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으로 세상을 구하는 방법 – 홍보글

2006.01.15 | 군기지

복 많이 받으세요.

몇 달 째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는 저, 계주가 책을 냈어요.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는 환경문제를 담은 책인데,
우리 만원계 이야기도 담았어요.
혹시 어딘가에 만원계를 알리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자르든 늘리든 잘 요리해서 홍보해 주십시오.
책 제목은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북센스)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좀더 힘이 되고
계원들은 행복해지는 계모임이 되기 위해 올해도 열심히 살아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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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계모임, 요상한 계주
책장이 비좁다. 어느새 책이 이렇게 많이 쌓였지? 읽지도 않고 꽂아두기만 하는 책들도 꽤 된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책 정리나 해야겠다. 읽은 책은 책장에서 꺼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한 권 펼쳐들었다.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독서삼매경에 빠져 볼까? 문득 책갈피에서 푸른색 종이 한 장이 나풀거린다. 엇, 세종대왕님이다! 이 분이 왜 여기 계셨지? 오, 이런 횡재가 있나. 이 돈으로 뭘 하지? 맛있는 걸 사 먹을까, 영화를 볼까, 책을 살까?
뜻밖에 생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잔뜩 꿈에 부풀었다. 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식사를 두 끼 정도 해결할 수 있고, 재활용가게에서 옷 한 벌을 마련할 수도 있고, 친구에게 감동을 줄 선물을 살 수도 있겠지. 가까운 곳으로 하루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겠군. 완행열차를 타고 떠났다가 어느 한적한 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먹고 돌아오는 여행……. 그거 참 괜찮겠다. 하지만 오직 나만의 행복을 위한 일 말고 뭔가 그럴듯한 일은 없을까? 만 원이 홀씨가 되어 더 널리 퍼져가는 그런 일말이다.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했다. 다음 면을 펴서 다시 넣으라는 안내방송이 반갑다. 돈이 또 들어왔군. 고마운 사람들. 나는 계주다. 사람을 끄는 재주도 없고 돈을 모으는 능력도 없지만, 계주 역할을 벌써 일 년 넘게 맡고 있다. 계원이 20명 정도 되는 계모임이다. 계원들은 한 달에 만 원씩 귀한 곗돈을 차곡차곡 넣어주고 있다. 통장에 모인 돈을 보면 어깨가 좀 으쓱해진다. 통장정리가 끝나면 인터넷 계모임방으로 들어가서 우리 곗돈을 차곡차곡 정리한 뒤 계원들에게 공개한다. 그런데 우리 계모임은 보통 계모임하고는 좀 다르게 운영된다.
돈은 꼬박꼬박 내지만 곗돈을 타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곗돈 타는 순서도 없다. 그저 달마다 만 원씩 꾸준히 돈을 낼 뿐이다. 일정액의 돈이 모이면 몽땅 다른 나라로 송금을 한다. 계주가 곗돈을 몽땅 모아서 국외로 반출한다고? 외화밀반출 조직이란 말인가? 곗돈은 고스란히 필리핀으로 보내고 있다. 우리 계의 정식 명칭은 ‘녹색아시아를 위한 만원계’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필리핀 루손섬에 있는 작은 마을인 수빅․클라크 지역 사람들을 돕는 ‘필리핀 수빅․클라크 만원계’인 것이다.

미군이 필리핀에서 한 일
필리핀 수빅 해군기지는 1868~1898년에 필리핀을 점령했던 스페인 정부가 사용하던 해군항구이다. 수빅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아우를 수 있는 위치에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강한 태풍이 불어도 군함을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요충지이다. 잠수함 시설과 해군항구로만 사용되었던 수빅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쿠비 해군비행장을 갖춘 거대한 해군기지로 변모했다. 루손섬 팜팡가 지역의 넓은 평야에 위치한 클라크 공군기지는 스페인과 미국간의 전쟁이 있었던 1898년 미군 기병대의 훈련장소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 뒤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가 되자 1919년에 제대로 된 공군기지 시설을 갖추었다. 일본 점령시절에는 일본군 ‘카미카제 특공대’의 출격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필리핀사람들은 100여 년이나 버티고 있으면서 온갖 피해를 준 미군기지는 이제 그만 떠나라고 오랫동안 부르짖었다. 1986년에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미군철수 목소리는 더욱 드높아졌다. 미군 철수시위가 이어지던 1991년 6월 14일,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클라크 공군기지 근처에 있던 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기지 안으로 흘러들었다. 화산 폭발이 며칠 동안 계속되자 미군들은 부랴부랴 짐을 싸면서 폐유와 유해화학물질을 몰래 묻어버렸다.
산 가까이에 살던 원주민 2만여 세대 역시 화산폭발로 하루아침에 난민신세가 되었다. 이들을 위해 필리핀정부는 미군들이 떠난 기지 안 캄콤에 난민촌을 마련했다. 약 7,000세대가 미군이 사용하던 막사와 천막에 짐을 풀었다. 정부는 펌프로 퍼 올리는 우물 203개를 파서 난민들의 식수로 쓰게 했다.
“아침 일찍 우물물을 길어서 먹다보면 물 위에 기름기가 떠 있었어요. 그렇지만 미군들이 있던 곳이라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난민들은 ‘기름기가 떠 있고 약간 냄새가 나는’ 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그 물로 밥을 지어 먹고 벼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캄콤 안에 있는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2, 3일 만에 고열과 설사로 죽고, 임산부들의 유산도 잦아졌다. 캄콤으로 오기 전에는 멀쩡했던 아이들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어른들도 원인모를 피부병을 앓았다. 갓난아기들은 시간이 흘러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거나 걷지도 못했다.
원인은 바로 우물 때문이었다. 캄콤 일대는 미군 차량들이 연료를 공급받고 수리를 하던 곳이었다. 수리 중에 흘러나온 기름과 유해화학물질들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가 지하수를 오염시켰는데, 난민들은 그 물을 마시고 살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역학조사를 통해 캄콤의 땅과 물에 납과 수은, 질산, 석유 같은 물질이 섞여 있다는 걸 밝혀냈다.
질병이 계속 이어지자 정부는 1995년부터 난민들을 마답답, 마와퀴, 산호세로 다시 이주시켰다. 그러나 적게는 2~3년, 길게는 7년 가까이 캄콤에서 살았던 이들의 비극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캄콤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그 아이들에게서 기형아와 소아마비가 나타났다. 몸 안에 쌓인 독극물들이 자손들에게도 이어진 것이다.
캄콤을 떠나 마답답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난민들은 스스로 피해를 조사해보았다. 1,032가구를 조사한 결과, 156명이 몇 년 사이에 갖가지 질병으로 사망했다. 36명은 암에 걸려 있고, 328명이 피부병과 심장병 같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다.
“미군들이 이 땅을 어떻게 사용했고, 폐유와 각종 화학독극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어떤 정보도 우리는 건네받지 못했어요.”
피해 주민들은 이렇게 울부짖었다.
한반도에도 100여 개나 되는 미군기지가 있다. 기지를 옮기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한다. 미군기지에서 독극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서 오염을 시켰던 사고와 비슷한 일이 해마다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필리핀 수빅․클라크 지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수많은 미군기지가 있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수빅․클라크 지역의 사람들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이 너무 가난해서 병원진료를 받을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계원들이 한 달에 만 원씩 모아 보내는 돈으로는 그들을 모두 치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필리핀에서 만 원이면 한 가족이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살 수 있고, 10만 원이면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다. 우리가 보내는 돈으로 피해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의 살림살이를 도울 수 있고, 주민들을 교육시킬 수도 있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는 밑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주민들의 권리를 찾고 미국에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활동하는 ‘미군기지정화위원회(People’s Task Force For Bases Clean-up)’라는 단체로 곗돈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세계 초강대국을 상대로 하는 힘들고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뜻을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을 달마다 차곡차곡 보내고 있다.

푸른 아시아 만들기
‘필리핀 수빅·클라크 만원계’ 외에도 ‘녹색아시아를 위한 만원계’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이다.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 경계지역에는 전 세계에 30여 마리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표범이 살고 있다. 티그리스재단(Tigris foundation)은 우리나라 표범과 친척뻘이 되는 아무르표범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멸종위기 아무르표범 보호를 위한 만원계’는 이들의 밀렵방지활동을 후원한다. 야생동물의 생태에 관심이 많고 특히 아무르표범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지원하고 있다.
히말라야 기슭, 아름답고 신성한 숲이 있는 네팔 낭기마을의 ‘히마찰 하이스쿨’을 후원하는 ‘네팔 낭기마을을 돕는 만원계’도 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여행자들이 모여서 만든 계이다. 왕복 5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하는 히마찰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학교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삭정이로 불을 지펴 밥을 해먹으며 공부를 한다. 네팔에서 12,000원이면 한 아이의 일 년치 교과서와 교재를 살 수 있다. 17만 원이면 선생님에게 한 달 월급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후원하는 돈으로 비가 새는 기숙사 움막 지붕을 고치고, 공동 취사장을 만들 수 있고, 부속을 사서 더 많은 학습용 컴퓨터를 조립할 수가 있다.  
바다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얻기 위해 다국적 석유기업인 엑스모빌과 쉘이 추진하고 있는 사할린 프로젝트는 지구상에 100여 마리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귀신고래의 보금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멸종위기 귀신고래 보호를 위한 만원계’는 귀신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할린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활동하는 사할린의 환경단체 ‘사할린 인 바이러먼트 워치(Sakhalin Environment Watch)’를 지원하는 계모임이다.
한 달 동안 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뜻 깊은 일은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다. 만 원짜리 한 장이 세계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사랑과 평화의 홀씨가 되고 있다. 한 사람에게는 적은 돈이지만, 그 돈이 차곡차곡 쌓이면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녹색 아시아를 위한 만원계’ www.greenkorea.org/greenasia
– 홈페이지를 열고 들어가면 여러 만원계 방문이 열려 있다. 소개한 곳 외에도 인도 보팔만원계와 인도네시아 오랑우탄 만원계가 더 있다. 가장 마음이 울리는 곳으로 들어가 계원으로 가입하면 함께 활동할 수 있다. 모임마다 정해져 있는 계주가 두 팔 벌려 당신을 반길 것이다. 그 지역에 대한 공부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모임을 알리는 캠페인에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의 환경문제로 고통받는 가난한 지역을 알고 있는 분은 새로운 계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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