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된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는 암 발생 물질인 다이옥신이 토양오염기준을 34.8배 초과한 부지가 있다. 녹색연합 활동가는 공원과 어린이 놀이시설이 되기에 부적합한 이 부지를 어떻게 정화하고 있는지 정보공개 청구로 질의를 했다.
지난 16일 국토교통부는 보도설명자료(8월 11일 자)로 답변을 갈음했는데, 다이옥신 우려 지역은 20cm 이상 콘크리트로 완벽히 포장하여 기존 토양의 노출을 원천 차단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공기질 모니터링을 통해 다이옥신을 포함한 모든 항목에서 안전함을 지속 확인하고 있으니, 어린이정원의 환경문제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을 지속 유포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엄포로 마무리된 보도자료였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반환된 용산 미군기지의 토양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은 환경단체의 추측이나 주장이 아니다. 정부가 조사해 펴낸 보고서에 기재한 수치, 팩트를 언급한 것이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펴낸 용산 반환미군기지 ‘환경조사 및 위해성평가보고서’에는 맹독성 발암물질 다이옥신을 비롯해, 유독성 복합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TPH), 크실렌, 벤조피렌, 비소, 구리, 납, 아연 등이 공원 조성에 적합한 기준치를 수십 배까지 초과한 수치가 적혀있다. 그래서 토양환경보전법상 오염정화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공원 조성이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공원 조성이 불가능하니, 정부는 일단 ‘임시’라는 표현을 붙여 한시적인 개방을 했고, 지난 5월 4일부터는 ‘용산어린이정원’이란 이름으로 아예 개장을 했다. 정화는 하지 않았고 오염된 토양 위에 흙과 잔디를 덮었다. 오염을 감추었다.
상식을 벗어났다
▲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에 앞서 오염된 땅에서 놀아도 괜찮은 것인지를 묻는 항의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녹색연합
독성물질로 오염된 토양 위에 ‘어린이정원’을 조성하고 개방할 만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비상식적이었나? 오염된 곳이라 정화되지 않고는 공원이 될 수 없는 땅을 그냥 흙과 잔디, 혹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공원이 아닌 다른 명칭으로 개방하는 몰지각한 정부. 21세기 선진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미개한 상황이 정말로 납득 가능한 것일까?
정부는 환경정책기본법이나 토양환경기본법,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는 토양오염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범’ 개방이나 ‘임시’ 개방의 명목으로 공원이나 정원시설 운영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법률 위반이 아니란다.
상식을 한참 벗어났지만, 그렇게 억지를 부리니, 법의 조문을 가다듬어 상황을 제어해야 할 판이 되었다. 그래서 국회는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초과하는 토양의 이용을 제한(토양환경보전법 개정)하거나, 일반인에게 개방하기 전에 토양오염 등을 제거(미군공여지역지원특별법)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토부나 환경부가 법 개정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작 이 정도의 법을 발의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역할이라는 것도 안타깝고, 그조차도 정부의 반대로 진척이 없다는 사실도 참담하다. 법안 개정을 힘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국회 다수당의 태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용산미군기지는 토양을 오염시킨 미군이 제대로 정화하게 하고 반환받았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정책기본법은 환경오염 또는 훼손을 발생시킨 자는 회복, 복원할 책임을 지며,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토양환경보전법도 마찬가지이다. 토양오염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오염을 발생시킨 자가 배상하고 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비단 국내법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197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확립된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pays principle)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다른 반환 미군기지들과 마찬가지로 미군에 오염정화비용을 제대로 청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발암물질과 독성 중금속들로 오염시킨 용산반환미군기지에 대해 정부는 미군으로부터 정화 비용을 받아내지도 못했고, 오염을 정화하지도 않았다. 그리곤 정화도 안 된 땅을 정부가 앞장서서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향후 반환 협상에서 미군에 정화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지, 이 과정에서 우리 국익은 보장이 가능한지, 과연 정부는 답을 갖고 있을까.
원칙뿐 아니라 법칙도 모른다
▲ 오염된 용산반환미군기지의 어린이정원개방 반대 퍼포먼스 ⓒ 녹색연합
얼마 전 ‘오염된 용산미군기지의 공원개방,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녹색연합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함께 한 자리였다. 토론회에서 이상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은 ‘슈말하우젠의 법칙’을 소개했다.
다소 생소한 명칭의 이 법칙에 따르면, 용산어린이정원과 어린이 건강 위험성 평가에서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건강 영향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할지라도 고위험군의 경우 아주 작은 노출과 변화로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지별 오염에 따라 고위험군에 속하는 어린이의 경우 아주 작은 노출과 변화로도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특별하고 섬세한 조치가 필요하다.
납은 저체중아 출산, 유산, 청력 저하, 인지 기능 저하, 운동 기능 저하, 위암 발생, 신장 저하, 생리 지연, 신장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이다. 수은은 어린이 인지 기능 저하, 발달 장해, 운동 기능 저하, 시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이다. 비소 역시 유산과 염색체 이상을 일으키는 중금속이다.
어린이는 행동이나 식습관, 대사 및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부 환경오염물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손으로 입을 만지는 행동을 통해 토양, 집 먼지, 장난감 오염물질 노출이 증대될 수 있다. 정부가 했다는 대기질 모니터링이라는 측정 결과가 별 의미가 없는 이유이다.
일상적인 평균 노출량이 문제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발생가능한 특수상황이 문제이며, 산성비, 폭우 등이 쏟아질 경우 지면 아래 독성물질에 노출될 수도 있고, 토양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히 어린이들이 이용할 공간이라면 더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용산미군기지는 특정 물질이 고농도로 오염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 지역이란 점, 또한 군사 기지 토양오염으로 인한 건강 영향 위험성 평가 결과는 많은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으므로 확정적, 단언적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임이 강조되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이다. 아동은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으며, 깨끗한 환경, 의료 서비스, 안전한 물,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국제인권법)이 말하는 바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어린이들에게 오염된 공간으로 들어가서 뛰놀라고 권유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한 환경권과 인권 침해이다. 오염물질이 뒤범벅된 토양을 정화도 없이 덮어버리고, 적반하장으로 이를 문제 삼는 시민들을 허위 사실, 괴담 유포자로 몰아가는 정부가 ‘통치’하는 이 상황을 능가하는 괴담이 또 있을까? 문제는 괴담을 퍼뜨리는 상황이 아니라 괴담스러운 이 상황 자체다. 바꾸어야 할 현실이다.
글. 임성희 그린프로젝트팀장 (mayday@greenkorea.org, 070-7438-8512)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57077&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