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치유는 미군주둔의 전제조건

2006.07.20 | 군기지

최 승 환 (경희대학교 법대 교수/국제법)

우리나라 정부는 7월 14일 폐막된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2011년까지 반환하기로 합의된 전국 59개 주한미군기지의 환경 오염문제에 대해 미군당국이 오염 치유를 완료했다고 통보한 15개 기지를 반환받기로 합의하였다. 미군당국은 지난 4월 7일 일방적으로 발표한 ‘토지반환 실행계획’에 따라 지하 유류탱크 및 불발탄 제거 등 총 8가지 기초적 항목의 오염제거만 시행하였다.

미군당국의 오염 치유는 가장 문제가 되는 기름유출 및 화학물질로 야기된 심각하고 광범위한 토양오염을 제외한 것으로, 주된 오염원인 토양오염을 정화하지 않을 경우 추가 지하수 오염까지 유발함으로써 실질적인 오염 치유효과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약 5천억원에 달하는 오염 정화비용은 모두 우리나라가 부담하게 될 것 같다. 또한 2011년까지 반환될 나머지 44개 기지들도 이번 합의가 선례가 되어 오염치유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반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상적인 토지사용 수준으로 치유되지 않은 기지반환을 거부하여야 하며, 최소한 우리측 추가 정화비용을 향후 방위비분담협상에서 방위비분담금으로 인정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반환기지의 오염치유는 미군당국의 책임”

미군당국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제4조에 따라 반환기지에 대한 원상회복의무가 없다는 점, 환경오염조사 및 치유절차는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에 대해서만 치유 책임을 부과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국내 토양환경보존법 기준에 따른 우리나라 정부의 치유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SOFA 제4조는 미군당국이 기지에 설치한 시설물에 대한 원상회복의무를 면제시켜준데 불과하며 환경오염 치유의무를 면제한 것이 아니며(헌법재판소 2001년 결정), 미군당국은 기지 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수행함에 있어 공공안전(public safety)을 적절히 고려할 책임이 있는데(제3조), 이에는 기지 내의 오염원으로 인한 환경오염피해 방지의무가 당연히 포함된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토양오염등이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른바 KISE)을 초래하는 오염이 아니라는 미국 측의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다. 미국 환경법(종합환경대응배상책임법)상 유해물질이 토양에 노출된 경우 오염정도에 관계없이 정화대상이 되는데 비해, 우리나라 토양환경보존법은 유해물질 16종이 우려기준을 넘는 경우 정화조치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적어도 모든 유해물질이 우려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정화조치가 필요한 위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양국 법령에서 공통으로 지정된 오염물질이 배출된 경우에는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01년에 개정된 SOFA 합의의사록 제3조 2항에서 “미국정부는 자연환경 및 인간건강의 보호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고, 한국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고 공약하였다. 반환기지에 대한 오염치유 협상은 ”기지 내의“ 오염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기지 내 오염원으로 인한 기지 주변의 심각한 오염실태를 고려해 볼 때 정부당국은 ”기지 주변의“ 오염에 대해서도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행하고 적절한 치유 또는 보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오염치유는 미군의 신뢰회복에도 기여”

주한미군의 주둔목적은 한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환경권은 기본적 인권으로서 미국과 우리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다. 지역주민의 환경과 인권에 대한 존중은 반미감정을 예방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와 같이 미8군에서 근무하던 미군장교가 가장 중요한 덕목을 “책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롭다. 기지관련 오염에 대해 미군당국이 정정당당히 책임지는 모습은 한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는 일이며, 미군과 미국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대표 없는 과세”라는 부당한 영국의 식민지정책이 미국의 독립전쟁을 야기하였듯이, “오염치유 없는 기지반환”은 한국민의 대대적인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 이 글은 지난 7월 18일 경향신문에 실린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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