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용산 반환 기지가 어린이정원으로 졸속 개방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용산기지 전체 반환 뒤 7년 동안 정화를 거쳐야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오염물질로 가득한 곳에 시민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15cm 흙으로 덮고, 꽃과 잔디를 식재해서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날마다 오염된 부지 위에서 축구와 야구를 하고, 맨손으로 흙장난 치는 아이들, 그리고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 약한 사람들에게 오염물질이 언제 치명적인 위해를 끼칠지 장담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산성비나 폭우가 올 경우 토양속 독성물질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헌법 제 35조는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오염된 토양 위에 국민을 팽개친 채 역주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뿐만일까? 2023년 303억의 시민 혈세가 오염 부지 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조성하는 데 낭비됐다. 특히 작년 8월 분수정원이 조성된 숙소·학교 부지는 82%의 토양이 공원 조성 기준치를 훨씬 넘어서는 오염물질들이 검출된 곳이고, 북쪽으로 30~40m 지점에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바 있다. 또한 이곳에서 작업중인 노동자들은 오염된 흙먼지가 흩날리는 공사현장에서 보호장비 없이 그대로 노출된 채였다.
시민의 건강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당장 어린이정원 개방을 중단하는 게 맞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4년 132억의 예산을 증액한 435억을 오염부지 개방에 배정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반환기지 내부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용산 미군기지 정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경우 혈세로 만들어놓은 용산어린이정원 시설물을 전부 철거하고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금을 정원 조성에 쏟아붓는 건 애초 오염 정화를 하지 않겠다는 속뜻이 드러난 게 아닐까?
짓밟힌 것은 시민의 건강권과 혈세만이 아니다. 2023년 7월 용산시민회의 김은희 대표는 개인 SNS에 용산어린이정원에 설치된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 비판글을 올린 이후, 함께 출입했던 용산시민 5인과 함께 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처분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20여명 역시 사전 예약 신청을 했다가 입장 불가 통보를 받았다. 어떤 사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을 출입금지 시켰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정부에 쓴소리하는 사람들의 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법률이 아닌 어린이정원 자체 조항으로 특정 인물들을 출입금지 시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행동자유권,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해당 사안을 두고 국가인권위는 6개월간 피해자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인권침해 진정서를 각하시켰다. 헌법소원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시민을 위해 용산어린이정원을 개방했다고 하지만, 정원에 설치된 대통령의 업적 과시용 전시물, 그리고 자의적인 ‘블랙리스트’ 조치는 이곳이 ‘시민의 정원’이 아니라 ‘우상의 정원’임을 말해주고 있다.
위와 같은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1년의 지표를 보면 참담하다. 일부 언론은 용산어린이정원 졸속 개방을 두고 ‘한국판 센트럴파크’, ‘주권의 회복’같은 수사로 치장했지만, 남겨진 것은 시민의 기본권 파괴와 혈세 낭비, 그리고 오염정화를 둘러싼 미군과의 협상에서 수세적 위치를 자처한 것뿐이다. 미군기지 반환 문제는 단순히 부지를 돌려받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염정화 책임을 둘러싼 지난한 협상 역시 따라붙는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서 용산 오염부지에 정원을 조성해버린 마당에, 전국 미군기지의 반환과 정화를 둘러싼 협상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오염정화 책임을 미군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것은 주권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저버리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당장 오염된 어린이정원 개방과 시민의 권리 침해를 중단하고,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미군에게 정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만이 그나마 지난 과오를 반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4년 5월 3일
녹색연합 · 온전한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문의: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 박상욱 활동가 (070-7438-8501 / deepeye121@greenkorea.org)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 임성희(팀장) / (070-7438-8512 / mayday@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