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일, 기후 헌법소원의 마지막 변론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청구인 3인의 최종진술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시민소송 청구인으로 참여한 황인철(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의 최종진술 전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소송에 참가하고 있는 청구인 황인철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시민이자 녹색연합이라는 환경단체의 활동가입니다. 전국 1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기후위기비상행동’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환경단체에서 일한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환경사안을 겪었습니다. 4대강에 가고, 설악산을 오르고,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찾아갔습니다. 때론 성과가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2018년, 전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1.5도 목표와 탄소예산 소진의 위기가 언급된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안이었지만, 그 시급성과 중차대함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다른 여타의 환경 사안보다 더 어렵고 거대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화석연료에 기반한 지금의 사회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2019년 9월, 기후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5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 문제로 가장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선 첫 사례였습니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제정될 때 국회로 달려갔고,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할 때는 정부를 찾아갔습니다. 이 정도의 법과 감축목표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지킬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행정부도 입법부도,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습니다.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데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2021년, 123명의 시민소송 청구인들이 헌법재판소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헌법소원 제기 전 2020년, 저는 41명의 시민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진정인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자신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현실을 증언하였습니다. 몇 년 후 국가인권위는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의미 있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정부를 강제할 힘이 없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합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결정을 내릴 곳은 헌법재판소 밖에 없습니다.
헌재의 판결로 기후위기가 한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헌법이 명령하는 국가의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우선적인 책무가, 시민의 삶과 기본권을 지키는 것임을, 헌법재판소가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기후위기 시대의 권리장전으로 기록되길 희망합니다.
2019년 저는 많은 시민들과 폭염 모니터링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휴대용 온도계를 나눠주고 각자의 일터에서 체감하는 폭염을 측정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가스검침원, 비닐하우스 농민, 배달노동자, 택배기사도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선 체감할 수 없는 수치들이 이들의 온도계에 찍혀있었습니다. 어느 한 분이 말했습니다. “빙하 위 북극곰이나 아스팔트 위 노동자나, 그 처지가 하나 다를게 없군요.”
갈라지고 무너지는 것은 북극의 빙하만이 아닙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안전한 사회의 토대가 무너지고, 불평등의 골이 깊어집니다. 인간과 비인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가장 약한 자리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많은 것을 앗아갑니다. 그런데, 소중하지 않은 것은 잃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지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이 기후소송을 지켜보는 이유는,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토록 소중하고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후운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상기온으로 사과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폭염에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간 건설노동자, 바닷속 미역이 사라져 한숨 짓는 해녀, 장마가 지고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이루는 반지하방의 주민. 이 모두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기후위기 한복판에서 각자의 삶과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이 나라의 주권자들입니다.
이들에게 희망과 버팀목이 되는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구인 3인의 최종진술 전문 기사 -> 클릭