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가장자리에서, 평화를 넓혀가는 사람들

2018.09.11 | 군기지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는 한국-일본-오키나와 대표

 

지난 9월6일-9일, <동아시아 미군기지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한국, 오키나와, 일본을 돌아가며 개최되는 이 심포지엄은, 올해로 벌써 11회를 맞습니다. 10년 넘게 동아시아의 환경, 평화 단체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평화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연대의 장입니다.

 

올해는 오키나와와 일본에서 약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9월5일과 6일, 해외 미 육군기지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인 평택기지와, 기름과 다이옥신 등으로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한 서울 용산과 인천 부평의 기지를 답사했습니다. 9월7일, 약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각국의 현황을 공유하고 평화운동의 과제를 토론하는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또한 9월8일과 9일은 청와대 앞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 참여한 뒤, 사드 기지 공사가 진행 중인 경북 성주 소성리를 찾았습니다.

#서울 용산기지 답사

 

#인천 부평기지 답사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면적의 0.6%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본 전체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기지의 환경피해와 인권 침해로 70년 넘게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듀공, 산호초 등 보호생물들이 살아가는 헤노코 앞바다에는 주민들이 원치 않는 새로운 미군기지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추진되는 기지 건설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키나와 지사는 기지건설허가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본토에서는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은 현 정부는 자위대가 해외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100만 명의 일본 시민들이 원고로 참여하는 위헌소송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국의 용산기지와 부평기지에서는 심각한 토양오염이 확인되었지만, 미군은 아무런 책임을지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으로의 반환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해군기지에서는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채 ‘국제관함식’ 행사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형성된 한반도 평화무드로 인해 북핵의 위협이 사라져감에도, 성주에는 사드미사일 배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주 촛불문화제 참여한 오키나와-일본 참가자

 

#성주 소성리 사드기지 앞

 

 

미군기지가 있는 현장 곳곳은 한반도 평화의 훈풍에서 비껴나 있습니다. 평화가 위협받는 현장 가운데에서 주민들은 평화를 위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가장자리에서 평화를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안보를 이유로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환경과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값비싼 첨단 무기나 안보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심포지엄의 강연 중 김준형 교수가 인용한 평화학의 대가, 요한 갈퉁의 말이 기억납니다.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훨씬 값싸고 낫다.”

 

평화를 위한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이 동아시아의 안전한 삶을 가져올 것을 믿고 희망합니다.

 

공동선언문

 

평화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평화를 넓혀간다

 

동북아 평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을 적으로 삼아 공고해져 왔던 한국과 일본, 미국 간의 군사동맹이 그 명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서는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급작스런 정세 변화에 일본 정부까지도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동북아 평화를 바라마지 않는 우리는 지금의 평화 분위기를 낙관하고자 하지만, 쉬이 그럴 수 없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과 함께 동북아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전까지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동북아 전역에 건설되었던 미군기지도 여전하다.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던 군사화의 목적은 이제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으로 바뀌었다.

 

위협을 다른 위협으로 대체하면서 군사화는 계속되어 왔다. 일본제국이 사라지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 분단으로 동북아 냉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군사기지는 미국의 군사기지로 대물림되었다. 평택과 요코타와 용산과 요코스카와 군산과 사세보가 그랬다. 태평양전쟁을 온몸으로 겪고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오키나와 전역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기지로 인해 빼앗긴 자들은 아직까지 한 번도 빼앗긴 것을 되찾은 적이 없다. 평화(平和)는 그 뜻 자체에 평등(平等)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군비경쟁과 기지건설과 같은 군사화는 그 자체로 특정한 사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우리가 주장하는 평화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평화야말로 현실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하려는 저 고공정치가 주장하는 평화와는, 특정한 사람들을 배제시키면서 말해지는 저 차별적인 평화와 우리의 평화는 다르다. 우리의 평화는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매일 우리는 기지를 바라보며 이제는 사라진 정경을 떠올린다. 경찰력에 끌려나오며 군홧발에 짓밟혔던 앞 세대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같이 평화를 위해 저항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평화는 우리만의 평화가 아니다. 오키나와의 평화가 일본의 평화이며, 일본의 평화가 한반도의 평화다. 앞 세대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였고, 우리의 평화가 뒷 세대의 평화가 될 것이다. 제주와 오키나와, 일본 바다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다. 듀공과 돌고래, 산호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다. 미군에 의해 오염된 땅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다. 우리의 평화는 확장되어 왔다. 빼앗기고 침해당하는 존재와 함께하면서, 우리는 평화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왔다. 우리의 평화는 누군가를 배제시킴으로써만 달성되는 평화와는 다르다.

 

우리는 또 한 번의 중요한 평화의 기로에 서 있다. 평화를 바라는 동북아의 민중들이 지금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희망하며 결의한다. 당신의 평화가 우리 모두의 평화가 될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2018년 9월 7일

제11회 동아시아 미군기지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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