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었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개정 협상이 무산되었다.
공식일정 이후 나흘동안 후속논의를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발표문은커녕
다음 협상 일정도 잡지 못한 것이다. 이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컸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지난달 브루나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합의한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내 SOFA 개정은 사실상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SOFA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시민단체들은 협상이 벌어지는 외교협회와
정부청사 앞에서 연일 SOFA 개정 시위를 가졌다. 이는 수많은 범죄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도 고자세로 일관하는 미국과 굴욕적인 협상자세로
일관하는 한국정부에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오만함과 한국정부의 준비, 협상력 미비로 SOFA
개정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미국은 애초부터 SOFA 개정의 의지가 없었다. 미국은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기소시점으로 앞당기되 3년 이하의 ‘사소한’ 범죄에
대한 재판권 포기를 요구해 왔다. 협상 상대국을 대상으로 재판관할권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한 나라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이는
한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환경조항에 있어서 미국은 SOFA 본문의 합의 의사록, 합의양해사항
등과 같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에 포함된다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구체적인 보상이나 책임을 명시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의 환경을 파괴하고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복원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현재 미국은 SOFA에 환경조항이 나토SOFA와 같은 수준으로
개정될 경우 그것이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85개국과의 협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SOFA에 환경조항을 신설할
생각도, 의지도 없다. 우리정부에서 아무리 SOFA 개정과 환경조항 신설을
이야기 한다해도 그것은 ‘소 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국정부는 더 이상 SOFA 개정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SOFA 개정의
의지가 없는 미국을 대상으로 몇 개 조항을 바꾸는 것을 구걸하지 말고,
한국의 주권을 찾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한미군주둔군 지위협정과 그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 선언이다. 미국이 협상의 의지가 없다면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파기는 이 땅에서 미군의 존재에
대한 전면 부정을 뜻한다. 현재 미군은 미국의 군사주의와 패권주의를
대변하기 위해서 한국의 요청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 땅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주한미군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고 이 땅을 미국땅처럼 마음대로
오염시키며 쓸 수 있는 SOFA 협정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제1의 국가라고 공언하는 미국이 한국의 환경을
파괴하거나 자국의 군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배상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문서가 바로 지금의 SOFA 이다. 한국민이
아닌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SOFA는 파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민을
위한 새로운 SOFA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국민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자국 이기주의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녹색연합을 비롯한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민의 권익과 주권을 보장받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투쟁할 것이다.
– 우리의 요구 –
첫째, 날로 증기하는 미군범죄와 독극물 방류, 기름유출과 같은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사고로 SOFA 개정 협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부족과 협상력 미비로 SOFA 개정을 무산시킨
한국정부 협상담당자와 SOFA 개정을 확언했던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퇴하라.
둘째, 미국은 앞으로 한국을 비롯, SOFA 협정을 맺고 있는 85개국으로부터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 자행하고 있는 모든 인권유린 행위와 주권침해 행위를 중지하라.
셋째, 한국과 미국정부는 SOFA 개정협상과 관련한 향후 일정을 전면
공개하라.
2000. 12. 12
녹 색 연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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