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을 보기가 두려운 이유

2006.08.01 | 군기지

글 : 김혜애 (녹색연합 정책실장)

2년 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단체 사무실로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봉준호 감독이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영화를 구상하고 있는 중이라며 녹색연합이 2000년 터뜨렸던 ‘미군의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대한 인터뷰와 자료 요청을 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무단 방류하여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그 사건은 주한미군 주둔 이후 처음으로 미8군사령관이 한국 국민들에게 공식사과를 하고, 당시 책임자를 한국 법정에 세워 실형을 선고받게 하는 등, 우리 사회에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만든 큰 계기였다.

그 당시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듣진 못했지만 막연하게나마 몇 년 후면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를 동기로 삼은, 꽤 흥미 있는 영화가 나올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드디어 그 영화가 ‘괴물’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물론 완성된 영화는 내 기대처럼 미군의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정치성 있는 -혹은 지루한- 영화가 아니라, 어느 날 한강에 출현한 ‘괴물’에 대항해 싸우는 과정 속에서 다져가는 한 가족의 눈물어린 분투와 애정을 그린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가 단순한 가족영화로 보아지지 않는 이유는, 시기적으로 묘하게 겹친 또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최근 부각되어 있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책임을 둘러싼 한-미간의 협상’ 문제이다.

지난 7월 13일~14일 열렸던 제9차 한미안보 정책구상(SPI) 회의에서 한국 정부와 미군은 59개 전체 반환 예정인 미군기지 가운데 15개 기지를 우선 반환하겠다고 합의했는데, 문제는 환경오염 치유비용을 대부분 한국 측이 부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치유 비용은 수천 억 원에서 수조 원까지 추정할 정도로 아직 정확하게 측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오염자 부담원칙’을 강조하며 미국 측이 대부분 부담할 것이라던 정부의 장담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더니 이젠 뒤늦게 한-미간 협상이 미국 측의 일방적인 통보일 뿐 ‘협상’이라 볼 수 없는 것이며, 반환되는 기지의 환경오염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속속 밝혀져 정부 여당에서까지 국정조사를 제기하며 협상의 책임을 따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반환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는 단지 오염 치유 비용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990년과 1992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필리핀의 수빅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는 미군이 떠난 지 16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 당시 기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과 이주해 살던 주민들은 대부분 피부암 등으로 시달리고 있고, 그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소아백혈병과 중추신경마비, 선천성심장병 같은 증상으로 1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이나 필리핀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물론 필리핀과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반환되고 난 이후 기지 터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국민들의 생활공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면,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땅이 우리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에서 ‘형상화된’ 괴물의 모습에서 10년이나 20년 후 우리가 겪을지도 모를 섬칫한 위험을 본다면 너무 풍부한 상상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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