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버려진 유리병을 따라 자원순환의 길을 엿보다

2023.04.27 | 폐기물/플라스틱

소주병과 맥주병 라벨에 각각 100원, 130원이라고 쓰여있다.

100원. 친구들과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문득 들여다본 소주병 라벨에 큼지막하게 ‘100원’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소주 가격은 100원이 아닌데 말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라벨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삼각형 모양의 분리배출표시는 또 없었습니다. 누가봐도 재질이 유리여서 유리로 버릴테니 분리배출표시가 없는 것일까요? 정답은 병을 ‘재사용’할지 ‘재활용’할지 그 차이에 있습니다.

사실 소주병과 맥주병은 집 앞 분리배출장에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원입니다. 그 병을 동네 마트에 가져다주면 한 병 당 100원씩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트에 모아진 술병들을 주류회사가 가져가 공장에서 깨끗하게 세척한 후 다시 술을 넣습니다. 버려진 병을 재사용하면 새로운 병을 만들지 않아도 돼 자원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녹색연합은 이처럼 유리병이 재사용ㆍ재활용되는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자 쓰레기 탐방에 참여했습니다. 버려진 유리병을 따라간 그 길은 예상한 것만큼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소주병에 적힌 100원의 의미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대전에 위치한 향토 주류기업 ‘맥키스컴퍼니’입니다. 공장에 도착한 우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선별을 위해 가득 쌓여있는 소주병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록색의 소주병에서부터 옅은 하늘색의 진로이즈백, 백색의 새로까지 여러 브랜드의 소주병이 섞여있었고, 공장 한편에서는 표준용기인 초록색 병과 비표준용기를 선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회수한 소주병들을 선별하기위해 지게차가 야적된 박스를 옮기고 있다.

이 소주병들은 모두 빈용기 보증금제를 통해 식당, 술집, 마트에서 주류회사로 반환된 병입니다. 

빈용기 보증금제란 소비자들이 소주, 맥주, 탄산음료 등 유리병에 담긴 제품을 살 때 보증금을 포함해 지불하고 빈병을 구매처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소비자에게는 보증금을, 도ㆍ소매업자에게는 제조업자가 취급수수료를 제공하여 유리병 회수율을 높이고 제조업자는 새로운 병이 아닌 회수된 유리병을 재사용해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1985년부터 시행된 빈용기 보증금제를 통한 유리병 회수율은 2022년 기준 96.4%에 달하고, 맥키스컴퍼니 또한 전체 생산되는 소주의 98%는 재사용병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소주병들이 제조 공정에 투입되고 있었습니다. 표준용기로 선별되어 들어온 초록색 소주병들은 세병장치에서 25분 간의 세척과 85℃의 고온 살균 과정을 거쳐 말끔하게 세척되어 나옵니다. 이후 소주를 주입하고 이물질 혼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마치면 우리가 마트나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표준용기로 선별된 초록색 소주병들이 세병장치로 투입되는 모습

약속을 깨버린 주류회사들

사진에서 보듯이 자동화되어 순조롭게 진행되는 소주 만들기, 사실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2007년 환경부는 「주류병 공용화 사업 연구용역」을 진행하여 주류업계에 소주공병의 공동사용을 권고했습니다. 주류업계가 이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2009년 ‘소주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었고 소주공병을 다같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초록색 소주병이 표준용기로 정해집니다.

* 표준용기 기준: 360ml 녹색 소주병, 500mlㆍ640ml 갈색 맥주병

하지만 2019년에 하이트진로가 약속을 어기고 비표준용기에 담긴 진로이즈백을 출시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주류기업들이 이 협약을 가뿐히 무시하고 너도나도 다양한 유리병에 담긴 소주를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때문에 표준용기에 맞춰 자동화된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사람이 수작업으로 선별해야하는 어려움과 비효율이 발생하면서 14년 동안 이어져온 공병 재사용 체계는 최근 더욱 위태로운 실정입니다. 맥키스컴퍼니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었던 수선별 과정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진로이즈백 병 회수율은 32%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이트진로가 2020년 상반기 진로이즈백의 회수율이 90% 이상이라고 발표한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현재 배출되는 비표준용기의 92%가 진로이즈백(출처: 이학영의원실, 진로이즈백, 팔아서 돌아오는 병은 3개 중 1개뿐)인데 그중 32% 밖에 회수가 되지 않는다면 비표준용기 전체가 얼마나 재사용되지 못하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 효용을 다하지 못한 채 굴러다니는 소주병들이 많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 병을 마시더라도 우리가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유리병 재활용

오후에는 재활용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주식회사 성인’의 연기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성인은 국내 최대 폐유리 재활용 생산 기업으로,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유리병의 약 70%가 재활용되는 곳입니다.

버려진 유리병들이 차에 실려 연기공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먼저 재활용 선별장에서 백색, 갈색, 녹색 색상별로 선별된 유리병이 공장으로 들어오면 자동선별기로 보내 섞여 있는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빛이 투과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유리와 유리가 아닌 쓰레기들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류된 유리병들은 분쇄기로 들어가 분쇄되어 다시 유리병을 만드는 원료가 됩니다. 기계적 가공 중에서 걸러지는 작은 이물질과 유리조각들을 제외하고 약 97%가 재활용된다고 합니다.

갈색병들이 파쇄되어 나오는 모습

이 과정에서도 비표준용기가 말썽을 일으킵니다. 회수 누락, 파손 등의 이유로 재사용 체계에서 탈락된 주류병들이 재활용 체계로 들어올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병들과 함께 색상별로 분류되어 파쇄됩니다. 근데 맥주 켈리, 소주 진로이즈백과 같이 각색의 비표준용기들은 별도의 선별이 필요하고, 선별되면 비슷한 색상의 병들과 함께 가공되는데 이는 결국 재생원료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세종시에 위치한 연기공장에서조차 재활용되지 못하는 화장품병, 양주병 등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화성공장에서 건축자재의 원료로 재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건축자재 재활용은 경제성이 낮아 다시 유리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보다  2배 정도 높은 지원금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때 제조업자들이 내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을 지원금으로 사용하는데, 재활용이 어려운 유리를 만드는 제조업자가 부담하는 분담금보다 지원금이 더 많이 투입되는게 현실입니다. 자원순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님을 그 자리의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유리병이 다시 유리병이 되는 사회

당연한 말이지만 지구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한계치에 다달아 각종 환경문제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리병의 재사용ㆍ재활용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한번 사용한 자원이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다시 순환되는 사회가 공고해지려면 기업이 내는 분담금과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협약, 시민들이 실천하는 분리배출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물건을 생산하는 단계에서부터 재사용을 반드시 고려해야하고, 파손 등의 손실률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합니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늘어난 쓰레기에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말로 쓰레기에 뒤덮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모든 자원이 순환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이번 쓰레기 탐방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와 서울환경연합의 공동주최로 진행되었습니다.

* 문의 :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진예원 (070-7438-8536, salromhi@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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