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 효과 입증 비상소화장치 설치 태부족
산불 비상소화장치 현황 및 대책
1. 23년 대형 산불의 교훈
1-1. 강릉 산불의 충격과 교훈
지난 4월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 난곡동∙저동∙안현동 일대에서 일어난 산불 앞에 진화 장비도, 진화 인력도 무력했다. 이번 산불 피해는 특히 주택과 건물에 집중됐다. 건축물 266동, 농업시설 122동이 불에 탔다. 주택 217가구가 피해를 입어 480여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강릉 산불로 인한 재산 피해 규모만 약 274억원으로 추산된다. 앞서 2022년 울진 산불은 300가구가 넘는 주택 피해를 낳았다. 최근 3년간 산불로 소실된 주택은 2,212개소에 이른다.
1-2. 충남 홍성 산불의 시사점
충남 홍성 산불도 피해는 극심했다. 4월 2일부터 사흘 동안 1,454ha의 산림이 불탔다. 서해안에 연접한 충남 홍성은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봄철 대형 산불 우려가 적다. 그러나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인해 산불은 빠르게 번졌고 피해는 컸다. 주택 53가구 불탔고 농축산 시설 30동과 창고 56동이 잿더미가 되었다. 304억 원 가량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앞으로 충남을 비롯해 전북과 전남 등의 농산촌 지역도 대형 산불 대책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들 지역 역시 산림인접 마을과 주택에 산불 비상소화장치 설치가 시급하다.
근래 벌어진 대형 산불들은 재난 대비 수준을 뛰어넘는 속도와 양상을 보인다. 건조한 시기에 발생하는 산불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초대형 헬기도 강풍에 맥을 쓰지 못하고, 동시다발로 화재가 번져 모든 마을에 소방차를 지원하기도 역부족이다. 가가호호 직접 주택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이 필요한 이유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이 바로 ‘비상소화장치’다. 비상소화장치는 소화장치함과 호스릴, 앵글밸브 등으로 구성된 일체형 소방시설이다. 호스를 옥외소화전 등과 연결해 산불 발생시 신속하게 물을 뿌려 초기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산림 인접 마을의 비상소화장치은 주민이 직접 산불로부터 재산과 주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2. 소화 장치 설치 현황
산불 비상소화장치의 효과를 인정받아 올해 들어 추가 설치된 장치는 627개에 달한다. 내년까지 비상소화장치 설치가 필요한 지역은 2,088개소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더뎌 수요조사 대비 설치 확대가 느리다.
현재 강원도 도청소방본부는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산불 대비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한 상태다. 도심 주변 마을은 설치를 해 가고 있지만 백두대간 산자락에 가까운 마을은 설치를 못한 곳이 많다. 강릉시만 하더라도 올림픽 신도시인 유천지구를 비롯해 비상소화장치가 절실한 곳이 많다. 삼척도 하장면 가곡면 등에 더 설치해야 한다.
경북∙경남 지역은 거의 설치하지 않은 수준이다. 지난해 대형 산불로 국가적 충격적을 준 울진을 비롯하여 영덕군, 봉화군 등과 그 동안 많은 피해가 있었던 안동, 포항 등 산불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소화장치는 태부족이었다. 영덕군과 봉화군에는 22년 12월 31일 기준 산림인접마을 내 설치된 비상소화장치가 단 하나도 없었다. 현재 경북소방본부는 영덕에 96개의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울진군도 마찬가지었다. 산림인접마을 내 비상소화장치는 두 개에 불과했다. 이번 6월초순 경북소방은 울진군 8개 읍면 지역에 비상소화장치 71개를 추가 설치했다고 밝혔다. 울진군은 금강소나무 최대 군락지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다. 소나무가 많아 화재에 특히 취약한 지역임에도 여전히 마을마다 비상소화장치는 없다.
2020년과 2021년 두 해 연속 산불을 겪었던 안동시도 산림 인접 마을에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주시는 4개, 포항시는 5개, 예천군은 6개에 그친다. 경북지역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전체 경북지역 산림 인접 마을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는 총 30대뿐이다.
경남의 경우 대형 산불이 발생한 곳이지만 충남 다음으로 비상소화장치의 설치율이 저조하다. 현재 올해 첫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합천군에는 7개가, 연이어 대형 산불이 발생한 하동군은 6개가 설치되어 있다. 산불 발생 빈도수가 가장 높은 함양군은 7개, 마찬가지로 산불 위험 지역인 거창군은 2개뿐이다. 이들 시군은 각 시군마다 산림인접 마을이 수백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시군에서 10개 이하로 설치한 것은 거의 설치를 하지 않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비상소화장치 산불 대응 효과 사례
3-1. 19년 고성속초 산불 홍와솔 마을
비상소화장치의 효과는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강원 영동의 많은 마을들에서는 비상소화장치를 통해 불길로부터 재산과 건물을 지킨 사례들이 등장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당시 고성군 토성면 홍와솔 마을은 큰 피해 없이 마을을 지켜냈다. 산불 발생 19일 전 마을 주민들이 자체 경비로 설치한 비상소화장치 덕분이다. 홍와솔 마을 주민 중 한 명인 소방전문가가 먼저 마을 주민들에게 제안하면서 설치할 수 있었다. 산불의 화마가 마을로 옮겨 붙기 시작할 때 마을회장을 비롯하여 주민들은 노약자를 대피시킨 후 산불에 대응했다. 주민들 10여명이 직접 설치한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5시간 가량 진화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전체 23가구 중 주택 4채가 피해를 입었다. 비상소화장치 호수가 멀어서 물을 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19가구는 무사했다. 19년 고성 속초 산불의 불길이 휩쓸고 간 많은 마을이 극심한 주택 건물 재산 피해를 입었던 것에 비해 홍와솔 마을은 상당수 가구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홍와솔 마을의 사례가 강원 영동지역에 알려지면서 2019년부터 산림 인접 마을과 주택에 산불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3-2. 강릉 교항리 사례
비상소화장치로 산불을 초기 진압하기도 했다. 2021년 강릉시 주문진읍 교향리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실효습도가 매우 낮아 화재주의보가 발효된 상태로, 하마터면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과 노인복지센터 관계자들이 발빠르게 마을 입구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했고, 불은 산림 30㎡를 태운 후 5분만에 꺼졌다.
3-3. 동해시 승지골과 괴란마을 사례
22년 3월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동해시까지 옮겨 붙었다. 당시 동해시 부곡동 승지골에 설치된 산불 비상소화장치 6개소를 사용하여 주민들이 직접 불을 뿌려 산불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동해시 망상동 괴란마을은 주택 5채가 불에 탔지만 나머지 피해 없이 산불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3-4. 양구군 청우리 전원마을 사례
지난해 4월 양구 산불 당시 양구군 청우리 전원마을 사람들도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마을을 지켜냈다. 청우리에는 5대의 소화전이 설치돼있었다. 이장과 주민들은 노약자와 여성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 소화전에 소방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렸다. 주택 등 건물에 먼저 물을 뿌린 뒤 산에 붙은 불길을 향해 물줄기를 쐈다. 주민들은 마을에 출동한 소방대원과 힘을 합쳐 진화 작업을 이어갔고, 청우리 31개 가구는 산불 피해 없이 무사했다.
3-5.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사례
삼척에서도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해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지켰다. 지난해 울진에서 난 불이 산을 타고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까지 번졌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때 주택 9채가 불탔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좁은 골목에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하자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이 모두 나와 비상소화장치를 열고 주택과 인접한 야산에 물을 뿌려 방어선을 구축했다. 초기에 진압한 덕에 인근 10여가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3-6. 2023년 강릉 산불 사례
이번 강릉 산불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강릉시 저동 황토민박의 일흔이 넘는 주인이 직접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해 자신의 민박집을 지킨 것이다. 주변 숙박시설 중 유일하게 화마를 피한 황토민박은 피해주민들의 임시거주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강원 지역 11개 마을에서 비상소화장치를 활용함으로써 주택 248호를 방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외소화전을 이용해 도 지정문화재인 경포대, 유형문화재 방해정 옥외소화전을 이용해 지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보아, 비상소화장치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4. 비상소화장치 설치 확대 절실
산불로 인한 피해 지원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산불 피해 지역에 특별재난지구를 선포하고 비상 재난지원금을 보상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것보다 사전에 예산을 투자해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상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앞으로 산불 대책에서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은 민가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마을 비상소화장치와 소화전이 필수적이다. 산림과 인접 마을 및 건축물의 이격거리를 전수 조사해 위험도가 높은 곳부터 비상소화장치를 우선 설치해야 한다. 아울러 이 조사를 바탕으로 산사태 위험 지역과 같이 산불 위험지역을 지정해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비상소화장치 설치 후에는 주민들에게 민방위 훈련처럼 주기적으로 비상소화장치 사용에 대한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홍와솔 마을 이종현 마을회장은 “가장 중요한 건 비상소화장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와솔 마을 내 주민들은 1년에 두 번 자체적으로 비상소화장치 사용법 교육∙소방훈련을 실시한다. 이와 달리 비상소화장치 사용 교육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기에 여력이 부족한 지역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산불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산불 발생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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