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괴물>찍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5.03.10 | 군기지

서울 한복판에서 <괴물>찍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 용산미군기지, 2016년 평택 이전….오염조사 더 미뤄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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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해가 저물고 어스름해지는 저녁 시간, 용산구 희망연대 노동조합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용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용산 미군기지 잔류 & 환경오염,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회가 있는 날이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어느 새 서른 명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준비한 자료와 함께 질문을 건네자 다양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다. '현수막을 보고 알게 됐어요', '전봇대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 왔어요', '친구가 알려줬어요', 또 '40년 넘게 용산 지역에 살았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적혀있어서요' 등등. 거리에 현수막을 달고 일부 동네에는 집집마다 초청 전단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주민들에게 알렸던 게 효과가 있을지 의아했는데 실제로 그걸 보고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최근 2년간 용산 미군기지의 오염문제를 주제로 국회와 서울시에서 여러 차례 토론회와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주민들과 직접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민들이 영상과 자료화면, 그리고 강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서울은 비교적 정주의식이 희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삶의 터전과 그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용산 미군기지 오염문제, 현재 진행형

서울시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나요?”

영화 「괴물」의 몇 장면을 영상 제작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사에 연락을 취했을 때 받았던 질문이다. 그렇다. 지난 2000년 2월 용산 미군기지에서 다량의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 방류한 사건을 다룬 영화 「괴물」은 20일 만에 천 만 관객을 사로잡았지만, 용산 미군기지의 오염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용산미군기지 오염사고는 확인된 것만 14차례에 이른다.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외에도, 2001년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공사 중에 다량의 기름이 검출되었고, 2006년에는 삼각지역 쪽에 위치한 캠프 킴 앞 지하시설물에서 기름이 유출되었다.

두 곳 모두 주변 지형과 기름의 종류를 분석한 결과 미군기지 내부 오염원으로 인한 사건임이 확인되었고, 기지 내부는 미군 측이 외부는 서울시가 정화하기로 합의하였었다. 서울시는 오염 사고가 있었던 두 곳의 기지 담벼락 바깥에서 오염된 지하수를 퍼내고 정기적으로 시료를 채취하여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고 이후(녹사평역 일대:2004년부터/캠프 킴:2008년부터) 지금까지도 말이다.

서울시의 오랜 작업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두 곳의 지하수에서 검출되는 유류오염물질은 기준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녹사평역 일대의 경우, 2014년에도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의 570배가 넘게 검출됐고, 석유계총탄화수소(TPH)도 37배를 초과했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용산기지 내부의 오염원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았다는 방증임에도, 우리 정부는 기지 내부를 조사하겠다거나 내부 오염원에 대한 조치사항이 담긴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한반도 방위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오염문제에 대한 정화 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할지 모른다. 실제 여러 번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순수하게’ 한반도 방위를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장악력을 유지하고 싶어서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어떤 상태로 돌려받게 될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것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을 오염시켜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SOFA 제 4조 1항(미국 정부는 (시설 제공) 당시의 상태로 원상 회복할 의무를 지지 않으며, 원상 회복 대신으로 한국 정부에 보상해야 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미 “미국은 한국의 환경법을 존중한다”는 ‘환경에 관한 특별양해각서’ 규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비록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지만 말이다.

강연자 박정경수씨는 “누가 오염을 시켰고, 그것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가? 이는 토지에 대한 정의(justice)의 문제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했다. 국제법상 통용되는 오염자 부담의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Daum 희망해를 통한 1,149명의 네티즌들의 참여로 제작된 용산 미군기지 오염문제 영상을 함께 보며 시작된 강연회는 군사기지와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의 인권, 건강, 환경문제와 관련된 국내외 다양한 사례 소개, 그리고 주민들의 질문과 대화로 마무리됐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일본 군 기지로, 한국전쟁 이후엔 미국 군 기지로 한 세기가 넘도록 다른 나라 군사기지로 사용된 용산 기지는 내년 말까지 평택으로 이전되고, 이곳은 국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우리는 이 땅을 어떠한 상태로 돌려받게 될까? 미군기지 중 가장 오염사고가 많았던 서울 정중앙 80만 평 기지 내부는 과연 어떤 상태일까?

서울시는 지난 2일, 시의회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달 용산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지하수 관정 조사를 마쳤고 4월에 열리는 제6차 한미SOFA 환경분과위원회 내 공동실무위원회에서 기지 내부의 시료 채취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서울시의 주장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오염된 땅위에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을 고밀도로 개발하는 장밋빛 꿈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부의 토양 지하수 오염 실태를 하루빨리 조사하고 오염 치유에 대한 미군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정부와 환경부가 가장 먼저 풀어야할 과제일 것이다.

 

작성: 신수연 (평화생태팀 활동가)

 

http://youtu.be/onmrdQvH284?list=UUcVlez9_YJBviQ4iNAbK6_w ('괴물이 되어버린 땅' : 용산기지 오염 영상보기)

* 본 게시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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