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보 유세가 시작되었다. 동네 곳곳 펼쳐진 현수막과 받자마자 버려져 거리에 나뒹구는 명함들과 공보물을 보며 이번 선거도 쓰레기만 남는 선거가 될까 우려스럽다. 공약은 실종되고, 선거법 개정 취지와 달리 비례위성정당들이 난무하여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높지 않다. 환경정책을 제시한 후보자들은 거의 없을뿐 아니라 선거과정에서도 환경을 배려한 부분도 찾기 어렵다. 선거철은 선거 쓰레기가 여전히 폐기물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쓰레기 정책의 사각지대, 선거
뒤돌아서면 버려지는 후보자들의 명함, 보지 않아 봉투채 버려진 후보자의 공보물, 거리에 난립하는 후보자의 현수막, 선거철에만 입고 버려지는 옷과 어깨띠, 분리되지 않고 버려지는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선거벽보 104만 부, 선거공보 6억4000만 부, 현수막으로 13만 8192장이 발생되었다. 20대 총선에서는 선거벽보 32만장, 선거공보물은 8000만부, 현수막 1만 4000개가 발생되었다.
21대 총선에서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발생될까. 한 언론은 2020년 총선의 투표용지·홍보 인쇄물 등 제지 수요가 8,500톤 가량 발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대 총선에서 발생한양을 비례해서 적용해보니 선거벽보는 32만장, 선거공보 9,500부가 발생될 것으로 예측된다.
종이 인쇄물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현수막은 3만 5천여장으로 2배이상 늘어날 것이다.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며 2018년 3월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현수막 매수를 선거구안 읍면동 수마다 1개에서 2배 이내로 개정했는데 이는 현수막 도배를 법적으로 보장해주도록 개악된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수막 게시매수는 해당 선거구 안의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적용되어 253개 지역구에서 발생되는 현수막은 총 35,100여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달 28일 선관위에서 발표한 선거후보자는 1,118명, 각 지역구별 후보자의 수는 약 5명으로 계산된 결과이다. 선거 이후, 당선자, 낙선자들이 내건 현수막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118조 5항에 따라 선거일의 다음날부터 13일 동안 해당 선거구 안의 읍·면·동마다 1매의 현수막을 게시하는 행위가 허용 되기 때문이다.
현수막만 재활용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수십년간 선거철마다 문제로 지적된 현수막을 일부 기초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수거해서 앞치마, 화분, 선풍기 덮개, 줄넘기 등을 만들어 학교나 복지시설에 기증하거나 판매하기도 했다. 또한 2018년 환경부는 ‘선거현수막 재활용 시범사업’ 으로 노원, 금천구와 함께 폐현수막으로 장바구니 20만개를 제작했다. 재활용을 위한 지자체와의 협력 시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노원구는 재활용한 장바구니 배부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노원구 자체 재활용 행사시 홍보물과 함께 배포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19대, 20대 총선에서 재활용 업체 2곳을 선정해 각 구에 폐현수막 제공에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강제력이 없어 현수막 대부분은 폐기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은 대통령선거, 교육감선거에서 사용된 현수막으로 장바구니를 제작한 적이 있다. 공약을 기억하는 취지와 함께 재활용의 의미를 잘 살린 사례이다. 그러나 모든 현수막을 장바구니로 만들 수는 없다. 현수막 재활용 제품은 판매처가 확보된 양만큼만 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쓰레기일 뿐이다. 세척과 제작에 드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수요 없이 제품을 제작할 수는 없다. 현수막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현수막은 보통 폴리에스터의 재질에 인쇄하여 제작시 잉크가 묻어나올수 있어 재활용이 어렵고, 재활용하더라도 질좋은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 따라서 일부 재활용되는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각처리 된다. 현수막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환경을 생각해서 만든 에코백이 넘쳐나 이제는 에코백이 에코백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텀블러, 에코백은 집집마다 서너개이상은 가지고 있다. 현수막을 재활용한 장바구니는 수년전까지는 재활용 취지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름답고 잘 만든, 내 취향에 맞는 장바구니가 넘쳐나는 시대다.
넘쳐나는 종이 인쇄물은 어떻게 해야하나
선거에서 사용하는 종이 인쇄물로는 후보자의 선거벽보, 후보자별 선거공보물, 공보물 봉투, 투표용지등이 있다. 각 후보자들은 공직선거법(64조~65조), 공직선거관리규칙(29조~30조)에 따라 인쇄물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벽보는 규격과 종이질이 규정되어 있지만 선거공보물은 규격만 규정되어 있다. 종이 종류와 무게에 대한 규정이 없다.
투표용지는 전자개표를 도입하면서 납품규격이 의무화되어 우리나라 2개 제지사만이 납품하고 있다.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전자개표 시에도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솔제지는 재생원료 비율을 30%-50%로 하여 제작한 종이를, 무림제지는 저탄소인증을 받은 종이를 납품하고 있다. 투표용지 제작은 시군구선관위가 인쇄소를 선정하고, 제지사는 인쇄소에 종이를 납품하는 시스템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전투표시 사용하는 롤용지는 별도 제작한다) 투표용지를 제외한 기타 선거벽보, 선거공보물에 대해서는 별도의 종이질에 대한 규정이 없어 후보자가 특별히 재생종이를 찾지 않는한 인쇄소에서 선택한 종이를 사용한다. 재생종이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선택받기 어렵다. 공급보다 수요가 적어 일반 제지시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종이 선택에 있어 단지 가격만이 아니라 환경도 고려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환경부에서는 1톤의 폐지를 재활용할 경우 CO₂ 1,070 kg, 대기오염물질 약 95% 저감, 물과 전력의 28-70%를 절약할 수 있다고 2010년에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한 연구논문( 기후변화대응으로서 폐지재활용에 관한 고찰. 한국펄프종이공학회.2017)에 따르면 폐지 1톤을 재활용하는 경우, 30년생 나무 약 20그루를 벌채하지 않아도 되는데, “30년생 나무 한그루가 연간 축적하는 1 ton의 CO₂ 흡수량과 펄프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 및 기타 부대비용을 생각하면 폐지의 재활용은 단순히 원료를 저감하는 그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고 밝히고 있다. 투표용지를 제외하더라도 선거공보물 8,000여톤을 재생종이로 사용한다면 30년생 나무 160,000그루의 나무를 살릴수 있다. 또한 재생종이로 다시 만드는 물과 에너지를 감안하더라도 폐지 재활용에 따른 CO2 감축, 물과 전력 에너지의 절약효과는 매우 높다.
문제는 이미 알고 있다. 시민들은 문제 해결을 원한다.
선거시 발생되는 홍보물(선거벽보, 후보공보물, 어깨띠, 현수막 등)이 대량의 쓰레기로 발생되는 모습은 새롭지 않다. 십수년간 문제제기 되었음에도 해결되지 못했다. 심지어 20여년 전에도 환경친화적 선거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2002년 환경부는 <환경친화적 선거 문화 조성을 위한 실천방안>이라는 연구를 진행했고 놀랍게도 이 연구 책임자는 현 환경부장관인 조명래장관이다.
연구보고서는 녹색선거를 판가름 하는 조건을 1) 유권자가 녹색후보를 골라내는 것 2) 선거 진행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유세활동이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치러졌는지 평가하는 것으로 꼽았다. 선거공약 상 환경에 대한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광고지의 환경성 배려 여부, 교통수단의 환경성 배려정도, 유세장소의 환경오염 발생 정도(소음, 쓰레기)를 기준으로 제시하며 친환경 선거문화 조성을 위해 법이나 규정을 개정해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 유세과정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정부 쪽의 역할도 중요하다. 가령 후보자들의 정책공약 양식을 동일화해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을 만들고, 유세 활동과 관련 환경수칙을 제정하는 것 (예, 유세장 폐기물의 분리수거), 친환경적인 유세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예, 저렴한 재생용지의 대량 공급 등) 등은 모두 정부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라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렇듯 환경부는 20여년전에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대안을 제시했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등을 치루며 선거 후 발생되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당과 선관위에 제안한 바 있다. 온라인 기반의 홍보를 할 수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거나 녹색선거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친환경재질을 사용하고 재활용하도록 유도하도록 말이다. 그러나 무엇하나 바뀌지 않았다.
환경부와 선관위, 이제는 제도를 개선하자.
시대가 변했다. 사전투표도 하고 있고, 백화점 전단지도 온라인으로 보는 시대다. 권고, 유도가 아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공직선거관리규칙을 개정하여 선관위, 각 후보자들이 적용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첫째, 종이 사용을 최소화하고 온라인 공보물로 전환하자.
현재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는 후보자 명단 확인 가능하다. 후보자 공약까지 볼 수 있도록 하자. 모바일용 총선 앱을 만들어 후보자 명단과 공약 볼 수 있도록 하자. 민주시민으로서 후보 공보물에 담긴 후보의 정책과 이력을 참고해야하는것은 투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보다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고, 불필요한 우편물을 줄여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두번째, 선관위는 후보자들에게 선거공보물을 재생종이로 만들라고 권장하지 말고 강제하라.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의 적용범위를 확장하여 선거에도 녹색제품 사용을 촉진시켜야 한다. 선관위가 제작하는 종이인쇄물(투표용지, 봉투용지등) 뿐 아니라 후보자들의 공보물(선거벽보, 후보공보)도 포함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제품, 재활용제품의 품질인증 상품 등의 녹색제품이나 재생종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현수막 재활용 비율을 의무화하여 재활용을 촉진해야 한다.
세번째, 규격, 수량의 제한없는 사각지대의 제도를 개선하라.
최근 유행처럼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선거 사무실 건물 외벽에 후보자 정보를 담은 대형 현수막을 걸고 있다. 이는 선거사무소등의 간판등 설치 ·게시에 따라 선거 사무소가 있는 건물이나 담장에 간판·현판·현수막을 게시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수량이나 크기 제한이 없어 건물을 덮을 정도로 큰 현수막이 걸리고 있다. 또한 정당별로 당사 게시 선전물은 선거운동 기간내 게재 가능하고 수량, 규격 제한 없다. 규격과 수량을 제한함으로써 무분별하게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 뿐일까. 그렇지 않다. 더 나은 방법들을 시민들이 제안할 것이다. 녹색연합은 <쓰레기 없는 선거>를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선관위와 환경부에 전달하여 제도 개선을 촉구할 예정이다.
*문의: 녹색연합 정책팀 허승은(070-7438-8537, plusa213@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