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된 일회용컵 수거함… 제주 컵보증금제 실태

2023.02.18 | 폐기물/플라스틱

제주·세종서만 축소 시행, 일부 매장 보이콧 논란… 대상 매장 찾기 쉽지 않고 반납도 어려워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일회용컵 보증금제. ‘자원 낭비와 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던 이 정책은 시행 3주를 앞두고 시행일이 유예되고 지역이 축소되면서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 지난해 12월 2일, 우여곡절 속에 첫 발을 뗀 이후에도 일부 매장이 보이콧을 하는 등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아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연간 84억 개나 발생하는 일회용컵의 재활용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재도입되었다. 앞서 2003년 운영되다가 2008년 폐지되었는데 그 이후 커피전문점과 일회용컵 사용량이 크게 늘어 재도입 요구가 커졌다. 2020년 제도 시행의 근거 법령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2022년 6월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행 3주를 앞두고 정부는 시행일을 전격 연기했고, 이후 다시 시행 지역을 전국에서 세종과 제주로 축소했다. 당초 정부는 전국 프랜차이즈 매장 3만 8천여 곳을 대상으로 정했으나, 현재는 적용 대상이 세종·제주지역 522곳(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점을 둔 카페나 빵집, 패스트푸드)으로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렇게 유예·축소할 수 있었을까. 환경부의 이와 같은 결정은 카페와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결국 선도지역 매장들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거부하기 이르렀다. 제도 시행 석 달이 다 되었지만, 환경부에 따르면 아직도 약 40% 매장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제주 일회용컵 보증금제 실태

이에 녹색연합은 지난 2월 9일~12일, 제주 지역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실태를 직접 확인해봤다. 

“보증금컵 선택할 수 없나요?”
“우린 안 합니다.”
“네. 다음에 올게요.” 

제주에 도착해서 처음 방문한 매장이었는데 주문하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이후 어찌어찌 보증금 항목이 있는 키오스크를 발견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한 음료는 보증금액이 포함된 금액으로 결제되었다. 밖으로 나와 건네받은 음료를 꺼내보니 컵에 보증금 라벨이 붙어있지 않았다. 아뿔싸. 매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바쁜 점원의 눈치를 살펴 물으니, 보증금 라벨을 다 소진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보증금을 납부했음에도 정작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이건 매우 큰 문제라고 말하니, 직원은 한참 후에야 300원을 돌려주었다. 컵을 반환받지도 않고 보증금을 내준 것이다.

보증금을 포함해 음료를 주문했으나 컵에 보증금 라벨이 없었다. 직원에게 반환 라벨이 없다고 이야기 하니, 컵을 반환하지 않았음에도 300원을 돌려주었다.

그렇다면 배달앱에서 음료 주문 시 보증금컵 이용이 가능할까. 배달의 민족에 입점한 카페 중 보증금 대상 매장에 음료를 주문했지만, 보증금 항목 없이 결제되었다. 배달 받은 음료는 일회용컵에 담겨있었고 주문과 배달까지 어떤 안내도 없었다. 이미 지난 1월, <한겨레>가 배달앱에서 보증금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에 대해 환경부는 ‘배달앱 등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는데 매우 무책임한 답변이다. 배달플랫폼은 지난해 6월 1회용 컵보증금제 시행을 앞두고 시스템을 개편했다. 배달의 민족 내 500개의 매장 중 200개의 매장이 이미 보증금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배달앱으로 음료 주문시 보증금 없이 주문이 되고 있다.

제주와 세종지역 일부 브랜드들은 제도 시행 이후 다회용컵 사용으로 전환했다. 다회용컵 매장으로 운영하면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인데, 일부 매장의 경우 음료를 주문하자 일회용컵에 담아 주었다.

다회용컵 매장으로 전환하면 1회용컵 보증금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매장은 다회용컵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포장, 배달로 발생하는 일회용컵을 줄일 수 없고 재활용 문제를 개선하는 데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시범 사업 중인 지역의 적지 않은 매장들이 컵 보증금제 보이콧을 선언한 지 석 달이 다되어가지만, 환경부는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사용한 일회용컵의 회수와 재활용은 잘 되고 있을까

전원이 꺼져 있어 간이회수기를 사용할 수 없다. 공공 수거처 (함덕)
네트워크 문제로 간이 회수기를 사용할 수 없다. 매장 직원을 통해 반납했다. 민간 수거처 (서귀포)

우리 사회에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잘 정착시키려면, 소비자가 쉽게 반납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 수거한 컵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표준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왔던 일회용컵의 재활용률이 5%에 불과했던 것은 브랜드마다 컵의 재질이 다르고, 컵 표면에 인쇄가 되어 고품질 재활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보증금제 대상 카페 매장에는 간이회수기와 컵 수거함이 비치되어 있다. 간이회수기에 보증금 라벨의 바코드를 인식시켜 앱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반납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며 그렇지 않았다. 대상 매장의 절반 가까이가 제도를 보이콧하고 있기에 브랜드만 봐선 반납이 가능한 매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원순환보증금앱에 간이회수기가 표시된 곳에서는 반납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간이회수기가 표시돼 있는 매장 중에는 간이회수기는 물론 관련 홍보물조차 볼 수 없는 곳도 있었다.

수거함이 쓰레기통이 되었다. 음료가 담긴 컵과 각종 쓰레기가 섞여 있다.

일회용 컵 반납은 매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매장 반납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주요 공공시설이나 재활용 도움센터에서도 간이회수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한 재활용 도움센터의 간이회수기는 전원이 꺼져 있어 반환을 포기해야 했고, 다수의 재활용 도움센터는 상주하는 분이 있어 관리가 되고 있었지만, 몇몇 공공장소는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보증금컵이 아닌 음료수병, 잔여물이 남은 음료컵 등이 쌓여 있었다. 간이회수기가 제역할을 하게 하려면 관리자가 직접 관리하거나 음료를 버리고 반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부의 이상한 선택, 그리고 가맹본사의 책임

선도지역내 1회용컵 보증금제 안내 포스터 (2023.2. 제주)

제주 지역 내 대상 매장의 보이콧으로 제도가 난관에 빠지자 환경부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대상 사업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난 1월, 환경부는 지자체가 대상 사업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제도 수용성과 형평성을 이유를 내세워 대상 사업자에 개인 카페를 포함하기 위함이다.

물론 제도 대상에 프랜차이즈 매장뿐 아니라 개인 카페를 포함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제도의 중심에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적극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 카페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명백한 본말전도다. 더욱이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시도지사가 조례로 대상사업자를 지정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기에 환경부는 시도지사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대상을 명확히 해서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또 앞서 언급했듯, 사용한 일회용컵을 재활용 하려면 표준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제도에 참여하는 브랜드 중 플라스틱 표준용기(컵 표면에 인쇄하지 않고, 재질을 PET으로 통일한 용기)를 사용하는 브랜드는 33개로 70%도 채 되지 않는다. 선도지역의 48개 브랜드 모두 표준용기로 전환하도록 해야 재활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도지역 외 타지역의 일회용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환경부는 프랜차이즈 사업자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표준용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한편 선도지역이라는 포장만 했을 뿐, 제주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안내문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와 같은 홍보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해야 함에도 본사가 직접 제작한 홍보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현재 법령이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대상 사업자가 가맹사업자(매장점주)라며 가맹 본사의 책임을 매장 점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가맹본사가 가맹점에 판매한 1회용컵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가맹본부는 더 이상 일회용컵 문제 해결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1년여 간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산업부의 2중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환경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부처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 저감을 위한 규제보단,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계도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일회용 컵을 비롯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난무하는 현재 상황에선 카페 등 현장 상황을 고려한 일회용품 감량이 아닌 감량을 위한 전방위적 대책 이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실행을 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

*(문의)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허승은 (070-7438-8537,plusa213@greenkorea.org)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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