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으로 보는 환경문제

2007.12.06 | 폐기물/플라스틱

  경로의존성, 익숙함의 덫                       

                                                                                                                               정책실 모영동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였던 폴 데이비드와 브라이언 아서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면서 사회 전체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후에도 여전히 그 경로를 답습하게 된다는 것을 타자기 자판을 예로 설명하였다.

컴퓨터 자판기의 영문 배열을 보면 왼손 맨 위쪽 알파벳 배열이 Q-W-E-R-T-Y로 되어 있는데 이는 수동 타자기 시절부터 이어진 것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배열이다. 왼쪽 위를 AOEUI로 오른 쪽 위를 DHTNS으로 할 경우 타자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Q-W-E-R-T-Y로 배열한 이유는 수동 타자기가 처음 발명 되었을 때, 그 기술이 매우 원시적이어서 타자에 익숙한 사람이 빨리 타자를 칠 경우 글자가 엉키는 경우가 있어서 사람들이 빨리 타자를 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컴퓨터가 발명되어 글자가 엉키는 경우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같은 자판 배열이 사용되는 것은 경로의존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932년 미국에서는 더 효율적인 자판인 ‘드보락’이 시중에 보급되었으나 그 결과는 ‘드보락’의 참패였다고 한다. 구형 자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신형 자판기 사용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더 효율적인 자판을 쓸 수 있음에도 기존에 익숙한 자판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함에 대한 의존, 경로 의존성은 환경문제가 왜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2007년 가을에 출판되는 해리포터 제 7권 한국판을 재생용지로 출판하기 위해 녹색연합은 5개월 동안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해리포터 제 7권 한국판 출판사인 문학수첩의 과감한 결단으로 재생용지 출판이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왜 한국 출판업계가 재생용지 사용을 꺼려하는지의 이유를 바라보면 ‘경로의존성’ 즉 익숙함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재생용지를 쓰는 것의 이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의하였고 문학수첩 자체도 새로운 재생용지의 품질에 만족하였지만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주저함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불편함과 두려움이었다.

재생종이 사용은 작은 예일 뿐이다. 자동차가 최초로 개발되었을 때는 증기와 휘발유 엔진에 대한 연구가 같이 이루어졌다. 그 후, 휘발유 엔진이 대세가 되면서 다른 형태의 엔진 연구는 거의 중단되었다.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문제를 직면하면서 이제야 새로운 형태의 엔진 개발이 가속화 되고 있다.

익숙함, 즉 경로 의존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반환경적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지 우리 주위를 가까운 곳부터 살펴보자.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것이 익숙하여 대중교통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복을 입지 않는 것에 익숙하여 실내 온도를 높게 맞추고 있지 않은지. 개인용 컵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이 익숙하여 테이크 아웃용 종이컵을 무심코 쓰고 있지는 않는지.

경로 의존성 이론은 너무 많은 경로의존의 덫에 갇힌 경제와 사회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이 글은 월간 행복합니다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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