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활동이야기] 지뢰제거도 셀프시대?

2015.06.07 | DMZ

지뢰제거도 셀프시대?

 

 

“내가 불법을 저질렀답니다!”

 지난주 늦은 오후, 파주시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녹색연합에는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문의전화가 온다. 본인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보를 해 오시는 분들이다.

 연락을 하신 분은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이하 민통선)에 출입하며 콩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여느 전화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 수화기 건너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농토에서 지뢰를 발견해서 지뢰제거를 자비로 했는데, 국방부와 관할 부대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불법을 저질렀다며 엄포를 논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발견했을 때는 관할부대에 지뢰제거를 요청했으나 부대여건상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서야 민간지뢰제거업자를 통해 자비를 들여 제거를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200여발의 지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관할부대에 수거라도 요청을 했지만 불법을 저질렀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며칠 동안 DMZ일원의 지뢰지대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1968년부터 민통선에는 민간인들의 정착이 시작되었고 부분적인 출입을 통해 영농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통선 정착 1세대들은 “전쟁과 같은 개척을 통해 땅은 옥토로 변해갔다.”라며 한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회상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도 민통선 주민들의 어려움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며칠 후 파주시 장단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20150602_통일대교 끝자락

▲ 통일대교의 끝자락이다. 저 너머 관문을 지나면 민간인통제구역인 파주시 장단면이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뢰 제거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자유로를 쉴 새 없이 달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통일대교 끝자락 까지 왔다. 민통선 출입절차를 마치고 차량내비게이션에는 표시되지 않는 도로를 20여분 남짓 지나 한적한 농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느 농촌 농지들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곳곳에는 얇은 철조망과 함께 역삼각형의 붉은 안내판에 ‘지뢰, MINE'라고 적혀있다.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자연스레 드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제보전화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본인을 예비역 중령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분은 누구보다 지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과 동시에 본인의 답답함을 연신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우리와 동행한 군관계자들에게도 뼈있는 일침을 놓는 걸 잊지 않으셨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또 제거 하는 것도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20150602_지뢰지대표시

▲ 제보자의 농지 바로 옆에 위치한 지뢰지대 표식이다.

 

개인의 사유지 VS 군사시설

제보를 한 농민의 입장과 이 지역을 관할하는 보병 제1사단과 그 상급부대의 입장은 엇갈렸다. 문제의 논점은 이러했다.

– 제보농민의 입장

“민통선 이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엄연히 개인의 사유지이다. 설사 그 안에서 미확인지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군에서 제거를 해주어야 한다. 1사단과 국방부에 제거를 수차례 요청했고, 해당 지자체와 지적공사에 행정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험을 무릎 쓰고 스스로 지뢰제거를 한 것이다. 지뢰제거를 해야 해당 농지에 대한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군사시설을 자꾸 운운하는데 그렇다면 사유지에 안에 있으니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관할 부대의 입장

“ 해당농민이 문제를 제기한 농지는 최초 민원이 접수된 2010년에 미확인지뢰지대로 확인되었다. 해당지역의 미확인지뢰지대는 군사시설로 분류되고,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출입금지를 권고했었다. 미확인지뢰지대는 군작전상 보호되어야 하고 군인들만이 공식제거장비를 통해 제거할 수 있다. 민간업자에 의해서 군의 통제 없이 지뢰를 제거한 것은 군사시설을 훼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50602_취재기자 사진

▲ 제보농민이 지뢰를 제거한 밭이다. 96년부터 제보농민은 지뢰의 존재를 모른 채 15년 이상 콩농사를 지어왔다.

 

미확인지뢰지대 = 군사시설?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명백히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이 지역이 미확인지뢰지대는 확실한데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미확인 지뢰지대를 군사시설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맞다, 아니다” 서로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판단근거를 확실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뢰를 두고 유관법률을 적용함에 있어 분명한 공백이 있었고, 입법상의 미비함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하지만 군에서는 판단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을 두고 명확한 유권해석 없이 자의적인 해석만을 해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 법리해석과 군교본 상의 정의를 두고 불법을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견해도 없었고, 명확한 판례도 없었다.

 

“내가 왜 시민단체에 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를 피는 줄 아느냐?”

 1시간여의 논쟁 끝에 제보농민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왜 시민단체에 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를 피우는 줄 아느냐? 여기 주위에 사람들, 서부전선 전체에서 나처럼 미확인지뢰지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게 어렵게 농사짓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민간인들은 지뢰가 있다고 신고안합니다. 그냥 묻어 버려요. 신고가 들어가는 순간, 경계병 2명 데리고 와서 테이프치고 아무것도 못하게 해요. 농사 못 짓게 하는 거예요. 지뢰제거 돕지는 못할망정, 막는 것 만이라고 하지 말아주시오”

 오늘과 같은 일은 흔치 않은 케이스이다. 해당민원인이 예비역 육군공병출신이어서 군 관련지식이 있고 또한 의지를 가지고 대응을 해왔기에 적어도 관할 부대 측과 논쟁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민통선 내에서 경작을 하는 주민들은 지뢰와 엮이면 쉬쉬하는 것이 보통이다. 군대에 밉보일까 벙어리 냉가슴 앓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제보농민의 밭 건너에서도 지난달에도 폭풍지뢰(M14 대인지뢰)가 터졌으나 신고가 된 건 없었다.

 지뢰사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절차를 몰라서(128명), ▲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명), ▲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11명)이라는 내용이 발표된 바도 있다. (평화나눔회 2011년 조사, 228명 대상) 심지어 지뢰사고피해를 당해도 이정도인데 이외의 일들은 오죽할까. 6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국방부의 근거 없는 불도저식 대응에 주민들은 벙어리로 살아온 것이다.

 

20150602_군인사진_1

▲ 제보농민, 민간지뢰제거업자, 관할부대의 관계자들이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이 서있는 땅도 얼마 전까지 폭풍지뢰(M14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정부, DMZ일원의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뢰제거는 군인에 의해서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는 없다. 국방부의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군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한 다. 하지만 때에 따라 민간제거업자에게 용역을 맡기고 대대적으로 지뢰를 제거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경의선 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최근에는 DMZ생태평화공원을 만들겠다며 대규모 지뢰제거용역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의 의지와 의도가 어디에 쏠려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55마일, 248km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2km씩 한계선을 설정한 지역이 DMZ이다. DMZ 외곽의 민간인통제구역을 포함해 DMZ 일원이라고 부른다. 철책선을 따라 이어진 DMZ 일원은 60여년의 분단역사가 만들어 놓은 지구상 유례없이 특수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연안·해양과 함께 보전해야 할 3대 생태축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는 평화적인 생태계 보전이라 말하고 그 안에는 다른 속셈이 늘 있어온 듯하다. 생태계 보전이라는 구호만 흩날리고 있고 생태평화적인 가치를 빙자한 대형개발사업들만이 DMZ 일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와 중에 정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부작용들은 뒷전이고 계속 쌓여가고만 있다. 제보농민이 겪고 있는 군사보호구역과 민간이용지역의 충돌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또한 정부의 관심 밖인 듯하다.

 DMZ 일원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입장과 실질적인 법규의 부재로 인해 국방부는 자의적으로 기존 법규들을 해석하고 있다. 근거 없이 주민들의 사유지에서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 없으니 여우가 왕 노릇 하는 꼴이다. 생태계 보전의 가치, 대북평화적인 가치, 주민들의 삶이 모두가 고려되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입장과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DMZ생태계 보전적 가치는 정부가 이용할 할 젯밥이 아니다. 오롯이 그 생태적 가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DMZ 일원 주민들의 삶 또한 국방부가 좌지우지 할 사안이 아니다. 제보농민 농토의 지목을 등기부등본 상에는 ‘전(밭)’으로 명기해 놓고, 관할부대의 문서상에는 ‘임야’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60여 년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 온 것이 없다. 정부는 무엇이 먼저인지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뢰지대의 등기부등본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군부대의 지뢰지대현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길 바란다. 지뢰제거는 셀프가 아니다.

 

20150602_농지와 지뢰표식

▲ 지뢰지대와 농토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

 

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박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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