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앞 퍼포먼스건 재판 항소이유서

2014.12.09 | 군기지

2012년 3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던 즈음에 주 시공사인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붉은페인트 퍼포먼스를 벌였던 활동가들의 재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 활동가도 함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돌아오는 12월 11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21호에서 열립니다.

아래는 재판을 받고있는 활동가들이 직접 작성한 항소이유서입니다.

 

<항소이유서>

사 건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노3121

피고인 : 김성민, 염창근, 최정민, 양여옥, 배보람, 박경수

 

위 사건에 관하여 위 피고인들은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2012년 봄은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발파와 함께 왔습니다. 고작 마을 주민 87명의 동의로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해군기지는 건설은 잔인하도록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매일 같이 폭탄 소리가 제주 강정 마을을 뒤흔들었고, 어쩌지 못하고 공사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마을 주민들과 제주를 평화로 지키려는 사람들도 아픔에 뒤흔들렸습니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와 연산호를 대신해 구럼비 바위에서 서귀포 해안을 드나드는 이들은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는 화약을 설치하고 시멘트를 들이붓기 위한 삼성이거나 국방부이거나 정부이기만 했습니다.

 

매년 수백억의 예산이 제주해군기지 사업으로 책정되고, 대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돈이 시공사인 삼성과 국방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강정 마을 주민 94%가 제주해군기지 유치에 반대 결정을 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구럼비 해안이 법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절대보전지역이었다는 것도, 민군복합항과 관련된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이 국방부의 이중협약으로 드러난 것도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의 총체적인 설계 오류와 미군이용의 문제, 환경영향평가서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루즈의 항로와 겹쳐지는 연산호 서식지는 세계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었습니다.

 

불법과 위법으로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동안,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말하던 6백 명이 넘는 주민들과 시민들은 업무방해, 집시법, 건조물침입 등으로 연행되었습니다. 이들 중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들 589명, 구속되었던 사람은 40 여명입니다. 부과된 벌금만 총액 3억여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안보를 이유 삼았으나 정당성과 타당성을 잃은 국책사업은 강정 주민들의 일상과 미래를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와 해군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권력의 거짓과 불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불법과 위법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실제적인 행위자인 삼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지난 2012년 3월 29일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페인트를 붓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수십 명의 경비원이 늘 상주하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삼성물산 건물 앞에서 단 6명이 평화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10여분의 퍼포먼스, 그것도 점심시간에 이뤄졌으며, 퍼포먼스의 시작과 동시에 삼성물산의 경비를 맡고있던 경비업체 에스원 직원에 의해 그야말로 질질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을 뿐입니다. 삼성은 업무방해, 집시법, 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을 이유로 우리를 고발했고, 얼마 전 2년여에 걸친 재판과정을 통해 1심 선고를 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 박소영 판사님은 ‘삼성물산 앞 페인트 퍼포먼스’ 판결을 내리며, 피고인들의 퍼포먼스가 삼성물산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거나, 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업무방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동주거침입과 관련하여서도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사정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죄, 공동재물손괴와 관련하여 경비직원의 의복 등에 페인트가 묻게 된 것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이 고의로 손괴하였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 판단하여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공동재물손괴 죄와 관련하여 퍼포먼스 과정에서 삼성물산 사옥 정문 앞 통로 바닥이 오염된 것과 관련해서는 유죄를, 집시법 위반과 관련해서도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퍼포먼스임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을 비판하려는 의도 하에 개최된 옥외집회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퍼포먼스임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라는 행위가 갖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한 개인이 사회에서 온전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헌법적 권리입니다. 동시에 표현의 대상이 국가와 자본이라 하여도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보다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삼성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실정법의 맹점을 이용해 일체 불가능하게 합니다. 용역직원 수십 명을 고용해 ‘유령 집회’를 신고함으로써, 삼성 건물 앞의 집회는 모두 불법이 되는 현실을 재판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과 거대 자본의 반윤리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단 십여 분 남짓한 예술적 행위조차도 범죄로 만드는 흔해 빠지고 낡은 관습이 마치 가장 강력한 법인 것처럼 삼성 앞마당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 법의 피해자인 우리는 다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에게는 마땅히 그러할 권리가 있습니다.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행위를 하는 국가와 자본권력에 대항하여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은, 설사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정당합니다. 개인의 양심과 사상에 따른 평화로운 표현행위는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하며 국가와 자본권력에 의해 검열되거나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헌법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저항행위, 삼성물산 앞 퍼포먼스 사건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피고인들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제주 강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실현하고자 할 것입니다. 제주도가 아시아 태평양 한 가운데서 화약고가 되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거대 자본 삼성이 수백억 원의 세금으로 건설하는 제주 해군기지 방파제는 매년 여름 태풍 때마다 깨져서 바다 위를 떠다닙니다. 태풍을 맞설 수 있는 기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생명의 권리에 우선하는 자본도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이기는 군사기지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제주 강정, 이 몇 음절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행간에서 생명과 평화를 가장 먼저 읽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낸 이 단어를 품고 다시 재판정으로 향합니다.

 

2014년 9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제9형사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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