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산기지 터, 100년만 그대로 두자

2020.09.18 | 군기지

[용산공원을 상상하다③] 나미나, 배성미 작가가 본 미군기지

용산은 오랫동안 군사기지였던 탓에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작년 12월, 용산기지 반환 협상이 시작되면서 오래도록 미뤄졌던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 세기 넘게 군사기지였던 땅이 생태역사공원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공원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깨진 유리 조각 맞추듯 오랫동안 용산이라는 공간에 천착한 사람들을 만나 담장 너머 펼쳐질 공간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역사, 생태, 예술, 환경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를 만나 용산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기자말]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80만 평의 미군기지가 있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다. 녹색연합에 들어오기 전, 필자가 그랬다. 삼각지역에서 내려 녹사평역 방향으로 걸으며 처음 마주한 담벼락은 신기하기도 하고 당혹스러웠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담벼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게이트 앞을 지키는 경찰들 때문인지 기지 주변은 딱딱하고 삼엄한 분위기다. ‘군사기지’, ‘미군’, ‘한미동맹’, ‘담벼락’…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듯하지만, 군사기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미군기지’를 소재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올봄,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린 기획전 <일어나지도 않은>을 통해 미군기지로 인한 상흔의 역사와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들춰낸 배성미, 나미나 작가이다. 

해외 미군기지를 다니며 ‘영상회화’ 작업을 한 나미나 작가와 연구모임이자 예술가 집단 Gate22에서 활동하며 용산기지를 기록해온 배성미 작가를 만났다. 예술가의 눈으로 본 미군기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강정에서 하와이까지, 미군기지를 기록하다

Sun Cruises, 장지에 분채 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 가변설치, 256X380cm, 가변크기, 30min, 2019 ⓒ 나미나

나미나 작가는 <섬들의 연대> 시리즈를 통해 전략적 요충지이자 휴양지로 중첩된 공간에서의 기록과 재구성 작업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시작된 관심이 오키나와, 괌, 필리핀, 하와이 등으로 확대되었다. 

군사기지 건설과 그로 인한 변화, 전쟁이 남긴 흔적은 각기 다른 섬의 풍경과 감각으로 포착됐다. 그는 어느 해변의 파도, 관광 타운의 대관람차, 시위의 현장을 영상에 담는다. 영상 속 한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해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한다. 7월 말 을지로 작업실에서 처음 본 나미나 작가의 작품은 소재와 방식 모두 생소했다. 작품 해설을 듣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제주 강정에 처음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강정에 처음 간 건 2012년이다. 해군기지가 지어지기 전, 구럼비(강정마을 앞 바닷가에 1.2km가량 이어져 있는 용암너럭바위)가 폭파된 후였다. 평소 좋아하던 김선우 시인이 강정마을에 관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줄 수 있냐고 부탁하여 강정에 가게 되었다.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강정에 있는 활동가들과도 친해져 자주 강정을 오갔다.”

– 강정마을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
“처음부터 강정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원래 영상 찍는 게 습관이다. 강정에서 경찰들이 채증하면서 기지 반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찍길래 나도 반항심에 계속 영상을 찍으며 다녔다. 그러다 오키나와 헤노코에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도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농성장 천막에 머물게 됐다. 

체류 기간의 절반은 천막에서 생활하다가 나머지 시간엔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 간 곳이 아메리칸 빌리지다. 대관람차가 유명한, 화려한 관광타운인데 느낌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천막에서 시위하고 잤는데 이곳에서는 게임하고 놀고 있으니까. 왜 둘 다 똑같은 오키나와 땅인데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모습일까. 그런 이질적인 모습과 아이러니 때문에 작업을 시작했고 <아메리칸 빌리지>(AMERICAN VILLAGE) 시리즈를 만들었다.”

▲ American Village, 장지에 분채, 72X90.5cm, 2016 ⓒ 나미나

– 그때부터 작품의 주제가 ‘미군기지’가 된 건가?
“처음부터 이렇게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작업하다 보니 오키나와와 한국이 상황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일본은 주민들이 신청하면 미군기지 내부도 출입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게 안 된다는 점이 달랐고, 군사기지 앞 아스팔트 땅에 그려진 노란 줄 하나를 기점으로 땅의 주인이 달라져 선을 두고 대치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이웃 나라에서도 이렇게 상황이 다른데, 먼 곳의 다른 나라는 어떤지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 후로는 괌과 필리핀에 갔다.
“제주도, 오키나와, 괌, 필리핀, 하와이 이렇게 다섯 곳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갔다.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시위 현장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었는데 괌은 그렇지 않았다. 어차피 미국 땅이고 자치령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혼자 가다 보니 괌에서부터는 활동가가 아닌 온전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괌에서도 전쟁의 역사나 미군기지가 있는 곳을 계속 찾아다녔다.”

– 작가 노트에 ‘장소(섬)마다 폭력이 드러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느끼는 감정과 결과는 달랐다’고 썼다. 어떤 지점이 달랐을까.
“가장 다른 건 언어였다. 한국이나 일본은 기지가 있는 섬이더라도 각국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하와이나 괌은 고유의 언어가 있음에도 미군의 지배로 인해 주 언어가 영어로 바뀌었다. 괌에서는 휴식도 즐기며 평화롭게 다녔는데, 땡볕에서 ‘건비치’라는 바다 영상을 찍어왔다. 일본군 폭탄이 해변에 그대로 남아있어서 건(gun)비치라고 하더라. 그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 괌의 역사적인 장소를 돌아다니며 작업한 것이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시리즈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곳은 필리핀이다. 스스로 ‘미군기지는 좋지 않다’는 일종의 선입관을 가지고 섬들을 방문해왔는데, 내가 만난 필리핀 사람들은 모두 미국을 좋아하더라.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은 미군기지가 철수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릴리패드(소규모 기지) 형식으로 클라크와 수빅만에 미군이 남아있다. 

퇴역한 늙은 군인들이 환락가에서 젊은 필리핀 여자를 끼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해군기지 주변 바닷가의 환경오염도 무척 심각하다. <앤젤레스 시티>(Angeles City)는 필리핀의 클라크, 앙헬레스시티, 피나투보산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고, 수빅과  코레히도르 섬, 마닐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썬 크루즈>(Sun Cruises)다.”

▲ 8795 태평양_0초/1분 3초, 장지에 분채, 단채널 영상, 65X45.5cm, 2018 ⓒ 나미나

– 다녀오신 곳들이 모두 유명한 관광지이지 않나. 여행자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폭력들을 어떻게 느낀 건지 궁금하다. 
“스스로 무관심한 폭력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보이지 않는 폭력을 느꼈던 것 같다. 환경도 사실 눈에 크게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폭력에 의해 오염되는 것 아닌가. 주변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것들이 내 눈에는 보였다. 친구들이 내 작품을 보며, 관광지라서 놀러 갈 생각만 했지 군사기지로 인한 영향과 전쟁의 상흔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폭력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무심한 것들을 좀 더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단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회화작품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영상회화’라는, 굉장히 낯선 방식이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림, 영상 둘 다 좋아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만으로는 생생한 현장감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술관 가서 30분짜리 영상을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작품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보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순간, 한 시야에 들어올 수 있는 그림 작업을 병행했다. 영상 찍은 걸 돌려보면서 그림을 그렸고, 자연스럽게 영상과 합치게 됐다. 이 두 개를 합쳐보기도 하고 떼어 내기도 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생각과 물감(분채)을 단계적으로 축적하며 어느 정도의 집중과 노동을 요구하는 한국화 기법(물리적)과 현장의 상황과 편집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영상(비물리적)의 효과적인 연결을 꿈꾸고 있다.”

용산기지 터, 100년만 그대로 놔두자

배성미 작가는 Gate22의 회원이자 시각예술가, 설치미술작가다. 올해 초 <일어나지도 않은> 전시회에서 미군기지를 소재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미군기지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Gate22를 만나면서부터다. 

기지 내 공식 게이트가 21개라는 것에 착안해 모두에게 열린 게이트를 상상하며 이름 붙인 Gate22는 공공세미나, 워킹투어, 피크닉, 전시회, 공연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 기지부지의 미래를 논의해왔다. 용산이라는 땅에 저장된 기억을 <용산기지탐색도>, <용산기지탐색서> <용산기지탐색전> <gate22 오케스트라> 등 지도와 책, 전시, 공연으로 풀어냈다. 삼엄한 담벼락 너머로 이들은 무엇을 상상했을까? 9월 초 불광역 한 카페에서 배성미 작가를 만나 기록 작업의 의미와 용산에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 아름다운 초원, 종이, 스티로폼, 가변설치, 2020 ⓒ 배성미

– 올해 초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겉보기에는 잔디밭처럼 생겼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Gate22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미군기지와 관련해 개인적인 작업을 해본 적은 없었다. 마침 미군기지를 소재로 나미나 작가와 함께 2인전(展)을 열게 된 것이 기회가 되어 작품을 만들었다. <기지국가>라는 책을 보면 외국에 주둔한 미군기지가 무려 800여 개라고 한다. 800개의 별을 만들까? 하다가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 달러를 복사해 초원을 만들었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이 된 옛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Hialeah)의 뜻이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아름다운 초원이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모두 자본 전쟁이 아니냐는 거다.”

“이토록 오랫동안 남의 땅으로 금기의 땅으로 존재한 곳.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 이제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초원으로 존재하는가. 남아있는 미군기지 오염 문제는 앞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저변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중략)… 나는 여기 지금의 공정하지 않은 거래와 비합리적 관계를 놓고 아름다운 초원을 만들어 두었다.” (작가노트에서 발췌)

– Gate22에 함께하게 된 계기는?
“Gate22에서 연 첫 번째 피크닉에 손님으로 참여했다. 그때 처음으로 용산기지를 알게 되고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정말 묘한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Gate22에는 문화예술기획가, 건축가, 시각예술가, 도시지리학 전공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멤버들의 집이 용산기지 근처에 있었고, 그 땅의 역사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둘 찾아다니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두 번씩 투어를 하면서 예술적 행위를 하기도 하고 우리가 알게 된 것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투어 루트를 많이 개발했다.”

– 용산기지 기록작업의 결과가 <용산기지탐색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 주로 무엇에 집중하여 기록했나?
“사람이 중요했다. 땅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 동안 그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흔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기지 주변에는 tailor(양복점) 하는 분들도 있고, 코인(군인 배지) 만드는 분도 있고, 미군들이 드나드는 바에서 일했던 언니들도 계신다. 옛날이야기를 쫓아다니며 듣고 사람들과 알아가고, 왜 이 땅이 중요한지, 이 땅 주변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숙대입구역 뒤편 남영동 스테이크 골목도 찾아가고 용산고등학교 뒤편에 남아있는 오래된 산동네를 돌아다니며 옛날에 집 구조는 어땠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 담벼락 해킹 투어, 트램폴린 위를 뛰며 담벼락 너머를 엿본다. ⓒ Gate 22

–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어했던 건 담벼락 해킹 투어다. 고프로를 부착한 헬멧을 쓰고 트램펄린 위에서 뛰며 미군기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렇게 뛴다고 내부가 잘 보이는 건 아니다. 기지 내부를 보고 싶으면 국립중앙박물관 계단 위에서 보는 게 훨씬 낫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기억은 기지 담벼락에 분필로 낙서하고 다닌 거다. 몰래 낙서를 하고 다니는 쾌감과 다음 모임 때 가서 낙서가 남아있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간이 코딱지만 해서 소심한 저항을 하는 사람들이다.”

– 미래의 용산공원 부지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 상상했던 게 있다면?
“오염 문제의 해결 없이 활용을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다. 옛 미군 골프장이 반환되어 만들어진 게 용산가족공원인데, 그곳에서 피크닉을 할 때 오염 분야 박사님이 참여하신 적이 있다. 가족공원이라 많은 사람이 놀러 와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그때 박사님이 본인이라면 자신의 아이를 절대 이곳에서 놀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도 땅에서 기름 냄새가 나고 옆 도랑에는 기름띠가 둥둥 떠다녔다. 1차적으로 오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염된 곳과 오염되지 않은 곳을 우선 조사한 후 활용을 논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Gate22에서는 항상 “그대로 놔두자”라는 주장을 했다. 용산은 100년 동안 남의 땅이었으니 100년만 그대로 놔두자고. 그 시간 동안 환경오염과 근현대사의 기록 등 여러 쟁점이 정리되고, 다음 세대에게도 그 공간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좋은 예로 독일의 템펠호프 공항이 있다. 그렇게 천천히 논의하고 변화시키자고 이야기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옛 공항 템펠호프도 들렀다. 나치 때 만들었고, 그 뒤 미국 공군이 비행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100% 템펠호프’라는 시민단체 활동가 마라이케는 모두 305헥타르에 이르는 템펠호프 공항 부지 가운데 일부를 개발하려는 베를린시에 맞서 ‘100% 공원화’를 요구하는 주민투표 운동 성공 사례를 들었다. 개발계획을 막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도 공원 조성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해마다 시민총회를 열어 7∼10명 대표가 선출되고, 이들이 달마다 베를린시와 갖가지 안건을 협의한다. 가림막을 둘러치고 공사를 진행해 어느 순간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이 담긴 모습 그대로를 탐색하고 그 모습을 유지한 채 민관(民官)이 함께 천천히 만드는 ‘과정’의 공간이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264호 ‘금당의 땅, 80만 평 용산 미군기지가 열린다’ 중에서)

▲ Gate22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미군 환경오염 문제를 고발했다. (Once upon a time in California, Oliver Griem) ⓒ Oliver Griem


용산공원은 ‘천천히’, 오염문제 해결은 ‘확실히’, 공원 부지에 미대사관은 ‘안돼’라고 배성미 작가는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용산기지가 공원이 되면서 어떤 것들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새로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단지 나무를 심고 건물을 치우는 것을 넘어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이다. 

글 : 녹색연합 이다예 정책팀 활동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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