 기업들은 애초에 물건을 적당히 만들고, 소비자는 제대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골라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배선영: 오늘 말씀 감사 드리고요, 또 자연스럽게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배민지씨와 말씀 나눠봤습니다. 법률과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쓰레기 없는 삶을 큰 맘 먹고 실천한다해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닥치기 마련입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개별포장이나 무상으로 제공되는 일회용품은 제로웨이스트 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닌가 싶네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요구 없이 기업이 알아서 바뀌길 기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기에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각종 규제와 정책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실천하는 시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편 너무 복잡한 나머지 일반 시민이 이해하기 힘든 폐기물 관련 법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쓰레기 문제는 결국 사람들의 일상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이 결국 우리의 생활입니다. 우리가 오래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함께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인터뷰 녹취 정리: 자원활동가 강수련

내용 정리: 전환사회팀 배선영, 유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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